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하게 아름다운 배우 윤여정

by 하늘진주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 배우 윤여정의 연기를 꼼꼼히 살펴본 적이 없다. 드라마 속에는 수없이 많은 천부적인 연기자들이 있었고 그들의 연기를 하나하나 즐기기에도 내 시간은 항상 부족했다. 그러니 취향과 맞지 않은,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왠지 ‘센’ 이미지를 가져 무서워 보이는 배우 윤여정의 연기를 굳이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작년 영화 ‘미나리’로 한국인 최초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탄 뒤에도 말이다. 한마디로 큰 관심이 없었다. 그녀의 이야기와 모습을 살펴보는 것은 이따금 등장하는 인터넷 기사와 예능프로만으로도 충분했다. 어차피 TV에서 보이는 유명인들의 공간은 그들만의 세상이니 말이다. 그랬던 내가 요즘은 참된 어른의 모습, 닮고 싶은 멘토의 이미지로 그녀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처음에는 그녀가 그렇게 배려가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유머가 있고 재미있고 소신 있는 멋진 어른으로만 여겼다. 그녀는 해외 유명인들 앞에서도 전혀 꿀리지 않았고 당당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도 그렇게 느낀 탓인지 그녀가 등장하는 TV 광고들은 항상 ‘당당하게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 모습’으로만 그녀를 묘사했다. 나이가 들어도 주눅이 들지 않게 영어를 쓰고 멋지게 할 말 다 하는 사람, 뭐 그 정도만으로 충분히 닮고 싶은 훌륭한 어른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PD 나영석은 그녀의 또 다른 면을 보여주고 싶은 탓인지 ‘뜻밖의 여정’이라는 예능을 다시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아카데미 영화제 시상자로 발탁된 후 그녀가 미국에서 겪는 일들을 보여주는 관찰식 예능이다.


첫 방송을 본 소감은 신기하긴 했지만 별 특별한 것이 없는 ‘나영석’ 표 예능이었다. 그의 영원한 예능 페르소나 이서진은 나영석 PD와 여전히 티격태격 댔고, 매니저 일이 귀찮아서 툴툴거렸다. 이런 장면들은 나영석 PD의 또 다른 예능에서도 이미 많이 봤던 모습이었다. 그래서 무심히 리모컨을 이리저리 건드리며 크게 집중하지 않았다. 그러다 '어?'라며 새로운 감정이 들었던 지점은 배우 윤여정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그렇다고 이 예능에서 그녀가 특별히 카리스마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줬던 것은 아니다. 배우 윤여정은 평범했고 소탈했다. 그녀는 명란젓과 누룽지를 즐겨 먹고 큰 방이 무섭다며 툴툴거렸다. 젊은 세대와 잘 소통하고 어울리는 모습이 좀 신기했지만 그뿐이었다. 그저 흔한 연예인들이 보여주는 방송용 이미지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방송이 조금씩 진행되는 동안, 그녀가 남들과 다른 점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카랑카랑한 목소리와 무뚝뚝한 그녀의 표정 속에 숨어 있는 마음과 배려는 너무나 따뜻했다. 카메라 밖의 스텝들을 하나하나 챙기고 말을 걸어주었다. 솔직히 그녀 정도의 위치와 명성을 가진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면 남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는 것이 더 익숙할 것이다. 더 이상 힘들게 새로운 것을 배우고자 노력할 필요도 없고 적당히 어울리기만 해도 ‘훌륭한 어른’이라는 이미지를 지닐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면지를 활용해서 영어 인터뷰를 준비하고 나이 어린 스텝들을 배려하며 화보 촬영을 준비했다. 나이가 들었다는 핑계로 적당히 쉬면서 촬영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모든 스텝을 배려해 최대한 빨리 촬영이 끝날 수 있도록 집중력을 놓지 않았다. 뭐 여기까지는 ‘꽤 괜찮은 어른’이라고 생각하며 박수 정도는 쳐 줄 수 있었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보여줬던 그녀의 모습이다.


배우 윤여정은 블랙 드레스에 우크라이나 난민을 지지하는 파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아카데미 시상식 레드카펫을 밟았다. 며칠 전부터 아카데미 남우 조연상 후보에 오른 사람들의 이름을 하나씩 살펴보며 잘 발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작년에 브래드 피트가 그녀의 이름을 애매하게 불렀던 일을 떠올리며 “그거 굉장히 연습한 거다. 나처럼 연습했을 거다"라며 브래드 피트를 향한 공감을 표했다. 남우 조연상을 시상하기 전 청각 장애인 배우 트로이 코처를 위해 “그가 수상했으면 좋겠다”라고 수어로 뜻을 전하기도 했다. 배우 윤여정이 멋지고 아름다운 것은 어설픈 친절함이 아닌 따뜻한 배려요, 관심이다. 그녀는 젊은 스텝들의 인생 고민에서도 쉽게 조언하지 않는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는 거’라며 뭐든지 열심히 해 보라고 말한다.


어떻게 그녀는 다른 사람들을 향해 그런 배려를 몸에 체득할 수 있었을까? 어떻게 그녀는 젊은 사람들의 고민을 자신의 경험과 빗대 쉽게 조언하지 않을 수 있을까? 배우 윤여정을 보며 참된 어른의 모습을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 만난 어른들은 고민을 털어놓으면 항상 자신의 경험과 더불어 조언을 늘어놓았다. 그들이 말하는 이야기들은 사회가 인정하는 정답들이었다. 누구나 느끼는 생각들, 그래서 더 답답한 마음이 들게 하는 정답들 말이다. 나 역시도 우리 아이들을 보면 매번 그런 이야기를 잔소리처럼 덧붙였다. ‘공부는 다 때가 있고 학창 시절을 잘 보내야 한다.’ ‘다른 일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가장 쉬운 길이 공부다’ 무엇인 진짜 공부인지 잘 알지 모르면서 학교 등수 세우는 공부를 부추기고,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안정된 길을 하는 것이 참된 진로인 양 말했다. 배우 윤여정을 보면 그것만이 다는 아닌 듯싶다. 나이가 들어도 영어 공부를 할 수 있고, 새로운 공부를 계속할 수 있으니 말이다. 나이가 들어서 좋은 것은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선택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아닐까? 항상 나이 때문에 도전을 멈추고 의미가 없다는 듯 포기를 했지만, 가장 내 도전을 막는 주체는 그런 마음을 먹는 나 자신이다.


내가 앞으로 나이를 먹는다면 배우 윤여정처럼 늙고 싶다. 그녀의 명성, 부를 닮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인생관을 닮고 싶다. 젊을 때는 치열하게 살고 늙을 때는 ‘사치’하며 살기. 여기서 그녀의 ‘사치’는 돈을 펑펑 쓰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일과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런 ‘사치’ 좀 하겠다는데 나이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 역시도 사회가 은연중에 강요하는 ‘나이 공격’에 주눅이 들지 않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내 인생 한번 살고 싶다. 윤여정, 참 아름다운 배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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