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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ug 08. 2022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의 눈가리개

 법을 숭상하는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tia)의 동상은 조각가의 마음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 동상의 눈은 눈가리개로 가려져 있다. 정의의 여신은 오른손에는 칼을 들어 단호함을, 왼손에는 저울을 들어 공평을 상징하며 몇 천년동안 법과 가까이하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간혹  이 동상을 구글 이미지에서 찾아보면 종종 눈을 가리지 않는 정의의 여신상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 세워진 정의의 여신상은 눈가리개 대신, 눈을 번쩍 뜨고 긴 칼 대신 저울과 법전을 들고 있다.


 정의의 여신의 ‘눈’을 가리고 말고가 무슨 큰 의미가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눈이 외부의 모든 정보를 보고 느끼는 몸의 최초의 파수꾼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눈’을 뜨고 감고는 큰 차이가 있다. 만약 정의의 여신이 눈을 뜨고 있다면, 눈앞의 모든 사안을 명명백백  파악하여 진실을 밝혀낼 수 있다. 하지만 간혹 눈으로 받아들인 감각적인 사실이 이성적인 판단을 흐리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만약, 정의의 여신이 눈을 감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모든 인간관계, 편견, 선입견,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으로부터 눈을 감은 채, 오로지 사건에만 집중하며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선악을 구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 일은 논리적인 차가운 이성이 우선이 되어야 할까?


 최근 말레이시아에서는 AI 로봇을 재판에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연합 뉴스(2022.4.22.)는 ‘말레이시아 사법부가 판결에 앞서 AI(인공지능)로 적정 형량을 참고하는 시스템을 시범 도입한 데 이어 이를 전국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놓고 막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라고 보도했다.


 보르네오섬 말레이시아령 사바주와 사라왁주는 2020년 2월부터 마약·강간 사건에 AI 재판 시스템을 시범 도입했다. 판사가 법정에서 검찰과 변호사의 의견을 청취한 뒤 컴퓨터에 피고인의 혐의와 나이, 직업, 결혼 여부, 범죄경력 등 세부 사항을 입력한 뒤 양형 분석 버튼을 누른다. 그러면 AI 시스템이 법정에 설치한 대형 스크린에 적정한 형량을 내놓는다. 양형은 형벌의 종류와 정도를 정하는 것을 뜻하며, 법원·판사마다 들쭉날쭉한 '고무줄 양형' 시비를 불식하고자 한국 사법부도 2009년에 양형기준제를 도입했다. 말레이시아 사법부는 AI 재판을 시범 운영한 결과 밀린 사건을 신속하고 일관되게 처리하는 데 도움이 된다며 긍정적 반응을 내놓았다. 사바주와 사라왁주 판사들은 마약, 강간 사건에 대한 AI 양형 권고 가운데 3분의 1 정도를 수용했으며, 나머지 경우는 AI 권고보다 감경하거나 더 센 판결을 내렸다.


(출처: 연합뉴스, 2022.4.22.)


 이른바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의 AI 판이다. 너무 이성적이고 꽉 막힌 판결이 오히려 소수집단과 약자들에게 더 불리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아무런 공감과 상황에 따른 이해 없는 판결은 뜻하지 않은 상황을 불러오기도 한다.

 

눈을 뜬 정의의 여신 입장은 어떨까? 앞서 기사에서 보듯이 어떤 경우는 인간의 판결이 더 변화무쌍할 수 있다. 눈을 뜨고 사람을 바라보면 ‘내가 그 사람 입장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자신의 가치관과 경험이 개입하기 쉽다. 눈을 뜬 이상, 아무런 편견 없이 활짝 열린 사고로 사람들의 일을 판단하기는 너무 어렵다. 사람이기에 모든 일에 자신만의 생각과 가치관을 대입하여 생각하기 마련이다.


 요즘 가장 즐겨보고 좋아하는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는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처럼 외부와 거리를 둔 채 자신만의 세계에 사는 인물이다. 그녀는 매해 에피소드에서 새로운 경험들을 쌓는다. 특히 ‘12화 양쯔강 돌고래’ 편에서 우영우는 외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참된 변호사의 길에 대해 고민한다. 미르 생명의 희망 권고 퇴직을 둘러싸고 인권변호사 류재숙은 ‘을’인 여성 노동자 편에서, 우영우를 비롯한 한바다 변호사들은 ‘갑’인 미르 생명 회사 입장에서 한바탕 설전을 벌인다. 우영우는 같은 변호사지만 ‘맡은 의뢰인을 위해 최선을 다해 변호해야 한다’라는 가치관을 확립한 정명섭과 ‘약자와 소수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라는 류재숙 사이에서 변호사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변호사의 길에 대해 고민하는 영우를 보며 정명섭 변호사는 ‘본인에게 온 의뢰인을 최선을 다해서 변호하는 것은 곧 자신의 의무이지, 그 의뢰인이 ‘선한 지 악한지’에 대해 판결하는 것은 판사의 몫’이라고 말한다. 재판에 나온 모든 사람은 판사가 정정당당하게 판결할 것이며, 어떤 결과든 수용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정의의 여신이 눈가리개를 고수하며 눈을 가려야 할지, 아니면 눈을 번쩍 뜨며 여기저기를 잘 살펴봐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앞서 말했던 드라마의 예시를 들면 류재숙 변호사의 경우는 두 눈을 번쩍 뜨고 온몸의 감각을 모두 연 채 약자들을 찾아 수호하는 정의의 여신이고, 정명섭 변호사는 두 눈을 모두 감고 온몸의 아우성을 죽인 채 이성에만 집중하며 자기편을 보호하는 정의의 여신이다. 각 사람의 상황과 판단이 다를 터인데 이 경우는 맞고, 저 경우는 틀리다고 한 마디로 단정 짓기가 너무 어렵다. 중요한 것은 상황에 따라 정의의 여신은 눈을 감기도, 혹은 눈을 뜨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때로는 차가운 이성으로, 때로는 따뜻한 감성으로, 인간이 잘 살 수 있도록, 잘 생활하도록 돕는 것, 그것이 주된 목적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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