오래된 미래, 지식노동자
1. 첫 번째 장면. 지난 17일 다큐멘터리 맛집 넷플릭스에 일(Working)이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가 올라왔습니다. 오바마의 내레이션으로 12명의 직업인을 인터뷰하는 형식으로 다큐멘터리는 진행됩니다. 인터뷰는 서비스직, 중간관리자, 지식노동자, 최고경영진 4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진행하면서 미국 노동시장의 현재모습과 더 나아지기 위한 질문들, 부와 권력의 피라미드를 보여줍니다. 지식노동자가 별개의 카테고리로 표현된 것은 다소 아쉽지만, 배울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일하는 것이 중요한 ‘로봇 엔지니어’, 고객의 요구를 대변하고 지역 정치인에게 지역 사회 개발에 집중하도록 하는 ‘로비스트’, 500여명의 직원을 관리하는 ‘호텔총지배인’. 이들은 지식노동자 인터뷰이로 등장하고 자신의 일을 통해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2. 두 번째 장면. 최근 한 스타트업의 일하는 방식을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강연이 있었습니다. 기민하게 협업하기 위한 다양한 툴과 협업방식을 소개하는 자리였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시간이 되자, 첫 번째 질문. “그런데 저희 회사는 보고체계가 중요한데 이런 문화에서는 어떻게 스타트업처럼 기민하게 협업하는 일하는 방식을 결합할 수 있을까요?”
3. 세 번째 장면. 지난 2월, 삼성이 경영진과 임원까지 수평호칭을 사용하기로 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습니다. 영어이름, 한글이름, 별명이 선택가능하다고 자세히 소개되어 있는 이 기사의 제목은 역설적이게도 「
“JY, 결재 바랍니다”...삼성, 오늘부터 임원도 수평호칭」이었습니다.
4. 네 번째 장면. 애플은 DRI(Directly Responsible Individuals : 직접책임자)라는 개념과 의사결정 프레임워크를 만들고 발전시켜왔습니다. DRI는 위계조직이 아닌 역할조직 안에서 지위고하와 관계없이 그 일에 대해서는 그 사람이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임을 의미하는데요. 최종 결정을 한다는 것은 독단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이 아니라, 최대한 많은 정보와 의견 속에서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스티브잡스는 모든 회의 안건의 각 항목에 대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에 프로젝트에서 담당자를 찾으려고 할 때 “DRI는 누구입니까?"라고 자주 물었다고 합니다.
5. 네 가지 장면 모두 최근 지식노동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장면들입니다. 지식노동자는 21세기 경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이자, 마케팅이란 개념의 창시자로 알려진 피터드러커가 창안한 개념입니다. 학습을 통해 일하는 방식을 개선하고, 혁신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가치를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지식노동자 개념은 사실 훨씬 더 깊은 함의가 있습니다. 지식노동자는 일의 의미와 자율성, 의사결정권한을 강조합니다. 알려진 것처럼 피터드러커가 지식노동자(Knowledge workers)의 개념을 말 한지는 1966년 The Effective Executive 에서가 처음입니다. (‘지식노동’이라는 개념은 1959년 The Landmarks of Tomorrow이라는 책에 처음 소개되었습니다.) 60여년이 지났지만 이 개념을 경영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려는 노력은 2000년대 이후가 되어서야 본격화되었습니다.
“의욕적인 지식 노동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은 자원봉사자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과 동일하다. 그들은 무엇보다 도전의 기회를 필요로 한다. 그들은 조직의 사명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하며, 또한 그것에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은 과업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훈련을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하며,또한 자신이 수행한 과업의 결과를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 피터드러커
6. 피터드러커가 지식노동자 개념을 제기했을 당시엔 최초의 경영컨설턴트로 알려진 테일러의 이론이 칭송받고 있을 때였습니다. 1911년 쓰인 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론은 알려진 것처럼 현대경영학의 출발을 알리는 이론인데, 실제로 포디즘으로 대표되는 테일러의 성공방정식은 미국을 패권국가로 만들어내는데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과학적 관리론은 사실 ‘사람들이 왜 열심히 일하지 않을까?’라는 순수한 질문에서 출발해서 본인의 컨설팅 경험과 이론을 펼쳐나가는데, 지금의 관점으로 보면 로봇에게나 요구할 법한 ‘모던타임즈’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당시 미국은 여성참정권조차 인정되지 않았던 시대적 한계가 있었습니다. 테일러주의는 테일러 이후 더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왜곡되지만 그의 저작들을 살펴보면 정작 테일러 자신은 경영자와 노동자의 협동과 이익공유에 진심인 인물이었던 것 같습니다.
7. 테일러가 가정한 노동자와 대비되는 지식노동자(Knowledge workers) 개념을 제안한 피터드러커는 테일러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렸을까요? 드러커는 테일러를 비판할 것 같지만 당시에 직관에 의존해왔던 경영에 지식을 응용한 테일러를 프로이트, 다윈과 더불어서 현대 세계를 창조한 사람이라고 상당히 리스펙트 합니다. 나아가 노동자를 해방시킨 것은 마르크스가 아니라 생산성의 증대로 높은 임금을 보장하고 여가시간을 가져다준 테일러라고도 주장합니다. 드러커의 눈에는 적어도 테일러는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관찰하고 지식을 적용하려고 했던 사람이었습니다.
8. 피터드러커는 산업혁명과 생산성혁명 이후를 경영혁명의 시대로 규정하고 이러한 전환기에 앞으로 의미있는 유일한 자원은 ‘지식’이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피터드러커가 지식노동자라고 했을 때의 ‘지식’은 굉장히 실천적인 개념에 가깝습니다. “ ‘지식’은 행동을 통해 스스로를 증명한다. 우리가 지식이라고 말 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행동을 하는데 효과가 있는 정보이고, 결과에 초점을 맞춘 정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나아가 지식을 일에 적용한다는 것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오늘은 확실했 던 것이 내일에 가서는 언제나 어리석은 것이 되어버리는 것 이야말로 지식의 본질이다.’ 즉 지식을 일에 적용한다는 것은 과학적인 사고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9. 달리 말하자면 지식노동자란 자기 일에 효과성을 추구하는 과정에서(=변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가설이 있는 노동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알려진 대로 자동차왕 헨리 포드는 “나에게 필요한 건 그저 사람들의 두 손뿐인데, 왜 항상 머리까지 딸려오는지 모르겠다”라는 다소 섬뜩한 말을 남겼는데 이는 육체노동자(manual worker)의 본질을 명확하게 설명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육체노동자는 매뉴얼이 필요하지, 스스로 세운 가설은 필요하지도, 필요해서도 안 되기 때문입니다.
10. 피터드러커는 지식노동자의 개념이 지위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일하는 방식, 마인드셋의 문제임을 강조합니다. “그 사람의 지위가 아무리 높다 해도, 공헌과 책임보다는 업무활동 수행과 권한에 주로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라면 자신이 한갓 다른 사람의 부하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공헌에 초점을 맞추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그가 아무리 하급관리자라 하더라도 ‘탑매니지먼트’이다. 그는 조직 전체의 성과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있는것이다.”
11. 여전히 지식노동자로 일하는 것을 가로막는 무수히 많은 관행과 장애물들이 있습니다. 일상적인 보고, 결제와 같은 의사결정 프로세스, 탑에서부터 캐스케이딩(Cascading)되는 목표관리, KPI나 목표달성도에 의한 실적평가, 그에 의해 차등화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린 인센티브같은 것들입니다. 경영의 오래된 통념들이 갖고 있는 폐해들은 많이 언급되지만 적절한 대안에 대해서는 베스트 프랙티스가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12. 문학평론가이자 학자인 황현산 선생님은 “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 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라고 말합니다. 역사의 진보나 위대한 변화들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장소의 확산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프로젝트를 하다보면 지식노동자로 일하는 것을 가로막는 많은 관행들 사이로 꼿꼿하게 자기만의 가설을 세우고 변화를 만들어가는 팀이나 개인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 ‘이 분들이 더 힘을 내서 일할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기 위해서 변화해야 하는 환경들(제도, 구조, 리더십, 조직문화)은 어떻게 되어야 할까에 대해서 탐구합니다.
13. 정리해보자면, 지식노동자는 고루하고 철지난 개념이 아니라 여전히 유효한 가정이자, 일하는방식의 변화에 있어서 중요한 지향점입니다. AI시대는 이러한 변화를 더 강하게 요구할 거라 생각합니다. 경영의 많은 레거시를 넘어서 지식노동자로서 일하는 방식의 전환을 하기 위한 길은 아직은 아주 좁은 오솔길입니다. 그 길 위에서 더 많은 대화와 토론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