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읽는 시간/문요한/더 퀘스트>

'금쪽같은 나 자신', 자신의 인간관계를 재조명하고 재구성하는 책

by 하늘진주


어린 시절, “그렇게 착해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래?”라는 말을 종종 들었다. 이 말을 들을 때 참 기분이 이상했다. 스스로를 딱히 착하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던 터라, ‘착하다는 말’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옛날 농경사회는 순박하고 착한 ‘흥부’가 사람들에게 인망을 얻고 제비에게 보물을 얻는 시절일지 모르지만, 자본주의 경쟁사회는 자기 것을 잘 챙기고 어느 정도 욕심이 있는 ‘놀부’가 더 각광을 받는 시대이다. 그래서인지 ‘착하다는 말’을 들으면 마음이 몽글몽글하기도 하지만 조금은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현대사회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고 승자독식의 세계이다. 그저 ‘착하기만’해서는 이 세상을 살아가기 어렵다. 어린 시절의 나를 아꼈던 사람들은 혹시 착하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호구’로 잡히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나는 언제부터 착했던 걸까?


문요한의 <관계를 읽는 시간/문요한/더 퀘스트>는 사람들의 인간관계를 ‘관계의 틀’로 설명한다. 이 책은 ‘바운더리 심리학’이라는 개념을 이용하여 그 사람들이 어린 시절 형성된 ‘관계의 틀’을 여러 가지 사례를 통해 설명한 후, 보다 성숙한 관계 틀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작가가 영어 그대로 사용하는 '바운더리'라는 개념이 흥미롭다. '바운더리'는 인간관계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해주는 자아의 경계이자 관계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이다. 그리고 ‘자아의 진짜 모습은 혼자 있을 때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바운더리라는 형태로 그 실체를 드러낸다.‘(p11)라고 설명한다. 어린 시절에 형성된 애착은 ’바운더리‘의 기초를 만들어 인간관계를 잘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애착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경우이다. 이 애착 손상의 반복은 바운더리의 문제가 생기고 곧 자아 발달의 왜곡(과분화, 미분화)과 인간관계의 왜곡(억제형, 탈억제형)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특징은 다양한 유형의 예시와 문제 발견에서만 끝내지 않고, 행복한 관계의 조건인 ’바운더리‘를 잘 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까지 제시해 준다는 점이다.


저자 문요한은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이다. 그는 정신과 임상의 관점에서 벗어나 성장 심리학자로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글을 쓰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이 책에는 다양하고 풍부한 사연들과 예시로 가득 차 있다. 나이 든 어르신들은 흔히 ‘물건은 고쳐 써도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의견을 제시하지만, 그는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일생을 통해 사람으로 되어간다’며 사람의 변화와 발전 가능성에 더 주목한다. 이른바 활자의 ‘금쪽같은 나 자신’ 판이다. 이 책을 따라 읽다 보면 ‘정말 그럴까?’라는 기분에서 ‘꼭 그럴 거야’라는 확신을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다.


<관계를 읽는 시간>의 장점은 2 가지다. 하나는 이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내 주변의 상황과 비교하면서 책 내용을 곱씹게 만든다는 점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확신은 없지만 책 내용을 토대로 ‘한번 이것처럼 실행해 볼까?’라는 마음을 들게 한다는 점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묘한 마력이 있다.


책에서 내 관심을 끌었던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착하다는 것'에 대한 분석이다.

앞서 언급한 ‘착함’이라는 부분은 나에게 항상 미지수였다. 작가는 ‘착함’을 ‘성숙한 착함’과 ‘미성숙한 착함’을 구분한다.


다른 사람의 요청을 잘 들어주고, 늘 습관적으로 상대를 배려하는 사람들이 있다. 흔히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착하다’고 한다. 이게 과연 ‘착한’ 게 맞나? 혼란을 줄이려면 착함을 둘로 구분할 필요가 있다. ‘성숙한 착함’과 ‘미숙한 착함’이다. 먼저 ‘미숙한 착함’, 이것은 간단히 말해 ‘순응’이다.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르는 어린이의 모습과 같다. (중략)


성숙한 착함’이란 무엇일까? (중략)

이들은 자기 주관이 있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존중할 줄 알고, 사람들의 시선이 아니라 자기의 내적 기준에 따라 옳고 그름을 구분해서 행동하고, 어려움을 겪는 누군가를 보면 안타깝게 여기고 친절을 베푼다. 많은 사람들은 ‘자기희생’을 착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자기희생에 바탕을 둔 선은 미숙함일 뿐이다. 미숙한 착함에는 의도가 숨어 있다.(p25-26)


어린 시절 난 엄한 부모님 밑에서 많은 형제들과 경쟁하며 자랐기에 이 ‘미숙한 착함’이라는 바운더리가 더 커져 있었던 것 같다. 장녀라고 하지만 연년 생 동생과 2살 위의 오빠가 있는 굉장히 애매한 위치였다. 그래서 ‘장녀’라는 이름으로, 사랑받기 위해 모든 것에 순응했다. 그 모습이 어쩌면 ‘착함’이라는 외면으로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 둘째는 부모 자식 관계의 모든 책임을 부모에게로 돌리지 말라는 것이다. ‘금쪽같은 내 새끼’ 프로그램에서는 애착관계의 책임을 부모에게 상당량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애의 형성과 손상이 일방적인 부모의 책임이 아니라 기질 또한 무시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중 하나는 애착의 형성과 손상을 일방적으로 부모 책임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문제가 어느 한 사람만의 잘못으로 벌어지는 일은 없다. 애착 손상도 마찬가지다. (중략)

이렇게 애착형성이 쌍방향으로 일어나듯, 애착 손상 역시 쌍방향적이다. 부모의 양육태도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기질 또한 무시할 수 없다는 얘기다.(p86)

셋째는 낭비되고 있는 '긍정의 힘'에 대한 이미지이다. 한때 '말하는 데로 이루어진다', '간절히 바라면 온우주가 응답한다'는 유행했다. 작가는 무조건적인 긍정을 경계하고 건강한 바운더리를 키워야 한다고 언급한다.


한때 긍정의 힘이 사회적 트렌드가 된 적이 있다. 긍정적 사고, 긍정적 상상, 그리고 행복이 유행처럼 번져갔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메시지가 난무했다. 그러나 그 결과는 허무했다. 승자독식의 시스템 안에서 개인적인 긍정성만으로는 삶에서 성공을 이룬다는 것은 낭만적이다 못해 비현실적이었다. 그에 비해 바운더리가 건강한 사람들은 삶의 양면, 관계의 양면을 바라볼 줄 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신뢰하지만, 한편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줄 알기 때문이다.(p177)


이 책은 사례 나열과 원인 분석만으로 주장을 끝내지 않는다. 저자는 잘못된 형성된 ‘바운더리’ 일 지라고 노력에 의해 바로 세울 수 있다고 말한다. 그 방법으로 일단 반응을 멈추고(Pause), 욕구를 알아차리고(Awareness), 반응을 조절하고(Control), 자기표현(Self-Expression)과 같은 자기표현 훈련 P. A. C. E와 ‘아니오’ 연습, 마지막으로 ‘자기 세계’ 만들기를 언급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구체적인 방법이 언급된 4부 ‘바운더리의 재구성’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이미 알려진 부분들이 많고, 이렇게 한들 정말 '사람이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작가는 그런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사람이 바뀌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3가지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한다.


첫째, 자신에게 반복되는 문제를 자각해야 한다.

둘째, 의식적인 노력으로 새로운 사고와 행동을 반복해야 한다.

셋째, 간절하고 절박하게 변화를 바라야 한다.

특히 오랜 시간 반복되어온 관계의 틀을 변화시켜나가는 것은 더욱 그렇다.(p254)


인간관계의 틀을 바우고 새로운 바운더리를 재구성하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들은 완벽하지 않기에 더욱 그렇다. 아마도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을 읽으면 자신이 반복하고 있는 관계 방식들을 많이 떠올릴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2년 새롭게 현재의 관계 틀을 바꾸기 위해 실천 의지가 있는 모든 성인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