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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un 08. 2022

최근 이슈가 된 스웨덴 게이트와 관련된 생각의 단상들

 며칠 전에 고등학생인 큰 애가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서 올라온 재미있는 논란거리라며 ‘스웨덴 식사대접 문화’에 대해 들려줬다.


 어떤 사람이 어릴 때 스웨덴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때마침 저녁 시간이었다고 한다. 친구 어머니는 ‘저녁 먹으러 오라’고 아들을 불렀고 그는 ‘방에서 기다리고 있어라’라고 말하고는 혼자 밥을 먹으러 갔다고 했다.


  큰 애는 이런 스웨덴 사람들의 정 없는 문화가 지금 ‘스웨덴 게이트’로 명명될 만큼 화젯거리인 이슈라고 덧붙였다. 남의 일에 잘 참견하고 오지랖이 넓은 대한민국 문화권에서 살아온 아들의 입장에서는 이런 얘기가 꽤 충격이었던 모양이었다.


 이런 논란을 두고 사회문화 전문가들은 ’북유럽 사람들의 강한 개인주의 문화’ 일뿐이라고 일축한다. ‘정(情)’문화가 유달리 발달한 한국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아들의 친구가 놀러 온 상황에서 가족끼리만 식사하지도 못할뿐더러 혹 친구가 밥을 먹었다고 해도 ‘식탁에 앉아만 있어라’라며 억지로 가족 틈에 끼우려 했을 것이다.


 그런 일반적인 생각과 ‘정(情)’ 중심의 한국의 문화와는 반대로, 스웨덴의 식탁 문화가 이렇게까지 논란이 되는지는 잘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면 그런 스웨덴 가족들의 솔직함이 참 부럽다.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는 “난 내가 생각하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할 뿐이다. 마음과 다른 말을 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사람들의 마음을 보살피는 전문가들 역시, ‘정신 건강’을 위해서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라고 확실히 밝히라고 한다. 그런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인간관계’를 위해서, 혹은 ‘사회생활’을 한다는 이유로 직접적인 말하기를 늦추고 확실한 의견 표현을 피한 채, ‘우리’ 혹은 ‘~일지도 모르겠다.’라는 표현 속에 속내를 숨기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이런 나는 비겁한 사람일까?

 

 대한민국에 살면서 순도 100%의 솔직한 생각과 마음으로 말과 글로 표현한 일은 손가락을 꼽을 정도다. 항상 내 의견을 뒤로한 채,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맞추면서, 기분을 살피면서 살았다. 으레, ‘며느리’, ‘딸’, ‘엄마’, ‘친구’이라는 역할 속에 내 기분을 감추고 살았다.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가게에 들어가면 “뭐 먹을래?”라며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먼저 묻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욕심을 뒤로한 채 여러 사람의 의견들 속에서 ‘튀지 않음’을 선택하고, 은둔을 지향한다. 그러면서도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나에게 연락하지 않고 알아주지 않으면 마음이 조금씩 서글프다. 튀고 싶지는 않지만, 아예 존재감은 지우고 싶지 않은 것이 내 솔직한 심정이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100% 순수한 자신의 감정을 그대로 말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아이 때나 가능한 일이다. 조금이라도 불편하면 편하게 울어 재낄 수 있는 그 시기 말이다. 나이가 들고 점점 사회를 알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이해하고 난 이후부터는 어쩔 수 없는 ‘눈치’와 ‘예의’로 포장된 말과 글의 가면을 쓸 수밖에 없다. 이런 감정 뒤에는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 남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싶지 않은 기분이 동시에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없이 많은 말과 글들이 세상을 활보하고 있다. 한 마디로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기도 하고 어쩌다 내뱉은 말이 때로는 사람 관계를 갈라놓는다. 자음과 모음, 음성과 억양, 생각과 느낌으로 이루어진 유무형의 존재가 사람들 관계 속에 굳건하게 자리 잡았다. ‘말 한마디, 문장 한 줄’이 너무도 중요하기에 작가들은 언어로 말을 하고 글을 쓰는 기법에 대해 저마다의 비결을 늘어놓았다. 나이가 들면 ‘어른답게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사람들 사이에서는 ‘말의 품격, 글의 품격’도 익혀야 한다. 이런 바 말과 글 속에 가식과 수식을 더 하는 셈이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발발한 스웨덴 게이트는 정 없는 스웨덴 문화의 비난으로 점점 심화될 조짐을 보인다. 하지만 난 그 이면을 먼저 들여다보고 싶다. 가족들의 단란한 저녁 식사 시간에 초청 없이 놀러 간 한 친구의 무성의함과 갑작스러운 방문으로 준비되지 못한 식사로 마음을 졸였을 주부 마음을 먼저 헤아려 본다. 아마 내가 그 주부였다면, 으레 내 식사 분량을 포기하고 아들의 친구를 먼저 그 자리에 앉혔을지도 모르겠다. 어지러운 본심과는 상관없이 ‘가식과 예의’라는 명목으로 ‘손님은 우선 대접받아야 하는’ 대한민국의 문화를 따르기 위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 스웨덴 어머니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솔직한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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