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짓는 도리
#도리
: 사람이 어떤 입장에서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
25년을 쉬지 않고 일했다.( 아니 아직 일하고 있는 현재 진행형이다) 첫째 출산 때 2개월(2000년 그 당시에는 출산휴가가 2개월이었다, 그것도 대체 인력이 없어 출산 후 산후조리원에서 전화로 업무를
해야 하는 그야말로 웃픈 상황이었다), 둘째 출산 때 3개월을 제외하고 단 하루도 쉼 없이 워킹맘으로
살아왔다. 일하면서 밥해먹고 살기가 왜 이렇게
힘든 과제인지, 늘 무겁고 힘든 나의 퇴근 후 삶이
주방에서 펼쳐졌다.
왜 밥 짓는 일을 내가 마땅히 해야 할 도리라
생각하면서 산 걸까?
(엄마의 부재로 밥을 굶어 본 나의 경험 탓이리라..)
그 당시 읽게 된 "일하면서 밥해먹기"(김혜경 기자 저)는 나에게 바이블 같은 책이 되었다. 기자 경력
23년의 씩씩한 아줌마 김혜경에게 배우는 스마트 쿠킹 노하우라는 부제가 달린 실로 솔깃한 문구였다이 땅의 워킹맘들에게 말하고 있었다
" 매일 저녁 퇴근길, 근사한 밥상 차려놓고 사라지는 우렁 각시를 꿈꾸는 이 땅의 워킹우먼 여러분! 우렁 각시가 없다면 씩씩하게 밥해먹고 다닙시다. 장보기는 2주일에 한 번, 식사 준비는 단 30분에 끝내는 스마트 쿠킹 노하우로 말입니다. 머리 좋은 여자가 요리도 잘한다잖아요"
진심으로 스마트 쿠킹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었다
김혜경 기자님은 1978년부터 2000년 7월까지
23년간 한국경제신문, 스포츠서울 기자를 거쳐
여성지'파르베''퀸'의 편집장으로 일했다. 가장 바쁜 월급쟁이라는 신문기자로 일하면서 가족들의
저녁상을 매일 차린 경이적인 워킹우먼으로 오랜
세월 동안 축적한 자신의 부엌살림 노하우를 담은 책이었다. 요리를 피해 갈 수 없는 괴로운 가사노동이 아니라 오히려 일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는 즐거운 창조활동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또한 새로운 도구나 재료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효율적인 시간 배분에 관해 머리를 짜내고, 요리에 대한 주위의 정보에 늘 귀를 열어 놓을 줄 알아야
요리를 잘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던 딱 좋았던 문구이다 " 세상의 모든 요리 책은 맛있고 멋있는 요리를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이 책은 만드는 사람이 편한 요리에 대해 말합니다"
내가 만들기 편한 요리, 그래서 이 책은 아직도 나의 요리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책이라 할 수 있다.
계획과 스피드가 가장 중요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차려주지 않더라도 대충 때우지 않고, 스스로
알아서 식사를 차려먹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침밥을 먹여 어린이집에 보내는 게 엄마의 도리라 생각했었다. 아니, 순전히 밥을
먹여 보내고 출근해야지만 내 맘이 편했다. 일하는 엄마가 무슨 벼슬도 아닌데, 아이들을 굶겨서 어린이집에 보내는 건 무슨 죄를 지은 것 마냥 죄책감에 하루 종일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았다
그러다 보니, 아침시간은 빨리빨리와의 전쟁이었다
아이들 아침밥을 차려 식탁에 앉혀놓고, 출근 준비에 정신이 없으면서도 입으로는 빨리 먹어~를 수십 번 외치고 있었다
내 마음 편하자고, 눈 뜨자마자 식탁에 앉아 밥을
먹어야 하는 아이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아주 이기적인 엄마였다. 아니나 다를까,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으니, 아이들은 먹기 싫은 밥을
나의 눈을 피해 휴지에 싸서 꼭꼭 숨기기 시작했다.
집안 곳곳에서 밥이 싸인 주황색 혹은 검은색 곰팡이가 핀 휴지를 펼쳐 들고 난 소리 내어 울었던 기억이 있다
그 후 난 아침밥에 집착하지 않았고, 배고프다면
밥을 차려주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였을 때는
자기 스스로 밥을 차려먹을 수 있게끔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밥, 반찬, 찌개, 국을 떨어지지 않게 항상 구비해
두는 게 내가 할 역할이라 생각했다. 차려 먹고,
설거지를 하는 건 각자의 몫이다.
교육하고 또 교육했다
아이들이 라면이나 인스턴트 음식으로 대충 식사를 때우지 않았음 하는 바람으로 밑반찬을 매주
주말마다 일주일 정도 먹을 양을 서너 가지 준비해둔다
거의 국민 밑반찬 수준이지만, 간편하고 스피드
하게 차려먹기 좋다. 재료 준비를 할 때 소분해서
냉동시켜 뒀다가 편리하게 해먹기도 한다
그리고, 쟁반에 밑반찬들을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
쟁반만 꺼내면 되기 때문에 편리하다
그동안 도돌이표처럼 만들었던 밑반찬들인데,
아이들도 잘 먹고, 내가 만들기도 편했던 것들이다
냉장고 가득 채워두면, 일주일이 든든하다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들이 굶지 않았으면, 건강하지 않은 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하지 않았으면 항상
바랬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준비하는 식사를 감사한 마음으로 마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항상 맛있다고, 잘 먹었습니다,
인사를 잊지 않는다. 또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어
먹을 줄도 안다
나는 소망한다.
건강한 식사에 대한 태도를 잃지 않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