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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un 12. 2022

수업과 회의에서의 침묵, 어떻게 즐기시나요?

 침묵, 이 단어는 참 재미있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그 의미가 자유롭게 해석된다. 가령, 자신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는 독재자의 침묵은 ‘독’이다. 인정의 말하기를 통해 그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하는 경우, 침묵은 희생자들을 피폐시키는 독이 될 수밖에 없다. 일촉즉발 싸움의 위기 속에서 사안을 되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사람들의 침묵은 ‘금’이다. 때로는 수많은 말보다 잠시의 침묵이 더 도움이 되기도 한다. 이처럼 침묵은 ‘독약’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떤 상황에서는 독이 ‘약’으로 쓰이고, 과도하게 사용하면 ‘독’이 되는 것처럼, 양면성을 지닌 단어, 바로 침묵이다.


 침묵의 사전적인 의미는 '아무 말도 없이 조용함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언어들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풍의 눈’처럼 잠잠하고 조용한 순간이다. 침묵에는 때때로 신비로운 힘이 존재한다. 왁자지껄한 사람들의 대화에서 벗어나 만난 고요한 자연의 풍경 앞에서 자연스레 명상에 젖게 되는 것은 그런 힘 때문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묵언수행’으로 스스로 침묵을 하며 시끄러운 마음을 정화시킨다. 이처럼 침묵에는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 때때로 침묵의 시간을 가지면 평소 시끄러운 감정들을 가라 앉혀 감정들을 되돌아볼 수 있고, 생각들을 정리하고 가다듬을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본인의 내면과 깊이 조우할 수  있는 마법과도 같은 시간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빠름 빠름’을 지향하고 ‘속도감이 있는 결과물’을 추구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침묵은 그다지 유용한 가치가 아니다. 질문을 던진 후 몇 초안에 답이 재깍 나와야 ‘순발력이 있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느린 침묵과 머뭇거리는 대답은 ‘느리고 순발력이 부족한 사람’으로 치부되기 십상이다.


 얼마 전에 참관했던 둘째 아이의 중학교 공개수업의 모습도 이 상황과 다르지 않았다. 선생님은 질문을 하자마자 한 아이의 번호를 불렀고 미처 정답을 생각하지 못한 친구는 바로 하지 못했다. 갑작스러운 선생님의 질문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얼굴이 빨개진 아이는 계속 머뭇거리다가 재차 던지는 선생님의 힌트를 얻어 겨우 정답을 생각해 냈다. 선생님은 그런 친구의 대답을 칭찬하며 어색한 수업 분위기를 애써 부드럽게 이끌어 갔다. 하지만, 그 상황을 보며 ‘만약 아이들이 3~5분 정도 미리 생각을 정리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다음 질문을 던졌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면 그 아이도 좀 더 자신감 있게 선생님의 질문에 답을 말하지 않았을까?


 솔직히 이런 난처한 경우들은 학창 시절 누구나 경험했다. 참 곤란하고 싫은 상황이다. 그래서  특정 과목이 든 날이면 발표시킬 가능성이 있는 선생님의 질문들을 미리 뽑아서 예상 답안을 빼곡히 적어 놓곤 했다.  미리 준비해서 친구들 앞에서 얼굴이 벌게지는 망신살을 최대한 줄이고 싶었다. 내 생각의 속도는 느렸고 순발력이 없었기에 어쩔 수 없는 생존전략이었다. 그러면서 다른 아이들처럼 재빨리 생각하고 답하지 못하는 나 자신이 참 한심했다. ‘난 왜 이렇게 생각을 빨리 못할까?’, ‘난 왜 이렇게 뭔가를 하려면 시간이 걸리지?’라며 나를 탓하곤 했다.


 성인이 된 후, 참여자와 진행자를 모두 경험하는 입장이 되니 자연스레 침묵에 대한 질문을 떠올리게 되었다. ‘왜 선생님들은 학생들에게 침묵하며 생각하는 시간을 주는 것에 인색한지’ 궁금했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도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 후 아이들이 답을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온전히 즐기지는 못했다. 기껏 생각하며 답을 작성할 수 있는 시간을 3~5분 정도 주었지만 내 언어는 침묵하지 못했다. 아이들의 반응들을 관찰하며 혹 질문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을까 봐 그 짧은 시간 내내 추가 설명들을 덧붙이곤 했다. 아이들의 조용한 침묵의 시간은 많이 두려웠고 계속 그 조용한 시간을 다른 대화로 채우고 싶었다.


 아마도 선생님들을 비롯한 진행자들이 질문을 던진 후 온전한 침묵의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는 두 가지일 것이다. 첫째는 참여자들이 추가 설명 없이 답을 찾아낼 수 있을 지에 대한 두려움이요, 둘째는 사람들이 질문을 잘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해 염려이다.


 특히 학교에서의 선생님들은 친절한 잔소리꾼의 성향을 지니고 있다.(물론 우직하고 잔소리를 안 하는 선생님들도 많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의 지식과 생각의 폭을 넓혀 주는 것을 사명으로 삼고 있기에 아이들이 알려준 내용을 잘 따라오고 있는지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다. 그래서 계속 물어보며 아이들의 반응들을 관찰하는 것이다. 그 행동이 때로는 짧은 침묵으로, 혹은 긴 침묵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들은 참여자들에 대한 굳건한 믿음으로 풀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혹 아이들의 침묵이 질문에 대한 부족한 이해에서 비롯되었다면 다시 한번 ‘질문의 내용이 잘 이해가 되었는지’를 물어보라고 제안한다. 침묵도 상황과 반응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해야 선생님과 학생이 잘 감당할 수 있는 마법과 같은 시간이 완성된다.


 질문을 던진 후 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서 오가는 침묵의 시간은 참 견디기가 어렵다. 아이들은 그 질문의 답을 빨리 대답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선생님은 학생들이 잘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닌지 두려움에 빠진다. 쉽게 답이 나올 수 있는 단답형의 질문이 아닌 깊은 사고를 필요로 하는 사색 질문의 경우, 학생들도, 선생님도 침묵의 시간을 쉽게 견디지 못한다. 아무나 빨리 침묵을 깨 주었으면 하는 생각들이 가득하다.


 침묵, 잘 멋지지만, 온전히 감내하며 견디기가 참 어려운 시간이다. 언제쯤이면 수업과 회의에서 오가는 침묵의 시간들을 즐기게 될까? 1분, 2분, 3분... 시간을 재어 본다. 침묵의 시간, 생각보다 그렇게 길지 않다. 그래, 딱 3분만 입을 꾹 다물고 침묵을 잘 견뎌 보리라. 내 심장이 쇠심줄처럼 단단해 지길 고대하며 사람들과의 만남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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