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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ul 25. 2022

사회의 나이 먹는 '백조'들을 위해

 항상 시작의 형태와 마음을 계속 유지하기는 참 어렵다. 사람은 원래 나약한 존재인 탓인지, 아니면 상황은 원래 변하기 마련인지는 도무지 없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시간은 너무도 빠르게 흐르고 익숙함은 또 다른 위기를 불러온다는 점이다.


 지난 주말, 아파트 베란다 실리콘 공사를 했다. 얼마 전 엄청나게 내리붓는 폭우로 10년째 살고 있는 오래된 아파트 베란다에 물이 연신 샌 탓이다. 그동안 온갖 날씨로부터 가족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었던 아파트에서 물이 샌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집은 곧 안전’이라고 믿었던 공간에서 갑자기 그 믿음이 무너질 때 허탈함을 느낀다. 남편은 물이 가득 고여있는 베란다를 걸레로 훔치며 “내가 물이 새는 집에서 살다니”라며 씁쓸하게 읊조렸다. 10년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던 아파트 베란다였다. 그래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고 아무런 대비를 하지 못했다. 종종 사람들에게 베란다 누수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도 그건 내 일이 아니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일은 내가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조금씩 내 곁에 다가와 있었다. 아파트 누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친구는 대수롭지 않게 “새 아파트로 이사 가”라고 말했다. 오래된 아파트는 이것저것 고칠 것도 많고 신경 쓸 것이 참 많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이 오래된 아파트보다는 새 아파트를 더 선호한다.


 가구 역시 마찬가지다. 집안을 둘러보니 싫증이 나 바꾼 가구나 가전제품보다 오래되고 고장이 나서 바꾼 것들이 참 많다. 집안을 둘러봐도 혼수품으로 가져온 물품은 부엌 한 자리를 차지하는 식탁과 김치냉장고밖에 없다. 너무 오래되면 수리할 수 있는 부품도 없기에, 수리기사들도 의례 새 제품 구매를 권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우리 집은 점점 새로운 가구, 새로운 가전제품으로 바뀌고 있다. 그런 사연으로 바뀐 새 제품들은 더 업그레이드되고 강력한 성능을 가지고 있다.


 얼마 전에 20년이 다 된 에어컨을 버리고 새로운 에어컨을 집안에 들였다. 예전에는 구식 에어컨을 사용할 때마다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와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더운 날’이 아니면 절대로 에어컨을 켜지 않았다. 이번에 바꾼 에어컨은 정말 ‘스마트’하고 ‘전기 효율’이 좋아서 온종일 틀어도 전기세가 저번 에어컨보다 적게 나온단다. 에어컨 외에도 예전에 사용하던 구닥다리 제품들은 느리고 종종 말을 듣지 않아 이따금 손을 탕탕 때려가며 사용해야 했다. 그런데 신제품은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빠릿빠릿한 움직임에 기존에는 못 보던 기능까지 갖춘 완전히 새로운 세상의 물품이다.


 새 아파트, 새 가전제품, 새 가구….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어쩌면 사람들은 오래된 것보다는 새로운 것에 더 끌리는 유전자를 장착한 것이 아닌가 싶다. 얼마 전 가족들이 즐겨보는 예능 프로그램의 주인공들이 싹 물갈이가 됐다. 기존과 비슷한 게임 구성에, 비슷한 형식이었지만, 젊고 새로운 인물들이 그 자리를 채우면서 전혀 새로운 매력의 예능이 되었다. 그 예능을 보며 한참 껄껄 웃던 남편은 한 마디 덧붙였다. “이거, 기존 예능 연기자들이 돌아오기 힘들겠다.”라고 말이다.


 비단 TV에서의 일만은 아니다. 나 역시도 지금 ‘프리랜서’라는 이름으로 일을 하지만 언제까지 이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학생들은 점점 젊고 새로운 매력을 지닌 선생님을 원할 테고, ‘철밥통’을 지니지 못한 내가, ‘선택’ 받아야만 하는 내가 언제까지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을수록 불안감이 더해진다. 아직은 ‘괜찮다’라고, ‘아직은 일할 수 있다’라며 자신을 달래고 있지만, 세상일이 내 마음대로 될까? 나뿐만 아니라 내 주변의 많은 프리랜서 선생님들은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불안감을 누르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도전은 시간이 흘러 어느새 익숙함을 만들었다. 계속되는 익숙한 일은 시간과 함께 ‘이 일을 계속해도 될까?’라는 불안감을 불렀다. 그냥 무시하고, 모른 척 일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두렵다.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은 채, 생각지도 못한 비가 새는 아파트에 앉아 있고, 고장 난 에어컨을 돌리며 하염없이 미래를 기다릴까 봐 겁이 난다. 그렇다고 미래에 대한 뾰족한 대비책도 없다. 한 치 앞도 모르는데, 어떻게 몇 달 뒤, 몇 년 뒤 미래의 일을 가늠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 미래의 일을 보장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부모님 역시 일터에서 정년퇴직하신 나이가 ‘58세’ 즈음이었다. 부모님은 계속 일을 할 수 있다고 했지만, 국가는, 사회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당시의 내가 보기에도 일터에서 물러나기에는 젊어 보였던 부모님은 일을 그만두셨고, 한동안 우울하게 집안을 맴도셨다.


 현재는 아이들의 학원비며 이곳저곳 돈이 나갈 일이 많아 우리 노후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못한다. 정부 역시 국민연금의 필요성을 앞세우며 가입을 독려하고 있지만, 국민 대부분은 이 연금의 재정 상태가 적자임을 알고 있다. 나이가 들면 원금이라도 온전히 받을 수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일하면 할수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불안하고 우울해지는 것은 단지 새로움과 젊음을 숭상하는 사회 분위기 탓인지, 아니면 세대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세력 탓인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본인의 노후는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이다. 국가가 개인의 노후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이미 예전에 깨달은 진리이다. 자식들도, 국가도 책임져 주지 않는 노후의 세상은 본인이 대비하고 지켜야만 한다. 젊음을 추앙하는 분위기 속에서 계속 동안을 유지하고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고고하게 보이지만 물속에서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자세를 유지하는 백조처럼, 나이가 들수록 익숙함 속에서도 새로움을 계속 찾아야만 한다. 얼마나 많은 백조가 사회에서 몸부림치고 있을까? 누군가 백조들이 편안히 쉴 수 있는 쉼터를 마련해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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