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3월 9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몇 개월 동안 국민들은 대선 후보자들의 참신한 공약 대신 후보들과 측근들의 부패와 도덕성 논쟁을 지켜보며 새로운 지도자를 골랐다. 선거 역사상 유례없는 투표율과 근소한 차이로 야당의 후보가 당선되었고 촛불 집회의 후광을 지니고 정권을 잡았던 여당은 조금씩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다. 선거철마다 “최악보다는 차악을 선택하라”며 사람들의 투표를 유도하는 이유는 그만큼 지도자의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는 반증이다. 한번 잘못 끼워진 단추는 다시 풀고 채워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동안 자질이 모자란 지도자들 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월을 고통 속에서 보냈던가? 몇 년 주기로 돌아오는 ‘단추를 바로 끼우는 시간’을 헛되게 보내지 말라는 충고는 진짜 리더가 떠나버린 곳의 생생한 비극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부터 살펴 볼 범유진의 장편 소설 <선샤인의 완벽한 죽음>(안전가옥, 2020)은 학교를 배경으로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을 꼬집고 있지만 동시에 진짜 리더의 자격에 대해 되묻고 있다.
소설은 선량하고 완벽한 ‘무아교의 여신’이라 불리는 선샤인이 갑작스럽게 죽은 날부터 시작한다. 책 속에 언급된 무아교는 육지에서 가장 먼 섬의 사유지에 위치한 사립학교다. 이 학교는 ‘통제된 환경에서 완벽한 엘리트 양성’을 목표로 유치부부터 고등부까지 에스컬레이터식 진학이 이루어지고 졸업하기 전에는 학교를 떠날 수 없다. 보랏빛 용담 꽃이 흐드러지게 핀 8월 1일, 이 무아교의 여신 선샤인이 시체로 발견된다. 학생들은 이 사건에 충격을 받지만, 학교는 학생들의 동요를 막기 위해 선샤인의 장례를 하루 만에 마무리 지어 버린다. 다음 날, 학교 곳곳에 ‘내가 선샤인을 죽였습니다.’라는 메모가 붙으면서 무아교 교정은 다시 혼란에 빠진다. 그런 학교의 동요를 막기 위해 ‘무아교 대변인’이었던 레이는 선샤인의 죽음을 ‘평범’하게 각색하라는 교장 선생님의 명령을 받는다. 레이는 선샤인의 행적들을 하나하나 추적하고 주변인들을 인터뷰하면서 뜻밖의 비밀을 발견한다.
이 소설의 구성이 흥미롭다. 보통 소설들은 기-승-전-결의 구성으로 독자가 주인공의 삶과 깊이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이 소설은 그런 배려 없이 가장 충격적인 장면을 앞장에 배치한다. 아직 ‘선샤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독자들은 다소 얼떨떨한 기분으로 책장을 넘길 수밖에 없다. 레이의 담담한 시선을 따라가며, 때로는 선샤인 주변 인물들을 살펴보며 ‘명탐정’인양 자유롭게 추리하기 시작한다. 작가는 그런 독자들을 의식했는지, 선샤인과 관련된 주변 인물들의 신세 명세서를 한 장에 정리해 두고 각자의 삶을 생생하게 ‘File 001...005’라는 챕터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챕터들에서 주변 인물들은 마음껏 자신의 속내와 감정을 읊조린다. 이 소설은 신기하게도 보통의 추리소설처럼, 관찰자 중심의 두리뭉실한 서술로 범인을 감추는 것이 아니라, ‘볼 테면 봐라’라는 식으로 용의자들의 심리를 대놓고 드러낸다. 그래서 독자들은 각 챕터들을 읽으면서 선샤인의 죽음의 원인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다. 물론 선샤인을 죽인 가장 결정적인 사람은 꼭꼭 숨겨둔다.
이 소설의 주요 줄거리는 ‘무아교의 여신, 선샤인의 죽음’을 파헤치는 과정이다. 그 죽음의 사인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선샤인의 이모할머니인 선교수와 할머니의 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름다운 미모 때문에 비극적인 정략결혼을 했던 선샤인의 할머니와 얼굴의 반점 때문에 그 불안한 운명을 벗어났던 이모할머니인 선교수. 선샤인의 불행은 할머니의 잘못된 결혼에서 시작되었다. 선교수의 동생이 유명 명사와의 정략결혼을 거부하고 친아버지에게 처참하게 맞은 날, 이런 말을 남겼다.
“난 아버지가 하는 말이 모두 못마땅해. 하지만 하나는 동의해. 우리의 삶의 불행은, 대부분 사회와 제도에서 기인한다는 말. 그걸 개인의 성향 탓으로 돌리는 건 무책임해. 한두 명에게 책임을 지우는 것도 그렇고.”(p84)
‘자신만의 이상적인 교육제도’를 꿈꾸었지만 안타깝게 비참한 운명을 맞이한 동생을 위해 선교수는 무아교를 설립했다. 그리고 손녀인 선샤인은 그런 할머니들의 뜻을 받들어 이상적인 지도자로 성장했다. 하지만 결국 그녀도 역시 자신을 둘러싼 어둡고 두터운 악연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
<선샤인 완벽한 죽음>은 미스터리 추리 형식을 띠면서 대한민국 교육계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 무아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시험제도와 학교 교칙은 놀랄 만큼 우리 교육제도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기회의 평등’과 ‘능력 중심 경쟁’이 얼마나 잔인해 질 수 있는지 무아교 학생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능력 중심의 경쟁제도가 사람의 욕망과 세속적 가치 앞에서 너무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 놀라울 정도이다. 이 소설을 읽으며 올바른 교육 철학이 없는 ‘기회의 평등’과 ‘능력 시험’이 얼마나 무서운 것이지 새삼 깨닫는다.
이 소설은 진정한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 묻고 있다. 이상적이고 아름다웠던 무아교는 선샤인의 죽음 뒤에 얼마나 처절하게 무너졌다. 그녀는 후임 교장으로 부임한 김신영과 맞서 싸우는 진정한 지도자였다. 그녀는 비밀 거래를 통해 자신의 친구들이 속한 고등부를 후임 교장 김신영의 악행에서 지켰지만 안타깝게도 그녀의 후배들이 속한 중등부를 지키지 못했다. 이후 잘못된 교육 철학을 가진 교장 김신영이 중등부 학교를 이리저리 흔들어 대는 모습을 보면 정말 끔찍하다. 선샤인의 죽음보다 김신영 교장이 파괴한 중등부의 현실을 하나씩 살펴보는 것이 더 불편하고 무서웠다. 잘못된 지도자가 이렇게까지 한 조직을 철저하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2022년 대한민국 역시 새로운 지도차의 출발을 앞두고 있다. 그는 우리에게 어떤 리더가 될 것인가? ‘선샤인’처럼 그는 대한민국의 모든 고충을 다 감싸안고 나아갈 수 있는 그릇을 가진 사람일까? 범유진의 소설 <선샤인의 완벽한 죽음>을 보며 참다운 리더의 가치와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를 생각하게 한다. 대한민국의 교육계를 걱정하는 사람이라면, 진정한 지도자의 묵직한 가치를 발견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이 소설을 읽어봐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