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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ug 19. 2022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다고 믿었던 소소한 이들의 연대

중요하지 않다고 믿었던 소소한 이들의 연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올해 읽었던 책들 중에서 가장 혼돈스럽고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웠던 작품은 단연코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2021/곰 출판)이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닌 논픽션이라고 소개되고 있지만, 출판사의 부제,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를 읽으면 어떤 책인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이런 착각에는 도서 중간중간에 삽입된 기괴한 세밀화 역시 한몫을 차지한다. ‘방송계의 퓰리처상’ 피버디상 수상자인 룰루 밀러는 19세기 스탠퍼드 초대 총장이었던 데이비드의 삶을 끈질기게 탐구하며 본인이 오랜 시간 동안 가졌던 결핍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그래서 독자들은 책장을 덮은 후에도 이 작품이 과학계의 숨겨진 비밀을 탐구하는 논픽션인지, 자신의 삶을 서술하는 자서전인지 혹은 데이비드의 삶을 이야기하는 위인전인지 도통 종잡을 수가 없다. 이 책은 서술 방식조차 일반적인 장르 구분을 거부하고 기존의 지식과 질서를 의심하게 만든다.     


 7살 무렵, 저자는 생화학자였던 아버지에게 “인생의 의미가 뭐예요?”라고 질문한다. 이 말을 들은 아버지는 “인생에는 아무 의미도 없고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p.55)라고 답한다. 그녀의 아버지는 ‘자신이 중요하지 않은’ 지구상의 소소한 존재라고 믿으며 인생을 ‘나 좋은 대로 사는’ 인물이었다. 그는 매사를 지나치게 기대하지도, 특별하게 여기지 않으며 행복을 찾았다. 어린 소녀였던 저자는 아버지의 이런 대답을 들고 큰 충격을 받고 회의주의자로 성장한다. 그녀는 ‘인생의 좋은 점들’(p.60)을 의식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수치심’(p.128)마저 느끼고 ‘긍정성’에 강한 집착을 가졌다.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저자는 자신과 다른 성향을 지닌 데이비드 조던의 삶을 집착적으로 탐구했고 그의 긍정성에 깊이 매료되었다.

     

 또 다른 주인공,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자신이 원하는 것은 다 옳다고 믿는 낙천성의 방패’로 무장된 인물이다. 그는 1906년 4월의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으로 30년 동안 쌓아 올렸던 물고기들의 표본들이 모두 뒤섞이는 순간에도 바로 세우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데이비드는 지진의 ‘파괴의 잔해’에서 물고기들을 하나씩 집어 올려 한 땀 한 땀 이름표를 꿰매 붙였다. 룰루 밀러는 시련 속에서는 더 힘을 내는 그의 열정을 보며 ‘낙천성의 방패’라고 높이 평가했지만, 데이비드의 또 다른 면을 발견한 뒤 ‘긍정적인 착각’으로 점철된 ‘사악한 힘’이라고 말을 바꿨다. 작가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스스로 키워낸 ‘낙천성’은 양날의 칼처럼 무시무시한 힘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평했다. 실제로 ‘숨어 있는 보잘것없는 것들’을 사랑했던 데이비드는 기이할 정도로 확고한 신념과 낙천성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을 불행에 빠뜨리는 우생학자로 탈바꿈했다.


 데이비드의 정서적 해부도를 쫙 펼쳐놓고 볼 때 가장 눈에 띄는 원흉은 그 스스로 상당히 자랑스러워했던 두툼한 “낙천성의 방패”가 아닌가 싶다. 데이비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다 옳은 것이라고 자신을 설득할 수 있는 무시무시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쓴 루서 스피어는 그가 자기 자신에게 갖는 확신과 자기기만과 단호함이 세월이 흐를수록 더 강화되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자기 길을 막는 모든 걸 뭉개버릴 수 있다고 믿는 그의 능력은 자신의 길이 진보로 이어질 올바른 길이라고 확신하게 되면서 몇 배는 더 커졌다.”(중략)     
긍정적 착각은 견제하지 않고 내버려 둘 경우 그 착각을 방해하는 것은 무엇이든 공격할 수 있는 사악한 힘으로 변질될 수 있다"라고 경고한 그 심리학자들의 말이 옳았던 것 같다.(p.202)     


 또한 저자는 데이비드가 평생 연구했던 "어류"라는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녀는 ‘어류’라는 단어가 세상에 존재하는 존재들의 "수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어류"라는 하나의 단어 아래 몰아 넣(p.240)"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찾아낸다. 분기 학자 릭 윈터바텀이 이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리려 30년 넘게 노력했지만 "그 관념이 학계 밖으로는 도저히 퍼져나가지 않았다 “고 주장한다. 그녀는 ‘어류’를 고집하는 이유로, 사람들이 ‘질서가 만드는 편안함에 익숙해져 그 안락함이 무너진 혼돈의 세계를 견딜 수 없어서’라고 분석했다.    

 
"어류"라는 범주가 이 모든 차이를 가리고 있다. 많은 미묘한 차이들을 덮어버리고, 지능을 깎아내린다. 그 범주는 가까운 사촌들을 우리에게서 멀리 떼어놓음으로써 잘못된 거리 감각을 만들어내는데, 이는 상상 속 사다리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제일 윗자리를 유지하기 위해서다.(p.242)     
그 관념이 학계 밖으로는 도저히 퍼져나가지 않는 것을 보며 실망했다. 그는 자기가 대적하기에 너무 센 적수를 상대하고 있는 것 같다고 걱정스러워했다. 그 센 적수는 바로 직관이다. 그는 사람들이 결코 편안함을 진실과 맞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p.244)     
 그 “어류”라는 말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경멸적인 단어다. 우리가 그 복잡성을 감추기 위해, 계속 속 편히 살기 위해, 우리가 실제보다 그들과 훨씬 더 멀다고 느끼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다.(p.251)   

  

 룰루 밀러는 결국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고 말한다. ‘희망에 대한 처방’과 ‘해골 열쇠’가 바로 그것이다. ‘좋은 것’을 계속 가지기 위해서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p.264)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해골 열쇠’를 돌리기 위해서는 ‘단어들은 늘 신중하게’ 다뤄야 하고 “질서”(p.267)라는 단어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발견할 수 있는 해답은 모든 것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의심하는 일이다.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마침내, 내가 줄곧 찾고 있었던 것을 얻었다. 하나의 주문과 하나의 속임수, 바로 희망에 대한 처방이다. 나는 좋은 것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약속을 얻었다.(p.263)     
 그 좋은 것들, 그 선물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황량함을 노려보게 해 주고, 그것을 더 명료히 보게 해 준 요령을 절대 놓치지 않을 가장 좋은 방법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는 사실을, 매 순간, 인정하는 것이다. 산사태처럼 닥쳐오는 혼돈 속에서 모든 대상을 호기심과 의심으로 검토하는 것이다.(p.264)     
 내가 물고기를 포기했을 때 나는 해골 열쇠를 하나 얻었다. (중략)
 그 열쇠를 돌리기 위해 당신이 해야 하는 유일한 일은-단어들을 늘 신중하게 다루는 것이다. (중략)
 그 “질서”라는 단어도 생각해 보자.(중략)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p.267-268)     

 저자는 데이비드 삶을 따라가다 그의 열광적인 우생학 때문에 불임화 수술을 당한 애나를 발견한다. 그녀는 데이비드의 독단적인 신념 때문에 유일한 꿈이었던 아이를 낳을 기회를 잃어버렸고 평생을 불행하게 살았다. 작가는 그런 애나에게 “어떻게 계속 살아가시는 거예요”라고 묻는다. 그 여인은 그 질문을 듣고는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리고 수용소에서 만난 메리의 소중함을 깨닫는다. 메리 역시 ‘애나가 없었다면 그곳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두 여인 사이를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인연의 실은 룰루 밀러가 평생을 거쳐 찾고자 했던 것이었다.


  이런 두 사람을 보며 저자는 ‘민들레 법칙’을 떠올린다. 민들레는 어떤 상황에서는 추려내야 할 잡초, 어떤 상황에서는 가치 있는 약초로 취급된다. 완벽함을 추구했던 우생학의 관점에서 어떤 이는 쓸모없는 존재일지 모르나 다른 평범한 사람에게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따라서 저자는 자연을 더욱 정확하게 바라보기 위해서는 바로 ‘민들레 법칙’으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응시하는 ‘모든 생물’은 단편적인 범주화로는 규정할 수 없다. 그만큼 복잡하다. 자연의 생물에게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바라보려 노력하는 것, 혼돈과 질서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 이 원칙이야 말로 룰루 밀러가 찾아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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