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초록 창에 ‘블랙독’을 입력하면 제일 첫 화면에 2019년에 방영했던 드라마 ‘블랙독’이 가장 먼저 뜬다. 기간제 교사 고하늘의 시선으로 대한민국 교육계의 현실을 들여다본 이야기로 나 역시도 무척 재미있게 봤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 제목 ‘블랙독’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계속 궁금했다. 왜냐하면 내게 있어 검색 1순위 ‘블랙독’은 레빈 핀 폴드의 그림책이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에서 던지는 ‘블랙독’의 의미는 분명하다. 마음 깊숙이 자리 잡은 잠재적인 두려움, 공포이다.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그림이 글보다 중요한 힘을 가지고 있는 책은 여러 번 곱씹어 봐야 그 의미를 알 수 있다. 특히 이 ‘블랙독’처럼 많은 의미를 담고 있는 책은 한 번만 쓱 봐서는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른다. 솔직히 이 그림책은 그렇게 친절한 책은 아니다. 우선 배경이 어두컴컴하다. 그리고 등장인물들도 ‘디즈니 애니메이션’처럼 생기가 넘치고 예쁘지도 않다. 사실적인 인물들에 커다란 검은 개까지, 솔직히 쉽게 읽고 싶은 책은 아니다. 하지만, 그 마음만 꾹 누르고 읽으면 꽤 괜찮은 그림책이다.
어느 고요한 아침, 호프 아저씨네 집 앞에 검은 개 한 마리가 나타난다. 호프 가족들은 이 개를 발견한 후 자기 안의 두려움을 재료 삼아 점점 검은 개의 크기를 키운다. 처음에는 코끼리만 한 크기, 티라노사우루스만 한 크기로 키우다가 급기야는 빅 제피 만한 검둥개를 키워낸다. 이 어마 무시하게 커다란 검은 개를 원래의 크기대로 되돌린 사람은 막내 ‘꼬맹이’다. 막내가 선택한 방법은 우리가 익히 아는 방법이다. 먼저 두려움과 마주하고 차근차근 같이 접하며 두려움과 친해지기, 직접 두려움과 마주하기가 바로 이 꼬맹이가 선택한 방법이다. 실제로 우리가 직면하는 두려움들은 내재한 부정적인 감정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일 수 있다.
생각해 보니 그동안 나를 괴롭힌 감정들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을 보고 키워낸 나만의 부정적인 감정들이었다. 수업하다 접한 학생들의 집중 못 하는 모습들, 노골적으로 힘들어하는 시선들을 보면 ‘내가 뭘 잘못했나?’, ‘난 지금 무엇을 해야 하지?’ 학생들의 상황, 시간을 살펴보면 분명히 무엇이 문제일지 파악할 수 있는데, 항상 그 부정적인 감정들은 극단적인 결과로 치달았다. 학생들이 힘들어하면 쉬게 하면 되고, 어려워하면 다독이면 되고, 다른 여러 가지 방식으로 풀 수 있는데, 꼭 ‘이제 그만할까?’라는 결론으로 갔다가 항상 극복의 시간을 가지곤 했다.
글도 마찬가지다. 마음대로 원하는 대로 쓰지 못하면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글은 재능 있는 사람에게 맡기고 나는 이만 ‘즐거운 독자’로 남을 까 싶다가도 항상 티끌만 한 미련 때문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곤 한다. 이 모든 것이 내 안의 블랙독과 직접 마주하지 않고 남의 블랙독으로 나를 바라봤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인생의 벽돌집은 쌓는다는 것은, 내가 원하는 집을 짓는다는 것은 남의 시선, 남의 집이 중요하지 않다. 나만의 벽돌로 차근차근 쌓아가는 것, 서두르지도 않고 조급하지도 않고 나만의 속도로 쌓는 것 그게 중요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는 블랙독의 입김으로 쉽게 날아갈 수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