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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un 10. 2022

글쓰기, 당신은 플로터인가, 팬서인가?

“플로터 plotter로 알려진 작가는 먼저 이야기의 줄거리를 만든 다음 글을 쓰기 시작한다. 그들은 글쓰기의 매 단계에서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이야기가 어떻게 끝날 지를 알고 있다. 반면 팬서 pantser로 불리는 작가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어떻게 끝날 지를 거의 또는 전혀 알지 못한 채 그때그때 글쓰기에 자신을 내맡긴다.”


 한마디로 플로터 글쓰기는 계획적인 글쓰기, 팬서 글쓰기는 자유로운 글쓰기이다. 이 방식은 글쓰기에서뿐만 아니라 책 읽기, 말하기에도 적용시킬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 좋아하는 책 읽기 방식은 팬서의 방식이었다. 작가가 글 속에 어떤 내용들을 말하고자 하는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여러 문장들을 조합해서 추적하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었다. 너무 쉽게 작가의 의도가 읽히는 책들은 시시했고 지루했다. 어릴 때 애거스 크리스티의 추리물들에 심취했던 것은 그런 연유였을 것이다. 아마도 플로터 방식이었을 작가가 철저한 계산 속에  숨겨놓은 실마리를 찾는 것은 너무 신났다.  생각할 시간이 많았고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에 익숙해지면서 플로터의 방식이 더 편했다. 시간이 얼마 없는 상황에서 두서없이 주제와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답답했다. 자연스레 “그래서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뭔가요?”라고 묻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이런 말투는 종종 남편이 여러 가지 상황에 지쳐 복잡한 감정들을 쏟아내는 나를 보며 건네는 대화 방식이다. 그때는 정말 서운하고 속상했는데 어느 순간 나 역시도 이런 화법을 쓰고 있었다.


 글쓰기로서의 팬서, 플로터 두 방식에는 장단점이 있다. 팬서 글쓰기의 가장 큰 장점은 무작정 쓰기에 부담감이 없고 생각을 마음껏 풀어낼 수 있다. 답을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손가락이 움직이는 대로, 생각의 흐름대로 글을 적다 보면 생각지도 못하는 사고의 보물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평소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고, 나 자신에 대해 깊이 사색할 수 있다. 상상력과 창의력, 창조성이라는 뜻밖의 발견을 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이 팬서의 글쓰기 일 것이다.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듯이, 이 팬서 글쓰기의 가장 큰 단점은 한마디로 요약정리가 어렵다. 글 쓰는 작가 역시 무슨 이야기가 진행될지 잘 모르는 체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리기에 ‘자신의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다’라고 확실히 말할 수가 없다. 시간이 없고 성미가 급한 독자들은 언제라도 떠날 수 있는 글쓰기이다.


 그에 반해, 플로터 글쓰기는 확실하고 명료하다. 제일 먼저 쓰고자 주제를 명확히 세운 다음에 매 단계에 어떤 이야기를 할지도 정확하게 정해 두었기에 글쓰기도 훨씬 편안하다. 독자 역시 이다음에 어떤 이야기가 진행될지 알기에 편하게 작가의 생각을 따라갈 수 있다. “그래서 작가님이 하시고자 하는 내용이 뭔가요?”라고 물을 필요도 없다. 깔끔한 목차와 잘 연결된 이야기의 흐름, 이것이야 말로 플로터 글쓰기의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런 글쓰기는 기존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 한마디로 ‘뜻밖의 발견’을 하기가 어렵다. 이미 결과가 정해진 상황에서 글을 쓰기 때문에 책 속의 등장인물이 생동감 있게 인생을 개척하기보다는 창조자인 작가의 취향대로 결론을 짓고 말 것이다.


 정말 글쓰기에 물이 오른 작가들은 “등장인물들이 스스로 제 이야기를 만드는 바람에 나 역시도 어떤 내용이 진행될지 모르겠어요.”라는 표현을 쓴다. 아마도 이런 말을 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팬서 글쓰기를 선호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팬서의 글쓰기든 플로터의 글쓰기는 모두 흥미로운 방식임에는 틀림없다. 가끔은 감정의 극단으로 치달아서 마음껏 내갈기는 팬서처럼 글 쓰고 싶고, 또 어떨 때는 정제된 감정으로 ‘기-승-전-결’이 완벽하게 짜인 플로터의 글쓰기도 경험하고 싶다. 글을 쓰면서 내가 깨달은 진리는 오직 하나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듣는 조언이다. 어떤 주제도 상관없이 매일 꾸준히 써 보는 것. 오늘도 그 결심을 지키기 위해 컴퓨터 타자를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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