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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ul 01. 2022

글쓰기는 마음속의 전쟁터

 다른 일에 지치고 글 쓰는 미래에 대한 확신이 점점 없어지는 요즘, 자꾸만 ‘포기’라는 말이 머릿속을 크게 자리 잡기 시작했다. 몇 년째 이어오던 동화 합평 단톡방도 ‘개인 사정’이라 핑계 대며 뛰쳐나왔다. 방황하는 내내 계속 글을 써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했다. 어쩌면 나이와 재능을 핑계 삼아 ‘행복한 독자’라는 이름으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세상에는 하고 많은 미래의 소설가, 동화 작가들이 넘쳐나니 나 하나 손을 보탠 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다. 그렇게 서서히 창작을 그만 둘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 복잡한 마음으로 얼마 전부터 H센터의 문학창작과 정신분석학을 연결시킨 강의를 신청했다. 다시 시작할 동기를 찾고 싶었지만, 어느 정도는 자포자기한 상태였다. 생각과 달리 그 강의가 썩 마음에 들지도 않았다. 너무 전문적이어서 오랜만에 학부 때 교수님의 전공강의를 듣는 느낌이었다. 기분전환으로 말랑하게 들을 수 있는 인문학 강의가 아니었기에, 굳이 이것을 들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강의 내내 시큰둥한 표정으로 ‘바로 환불 신청하면 수강료는 되돌려 받겠지?’라는 생각만을 떠올렸다. 그즈음, 갑자기 강사분이 한 문장을 수강생들에게 툭 던졌다. “창작활동, 너무 힘드시죠? 여러분들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전쟁터로 있는 것입니다.” 이 강의는 문학 창작하는 사람들의 사고를 확장시키는 목적이기에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분은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는 수강생들을 향해 자신의 험난한 창작 경험을 친절히 풀어냈다. 외롭고 어렵고 돈벌이도 안 되는 고난의 길을 말이다. 점점 그 내용들이 내 머릿속을 콕 파고들었다.


 혼자만의 창작활동은 너무 힘들다. 지금 처한 현실 역시, 기존의 모든 일들을 접어두고 오로지 글만 쓸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문우들과의 합평 마감일을 지키려 글을 쓰려고 해도 주변의 일들이 나를 그대로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가족들의 끼니에 맞춰 식사를 준비하고 집안일을 해야 했다. 외부 일들이 몰아치는 날에는 그 일에 집중을 하며 에너지와 생각들을 분리시켜야 했다. 오로지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을 가지기는 불가능했다. 그런 일이 매번 반복되다 보니 도저히 창작을 지속할 자신이 없어 내 발로 합평을 나와버렸다. 활발하게 휘몰아쳤던 영감과 상상들은 어느 순간부터 사라져 버렸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이제 그만할까 싶은 생각들이 계속 마음속에 쌓이기 시작한 것은 말이다.


 처음 나만의 창작물을 만들려고 마음먹었을 때만 해도 이 과정이 이렇게 지루하고 힘들 줄은 몰랐다. 그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작가들이 너무 멋져 보였다. 빛나는 스타들을 동경하는 팬의 마음으로 막연하게 이 고독한 전쟁터로 뛰어들었다. 하지만 이곳은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 없고 오로지 혼자만이 견뎌야 하는 쓸쓸한 싸움터였다. 끊임없이 자신의 재능에 대해 의심하고 남의 빛나는 업적을 질투하는 자리였다. 글을 쓰지 않는다고, 작품의 구상이 되지 않는다고 불평할 수 없고 혼자서만 끙끙 앓아야 하는 그런 곳 말이다.


 어쩌다 막상 작품을 내놓는다고 해도 자신만의 싸움이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진정한 본인을 괴롭히는 공격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끊임없이 자신의 세계로 침범하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시선들을 직접 견뎌야 했다. 이미 손을 떠난 작품은 내 것이 아니기에 읽는 사람들의 관점과 생각에 따라 갈가리 찢어지는 평가를 받아야 했다. 조금이나마 좋은 합평을 받으면 다행이다.  창작하던 시절의 내 모습은 글을 읽는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며 어쩔 줄 몰라하는 비굴한 습작생이었다. 그 과정에서 자신감이 끝없이 추락하기도 하고 또다시 상승하는 경험을 했다.


 강사분이 '창작 활동이 외로운 싸움’이라고 말했을 때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현재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외로운 혼자만의 싸움을 진행하고 있는 듯했다. 모두가 걸어가는 문학 창작의 속도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누군가는 한창 앞에서 열심히 자기 길을 찾고 있을 테고, 또 누군가는 나처럼 그만둘지, 말지를 고민하며 컴퓨터 앞에 앉아 있을 것이다. 비단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뿐만 아니다. 미래에 대한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현대인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싸움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앞날에 대한 불안과 회의 속에서 스스로를 끝없이 몰아치면서 말이다. 분명한 것은 그 속에서 자신을 강하게 보호할 수  있는 은신처 하나는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곳이 나에게는 창작이었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매번 반복하는 과정이지만 또다시 마음을 다져본다. 다른 사람들보다 나은 장점이 벌로 없지만 좀 뻔뻔스러워지련다. '내가 최고'라는 자뻑을 가지면서 말이다. 사람들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좀 더 마음의 벽을 단단히 만들어 보련다. 어쨌든 아예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후회를 할 테니까 말이다. 가장 빛나고 아름다운 나만의 승리를 꿈꾸며 오늘도 그렇게 의지를 다진다. 그리고 다시 한번 문우들의 합평 방 문을 두드려야겠다. (설마 내쫓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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