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진 신세계> by 올더스 헉슬리

by 하늘진주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안정효 옮김/소담 출판사


얼마 전 모 광고에서 신나게 춤추던 여성을 발견하고 참 멋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여성이 가상 여성 로지라는 이야기를 알고는 살짝 놀랐다. 가상인간, 키오스크, 인공지능 로봇, 유전자 가위, 배양육 등 이런 이야기들에 깜짝 놀라기에는 너무 익숙해진 탓도 있다. 2년 전에는 코로나 팬데믹이 이렇게 일상을 사로잡을 지도, 기후위기가 이렇게 심각하게 다가올지도 몰랐다. 2년이면 20세기를 고집하던 촌스러운 감성의 소유자가 미래를 상상하기에 충분한 기간 이리라. 우리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는 과학발전 아래 모든 인간의 존엄성이 상실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리고 있다. 작가가 미래를 상상하며 1932년에 쓴 소설이지만 그에 담겨 있는 내용들은 엄청나게 혁신적이다.

영국의 거장,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템페스트’ 제5막 1장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오 놀라워라!/ 이 많은 훌륭한 피조물이라니!

인간은 참으로 아름다워라! 오 멋진 신세계,

이런 사람들이 사는 곳.’


셰익스피어가 ‘멋진 신세계’라 불렀던 이 무인도에는 추방된 왕 프로스페로와 그의 딸 미란다 그리고 요정 에이리얼 사이에는 힘의 알력이 존재한다. 역시 또 같은 이름의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에도 역시 인공적으로 짜인 ‘알파, 베타, 감마, 델타, 엡쉬론’이라는 5개의 신분이 존재한다. 아무리 멋진 신세계여도 계급은 존재한다. 미래 사회는 태아들이 인공수정이 될 때부터 신분을 나누고 철저하게 교육을 시킨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 세계의 사람들은 누구도 자신의 출신, 본질에 대해 의심을 품지 않는다. 혹 힘든 일이 생기거나 불안을 느낄 때면 ‘소마’라는 환각제로 마음을 다스린다. 그 옛날 로마가 ‘빵과 서커스’로 백성들의 불만을 잠재웠던 것처럼 말이다. 질병도 노화도 존재하지 않고 평화로움이 가득한 이 세계를 ‘신세계’라고 불렀다.


조금씩 평화롭고 완벽했던 신세계는 야만인 지역에 낙오되었던 베타 출신 린다가 낳은 야만인 존이 등장하면서 점점 균열이 생긴다. 존은 공동체 생활과 5 신분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자꾸만 인간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급기야 그는 소마로 행복한 신세계 사람들을 향해 “당신들은 노예로 사는 것이 좋습니까? 자유롭고 싶지 않나요?”라고 절규한다. 당연히 신세계 사람들은 그런 존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신세계는 안정을 위해 신과 시, 참된 위험, 자유, 선, 악과 같은 모든 것을 파괴한 사회였던 것이다. 결국 존은 신세계에서 추방되어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어 쓸쓸히 죽음을 맞는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눈부신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인한 무지갯빛 유토피아를 꿈꾸고 싶지만 현재 상황들을 고려하면 바이러스로 가득한 회색빛 디스토피아만 생각날 뿐이다. 만약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이 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다시 작품을 구성한다면 어떤 식으로 전개가 됐을지 궁금하다. 그는 헨리 포드의 대량 생산 시스템이 불러온 경제 문화의 변화, 유럽의 파시즘 및 소련의 전체주의적 정치 상황 때문에 ‘멋진 신세계’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그는 작품에서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묘사했다며 혹평을 받았지만 솔직히 지금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은수저, 금수저가 존재하고 돈이 돈을 부르는 머니 세상이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출신과의 비교와 욕심을 버려야만 한다. 현대판 감마, 델타, 앱쉬론인 우리가 자꾸만 현대판 ‘소마’인 쇼핑, 주식, 게임 등에 중독되는 것은 행복하기 위한 우리만의 몸부림이다. 이런 우리에게도 야만인 존은 여전히 ‘정신 차리라’라고 호통을 칠 수 있을까? 기후위기, 젠더 갈등, 백신 전쟁, 코로나 바이러스, 온갖 것들이 가득한 2021년, 내년에는 부디 행복한 미래를 꿈꿀 수 있기를.

브라보 우리 멋진 신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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