쉽게 떠올릴 수 없는 말, 죽음

by 하늘진주

지난 3월, 오미크론 바이러스가 활개를 쳤을 때 정말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처음이었을 것이다. 서울과 수도권 화장터가 넘쳐나는 사망자 수를 감당 못해 마비가 된 것은 말이다.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된 채 화장될 순서만 기다리며 널브러진 관들의 모습을 묘사한 기사를 읽으며 죽음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죽음은 기록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종교인들, 철학자들을 포함한 사색하는 사람들의 오랜 고민거리이다. 죽음의 의미를 객관적인 사실로만 살피자면, '한 생명체의 모든 기능이 완전히 정지되어 원형대로 회복될 수 없는 상태'이다.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며 저마다의 관점으로 그 의미를 해석했다.

삶과 죽음은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이다. 삶이 있어야 죽음이 있고 죽음이 있어야 삶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죽음을 향해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는 생명의 시계 앞에서 다양한 사고방식으로 삶을 해석해 왔다. 첫째가 현실에 충실한 삶이요, 둘째가 사후 세계를 염두에 둔 삶이다.


첫 번 째 현실에 충실한 삶은 현생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삶이다. 현실적인 삶의 대표주자인 로마인들은 '메멘토 모리’, ‘카르페 디엠’이라 자주 되뇌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하는 라틴어 낱말이다. 옛날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를 거두고 개선하는 장군이 시가행진을 할 때 노예를 시켜 행렬 뒤에서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고 한다.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라고 외치며 인간 생명의 유한함을 일깨웠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키팅 선생님이 언급하면서 유명해진 문구, '카르페 디엠'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뜻의 라틴어이다. 이 두 단어 모두, 현생의 소중함, 지금 누리는 시간의 소중함을 알려준다.


두 번째는 사후 세계를 생각하는 삶이다. 인간의 삶은 무한하고 현생이 끝나고 다른 생은 무한히 반복된다고 알려준다. 그래서 주로 종교와 연결 짓는 경우가 많은데, 종교인들은 현생 이후의 삶을 위해 생전에 덕을 쌓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들이 그리는 사후세계는 현생의 죄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변화무쌍한 곳이었다. 어떨 때는 지옥이, 어떨 때는 천국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문학인들 역시, 다양한 상상력으로 사후세계의 모습을 그렸다. 그런 작품들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의 ‘신곡’이다. 장편 서사시 ‘신곡’에서 그는 사후세계의 모습을 상상하며 매우 흥미롭게 그렸다. 단테는 길잡이 베르길리우스와 ‘지옥과 연옥’을, 그의 첫사랑 베아트리체와는 ‘천국’을 여행하며 솔직한 감정들을 작품 속에 녹여냈다. 이 작품에서 호기심 있게 다가왔던 부분은 ‘지옥편’의 ‘림보’이었다. 이 장소는 고대인이나 타 종교인, 아기 등 세례성사는 받지 않은 선한 자가 가는 곳으로, 어떠한 형벌도 받지 않고 고급 대우를 받으나 대신에 하느님을 볼 수 없는 지역이다. 지옥의 일부지만 죄를 짓지 않은 아기, 또는 현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라 매우 평화로운 분위기이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죽음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지금껏 접한 죽음은 문학 작품에서, 대중매체에서 혹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접한 지식이자 경험들이다. 분명한 것은 죽음이 너무나 아득히 멀리 있지만은 않다는 사실이다.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한순간 한순간 싱그러운 생명력이 더해갈 때마다 매번 죽음이 가까이 존재함을 느낀다. 나이와 신체의 연약함의 여부와 상관없이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존재한다. 나이가 먹어 자연스레 죽음을 맞이할 수 있고 갑작스러운 사고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문화에서 이 죽음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할 준비가 안 되었다는 것이다. 특별한 명절마다 건네는 인사말 '만수무강하십시오'에는 그런 사람들의 욕망이 여지없이 드러나 있다. 이 명백한 죽음 앞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선택한 방식은 외면이다. 병색이 완연한 몇몇의 사람들을 제외하고 일상생활에서는 이 죽음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삶과 죽음 사이에 많은 고찰과 고민이 오갈지라도 죽음은 언제까지나 숨겨야만 하는 금기어이다.


40대 중후반의 나이에 들어서면서 죽음이란 단어는 매일매일 머릿속으로 파고든다. 제2의 사춘기라 할 수 있는 갱년기에 접어들어 그렇게 느낄 수 있고, 이제는 장례식장을 자주 들락거리는 나이가 되어서일 수도 있다. 실제로 접하는 마지막 죽음의 모습은 너무도 현실의 삶과 와닿아 있었다. 처음 친구 친정아버지 장례식 때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울부짖는 상주들, 검은 옷을 입은 문상객들, 부조금을 거두는 사람들, 쉴 새 없이 대접되는 갈비탕과 음식들, 그리고 떠들썩하게 화투 치는 사람들. 막연하게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상상했던 모습처럼, 살아있는 사람들과의 마지막 이별 현장은 엄숙하지도 비극적이지도 않았다. 삶과 죽음의 광기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널뛰고 있었다.


죽음은 누구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그 사실을 외면하고 싶고 우리 마음에서 몰아내고 싶은 이유는 죽은 사람을 영원히 가까이에서 보고 느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근 3년 동안 코로니 팬데믹으로 가족들과 생이별 중이었지만, 언젠가 볼 수 있는 것과 영원히 볼 수 없는 것은 엄청난 차이다. 그래서 매번 죽음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가장 마음이 아프게 다가온 부분은 그런 죽음 이후 남겨진 가족이었다. 특히 갑작스러운 죽음, 자살을 시도한 사람들의 기사를 접할 때마다 '그들은 왜 그런 선택을 했을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극단적인 선택을 할 만큼, 그들은 어떤 삶의 굴레를 지니고 있었을까?

몇 년 전 한 아파트에서 모든 자식들을 대학에 잘 보낸 중년 여성이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렸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도 그 아줌마의 극단적인 선택에 무척 놀랬다. 이유야 어떻든 남겨진 가족들의 슬픔과 아픔만을 생각하며 그 선택을 한동안 이해할 수 없었다. 두 자식만을. 남기고 세상을 떠난 고 최진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창 비슷한 연령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던 시기라 여배우의 모진 선택을 원망했었다.


이제 삶과 죽음에 대해 직접 보고 느끼는 나이가 된 지금, 예전만큼, 그들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다며 애써 마음의 문을 닫지는 않는다. 어쩌면 그들 주위에는 그런 잔인한 선택을 하기 직전까지 속내를 털어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닐지 안타깝기만 하다.

숨기고 감추고 죽음을 당사자만이 짊어져야 할 금기어가 아니라 허심탄회하게 말하고 힘든 점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문화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은 아닐지 문득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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