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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ul 21. 2022

똑바로 보아도 거꾸로 보아도 공정한 세상?

 요즘,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모르면 ‘어떻게 이 드라마를 안 볼까?’라는 의아한 시선을 받을 만큼, ‘우영우 신드롬’이 확산되는 나날이다. 자폐인 역할을 맡은 박은빈의 신들린 연기, 그녀의 배역을 둘러싼 다양한 등장인물들까지, 드라마의 열기는 점점 더해지고 있다. 처음에는 자폐 스펙트럼 변호사 역할을 맡은 박은빈의 엉뚱함이 귀여워서 보기 시작했다가 점점 그녀 눈으로 보는 우리 주변 사회의 차별에 점점 눈을 뜨고 있다.


 이 드라마는 ‘장애인’이 주인공이라고 해서 희망만을 주장하지도, 안타까운 현실만을 언급하지도 않는다. 우영우는 ‘나'로 이루어진 혼자만의 세계’에 살고 있는 인물이다. 자신을 '똑바로 읽어도 우영우, 거꾸로 읽어도 우영우'라고 소개하는 것처럼 그녀의 세계는 오직 자신만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런 그녀가 용기 내어 다른 세상으로 껑충 뛰어들어다. 현실 속의 우영우는 남을 의식하며 나를 포장하는 ‘우리’라는 세계에 뚝 떨어진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다.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앨리스가 ‘이상한 나라’에 떨어져 경험했던 기상천외한 일들처럼,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과 사람들이 존재하는 곳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문이 무섭고 좋아하는 고래 이야기와 말을 되풀이하는 ‘반어’를 해서도 안 된다. 일반 사람들의 기준과 기호에 맞게 정해진 세상은 우영우에게 너무 복잡하고 이상한 나라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이 이상한 나라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것은 우영우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이해하는 조력자들 덕분이다. 그들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졌다고 마냥 그녀를 보호하지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지도 않는다. 우영우가 잘하면 잘하는 데로, 못하면 못하는 데로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뿐이다. 천재적인 그녀의 능력을 질투하다가도 보통의 일상생활을 어려워하는 모습을 발견하면 기꺼이 도와준다. 어려워하는 회전문을 같이 열어주고, 물통의 뚜껑을 따 준다. 무의식 중에 내뱉은 차별의 말에 대해서도 인정하고 사과할 줄 안다. 우영우의 세계를 이해 못 하는 다수가 사는 현실에서 함께 지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길잡이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사회는 그런 조력자들보다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이 더 많은 세상이다. 2022년 7월 20일에 방영한 7화는 우리 주변에서 팽배하는 차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우당탕탕 우영우와 조력자들의 에피소드들에 푹 빠져 있다가 갑자기 찬물이라도 들이킨 듯, 차갑고 서늘하다.


 사실 7화의 분위기는 기존 여느 회차와 비슷했다. 천재 변호사, 우영우의 활약이 멋있었고 그녀를 지켜주는 주변 인물들의 모습은 여전히 아름다웠다. 잘생기고 다정한 이준호도, 우영우의 동료, 착한 최수연도, 씩씩한 친구 동그라미도, 훌륭한 멘토 정명섭도 자기가 맡은 역할에서 멋진 활약을 했다. 심지어 우영우의 능력을 질투하는 ‘권모술수’ 권민우마저도 말이다. 그와 동시에 이번 회차는 권민우의 모습을 통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차갑고 냉정한 사회의 뒷모습을 짙게 보여줬다.


 드라마 7화는 정부의 고속도로 건설을 반대하며 집단 소송에 나선 소덕동 주민의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소덕동은 행정명 ‘경해도’에서 가장 작은 인구를 가졌지만, 아름다운 풍경과 사람들을 지녔다. 이곳의 주민들은 자기 터전을 지키기 위해 우영우가 일하는 한바다에 사건을 부탁했다. 한바다 변호사들은 처음에는 가망 없는 싸움이라 사건을 마다했지만, 현장을 방문한 후 마음을 바꾼다. 엄청난 자료들을 읽으며 우영우와 동료들은 소송을 준비했고 태산의 ‘왕’ 태수미와 법정에서 직접 맞붙게 된다. (태수미는 극 중에서 우영우의 엄마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그녀를 처음 본 우영우는 강한 호감을 느낀다.


 이번 편 역시 우영우의 천재적인 활약이 돋보이는 회차였다. 하지만 동시에 ‘장애인들에 대한 차별’, ‘능력사회’에 신음하며 몰인정해질 수밖에 없는 차가운 현실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현실의 비정함을 대변하는 인물이 바로 권민우이다. 그는 엘리트에, 잘생긴 외모를 지녔지만, 사람들을 평범하게 대하지 않고 계략을 꾸며 ‘권모술수’라 불리는 인물이다. 어쩌면 권민우가 ‘보통의 세계’에서 절대 약자일 장애인 우영우의 형편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비단 비틀어진 인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철저히 ‘능력주의’ 사회에서 살았다. 법을 위해 일하는 그의 사회는 공정해야 했고 평등해야 했다.

 

 그의 관점에서 우영우는 ‘아버지의 백’으로 남들과의 경쟁 없이 무임승차하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계속 보호받는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불공정한 인물이었다. 또한  그가 생각하는 그녀는 평범한 사람들에게 없는 천재적인 암기 능력으로 자기 밥그릇마저 위협하고 있는 무서운 사람이다. 우영우를 시기하는 그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지질하고 못났다’라고 욕한다. '왜 그녀를 보호하고 지켜주지 못하냐'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내심 뜨끔할 것이다. 밥그릇을 위협당하는 위기의 상황에서, 뭐든지 잘하는 천재인 우영우를 바라볼 때 그와 다른 시선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할 것이다. 똑바로 보아도, 거꾸로 보아도 공정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을까?

 

 공정하고 평등한 세상은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이 만들 수 있는 유토피아이다. 어릴 때부터 능력주의 세상에서 신음하며 자라온 우리가 차별을 당하고 있는 약자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예전 사람답게 살기 위해 지하철 시위를 하며 소리 높이는 장애인들 앞에서 우리는 어떤 시선을 보냈던가? 수많은 선량한 차별주의자들은 자신의 세계에서 생존하기 위해 남들을 생각할 여유가 없다. 너무나 슬프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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