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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Aug 18. 2022

<달과 6펜스>

가슴 깊은 곳의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책

 가슴 깊은 곳의 꿈을 향해 달리는 사람들을 위한 책, <달과 6펜스>


 서머싯 몸이 쓴 <달과 6펜스>(민음사, 2006))은 예전부터 읽고 싶었기만 쉽게 읽을 수 없었던 밤하늘 위의 ‘달’과 같은 소설이었다. 나름 ‘짝퉁 문학소녀’라 자부하던 중학교 시절, 책을 좋아하던 같은 반 친구가 내게 물었다. “너, 혹시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 읽어 봤니?” 당시 나는 ‘문학소녀’라는 겉멋에 취해 있었다. 어두침침한 문학성이 높은 고전보다는 <제인 에어>나 <오만과 편견>과 말랑말랑한 로맨스가 있는 문학을 더 좋았지만, 선뜻 “아니”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가 싫었다. 그래서 ‘아직 읽어 보지 못했지만 조만간 읽을 거야.’라고 새침하게 답했다. 친구가 말한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은 사춘기 소녀에게 무척 낭만적으로 느껴졌다. 그 대답을 들은 그녀는 ‘넌 그럴 줄 알았어. 주인공이 너무 좋아. 같이 이야기해 보자.’라며 자신의 소감을 밝혔다.


 친구에게 밝힌 다짐과는 달리, <달과 6펜스>는 읽을 기회가 잘 없었다. 중학교 때는 말랑말랑한 로맨스 세계에, 고등학교 시기에는 헤르만 헤세가 그려내는 몽환적이면서 동양적인 문학 세계에 푹 빠져 지냈다. 갈팡질팡하는 사춘기의 갈등이 그려내는 마음의 순례길에 마음껏 방황하고 허둥대고 괴로워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몇십 년 뒤, 드디어 올해 <달과 6펜스>를 읽을 기회가 생겼다. 생각과는 달리 <달과 6펜스>는 아름답지도 낭만적이지도 않은 소설이었다. 가정이 있는 주부 입장에서 본 이 소설의 주인공은 천하에 둘도 없는 불한당에 이기적인 몽상 주의자였다. 그 친구는 왜 이런 제멋대로의 주인공이 멋있다고 말했을까?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가 없다.


 <달과 6펜스>는 화자인 ‘나’의 눈으로 40세의 평범한 증권 중개인이었던 찰스 스트릭랜드가 위대한 화가로 성장하는 과정을 보고 그린 이야기이다. 한 줄 소개만 들으면 한 인물의 위대한 성장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소설을 깊이 파고들면 썩 아름답지 않은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주인공이 화가로 성공해서 망정이지 성공을 하지 않았다면 ‘불륜에, 막장에, 이기적인 요소가 만연한 소재’의 소설이다.


 평소에, 아내로부터 ‘지루하지만 착하다’라는 평을 받던 주인공, 찰스 스트릭랜드는 평범한 결혼 17년 만에 갑자기 처자식을 버리고 편지 한 장을 남긴 채 사라진다. 그의 가출을 두고서 주위 사람들은 ‘어린 여성과 눈이 맞아 호화로운 호텔로 도망쳤다’라며 수군댄다. 중년의 일탈을 한 주인공은 ‘다른 여성’과 바람이 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정말 ‘갑자기’ 그림에 대한 열망을 크게 느끼고 그림의 세계로 날아가 버린 것이다. 주인공이 왜 난데없이 그림의 세계로 빠져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작가 이 부분에 대해서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난 독자들도 주인공의 성취에 박수를 보내지만 ‘가족을 갑자기 버린’ 그의 결정만큼은 이해하지 못한다. 서머싯 몸 역시 이런 사회적 논란거리를 인식한 듯 화자 ‘나’의 의견으로 찰스를 추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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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인께 무슨 잘못이라도 있나요? 그렇게 대하시니 말입니다.”

없어요.”

그럼 부인께 무슨 불만이라도 있으십니까?”

“없소.”

“그렇다면 너무 심하지 않습니까? 십칠 년이나 같이 살아온 사람을,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도 이런 식으로 버리다니 말입니다.”

“심하지요.”

나는 놀라서 힐끗 그를 쳐다보았다. 하는 말마다 선선히 인정해 버리니 나는 도리어 맥이 쭉 빠졌다.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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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은 사회적인 관습과 통념을 들먹이는 화자의 말을 무시한 채 신경질적으로 ‘무조건 그림을 그려야 한다’라고 외친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 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p.68-69)


 그는 일반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괴팍한 예술가의 길을 걷고 또 걸어 결국 위대한 화가로 성장한다. 물론 주인공의 삶 역시 타히티의 섬에서 만족할 만한 그림을 그리기 전까지 녹록지 않았다. 그는 빵 한 조각을 제대로 먹지 못해 매일 굶주렸고 결국 쇠약해져 목숨이 위독한 병에 걸렸다. 그런데도 찰스는 예술가의 자존심을 버리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그의 기행은 본인의 예술을 사랑하던 한 남자의 가정이 무너뜨렸고 한 여자가 자살하게 했다. 읽으면 읽을수록 주인공의 뻔뻔함에 화가 치미는 괴이한 소설, 바로 <달과 6펜스>이다.


 저자 서머싯 몸은 <달과 6펜스>의 주인공이 바로 유명한 프랑스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때 파리의 화가들과 어울리며 보해미안 생활을 한 적이 있는데, 타히티에서 비참하게 죽은 고갱에 대해 듣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몸은 고갱을 소재로 한 소설을 쓰기 위해 타히티를 직접 답사하는 열정을 보였다. 저자가 고갱에게서 느꼈던 문학의 영감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가 이 책의 제목을 <달과 6펜스>라고 지은 것에 그 비밀이 숨어 있을 것이다.


 책의 뒤편에는 <달과 6펜스>를 이렇게 풀이하고 있다.


 <달>과 <6펜스>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세계를 가리킨다. 또는 사람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을 암시하기도 한다. 둘 다 둥글고 은빛으로 빛난다. 하지만 둘의 성질은 전혀 다르다. 달빛은 영혼을 설레게 하며 삶의 비밀에 이르는 신비로운 통로로 사람을 유혹한다. 마음속 깊은 곳의 어두운 욕망을 건드려 걷잡을 수 없는 충동에 빠지게 한다. 그래서 달은 흔히 상상의 세계나 광적인 열정을 상정해 왔다. <6펜스>란 영국에서 가장 낮은 단위로 유통되었던 은화(銀貨)의 값이다. 이 은하의 빛은 둔중하며 감촉은 차갑고 단단하다. 그 가치는 하찮다. 달이 영혼과 관능의 세계, 또는 본원적 감성의 삶에 대한 지향을 암시한다면, 6펜스는 돈과 물질의 세계, 그리고 천박한 세속적 가치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사람을 문명과 인습에 묶어두는 견고한 타성적 욕망을 암시한다. <달과 6펜스>는 한 중년의 사내가 달빛 세계의 마력에 끌려 6펜스의 세계를 탈출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하고 할 수 있다. (p.309-310)


 범인의 눈으로 보지 못하는 예술의 삶은 너무나 유혹적이고 마성적이다. 한번 문학에, 예술에 빠진 수많은 예술 지망생들이 이 ‘달빛 세계’의 마력에 빠져 허우적댄다. 한번 빠지면 도저히 헤어 나올 수 없는 매력적인 ‘늪’이다. 모든 예술에 푹 빠진 지망생들이 찰스 스트릭랜드와 같은 단호하게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의 ‘6펜스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변명으로 마음의 하늘 속에 둥둥 떠 있는 달빛의 꿈을 애써 외면한다. 그러다 그들은 가끔 마음속에 간직한 꿈이 부풀어 커다란 보름달로 변할 때면 ‘우우’라며 울부짖으며 현실을 한탄한다.


 이 소설에 언급된 화가로서 성장한 찰스의 이야기는 충분히 예술적이다. 그런데 의외로 내 마음을 사로잡은 대목은 그의 성장 이야기가 아니라 초반에 화자인 ‘나’와 찰스가 나눈 대화였다. 화자인 ‘나’는 주인공의 나이를 언급하며 이제 와서 ‘화가의 길’에 뛰어들기에는 너무 늙었고 늦었다고 소리친다.


 “아니 나이가 사십이 아닙니까?”

 “그래서 이제 더 늦출 수가 없다고 생각했던 거요.”

 “그림을 그려본 적은 있나요?”

 “어렸을 적에는 화가가 되고 싶었소. 하지만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면 가난하게 산다고 하면서 장사 일을 하게 만들었지. 일 년 전부터 조금씩 그리기 시작했소. 한 일 년 야간반에 나가 그림을 배웠어요.” (중략)

 “당신 나이에 시작해서 잘될 것 같습니까? 그림은 다들 십칠팔 세에 시작하지 않습니까?”

 “열여덟 살 때보다는 더 빨리 배울 수 있소.”(p.67)

 

 내 나이쯤이면 모험을 할 수 있다고 하겠지만 그는 벌써 청년기를 넘기고 버젓한 사회적 지위를 지닌 증권 중개업자이며, 아내와 두 아이까지 거느린 사람이다. 내게라면 자연스러운 선택일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터무니없는 길이 아니겠는가. 나는 어디까지나 공평한 입장에 서고 싶었다.

 “하기야 기적이란 것도 있으니, 훌륭한 화가가 되지 말란 법도 없지요.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아주 희박하다는 걸 잘 아시지 않습니까? 나중에 가서 일을 그르쳤다고 후회하면 큰 낭패가 아닙니까?”

 “난 그려야 해요.” 그는 되뇌었다.

 “잘해야 삼류 이상은 되지 못한다고 해봐요. 그걸 위해서 모든 것을 포기할 가치가 있겠습니까? 다른 분야에서는 별로 뛰어나지 않아도 문제 되지 않아요. 그저 보통만 되면 안락하게 살 수 있지요. 하지만 화가는 다릅니다.”(중략)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잘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우선 헤어 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p.68-69)


 나이도 많고 재능도 없는 찰스는 어떻게 화자의 현실적인 조언에 주눅이 들지 않았을까? 꿈이 있지만 나이 때문에 주눅이 드는 나를 생각하면 주인공이 신기하기만 하다. 어떻게 그는 당당하게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라고 외칠 수 있었을까? 그런 주인공에 비해, 나라는 사람은 예술혼이 부족한 사람인가?


 <달과 6펜스>는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라는 작가 자신의 지론을 가장 잘 구현하고 하는 작품이다. 여성을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는 주인공 찰스의 행동과 말에 종종 열받기는 하지만, 아주 재미있고 흥미롭다. 지금 꿈이 있는가? 예술의 세계에 푹 빠지고 싶은가? 아니면 소설 속 막장 드라마를 읽고 싶은가? 이 모든 것을 충분히 충족시키는 소설이다. 특히 고독한 예술의 세계를 엿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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