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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y 01. 2022

손원평의 장편소설, <아몬드/창비/2017>

진부하지만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랑의 힘

진부하지만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랑의 힘, <아몬드/손원평/창비/2017>


 한 소년이 있다. 한 부모 가정에, 사람들의 감정 교류를 전혀 느낄 수 없는 특이한 질병을 가진 아이. 게다가 이 소년은 6살 때 심각한 폭력 사건을 눈앞에서 목격했고, 그 사건으로 피해자가 죽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아이는 또 다른 비극적인 사건을 경험한다. 바로 손원평 작가의 장편 소설 <아몬드/창비/2017>의 주요 내용이다.


 책을 읽지 않은 독자들도 이런 내용을 들으면 나름 소년의 미래를 짐작할 수 있다. ‘사회 부적응자, 사람들의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아이, 우리 사회의 시한폭탄 같은 아이 등등’ 사람들은 이 아이가 앞으로 저지를지 모를 수많은 범죄들을 상상하며 의심스럽게 그의 행보를 바라볼 것이다. 지금껏 우리가 뉴스에서 보고 접했던 수많은 범죄들이 그랬고, 그 사건들을 표현한 영화와 소설들이 비슷했다. 사람들의 감정을 공감하고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사이코패스의 대표적인 특징이다. 아마 이 같은 전례를 떠올리며 소설의 책장을 쉬지 않고 넘길 것이다. 공감할 줄 모르는 아이가 저지를 사건의 목격자가 될 심산으로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소년, 윤재는 우리가 상상하는 범죄를 끝내 저지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괴롭혔던 친구, 곤을 구하며 희생한다.


  윤재가 가진 질병은 현대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이다. 바로 ‘알렉시티미아,(감정 표현 불능)’, 뇌의 한 부분이 문제가 생겨 사람들의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특이한 병이다. 그는 자신의 병을 이렇게 설명한다.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p27)


윤재는 누군가 쓰러져 죽을지도 모르는 장면을 목격하고도 담담하게 그 상황을 묘사한다. 마치 기계처럼.


 "어쩌면 죽을지도 몰라요."

 나는 매대에 가지런히 진열된 캐러멜을 만지작거렸다.

(중략)

 ”무서운 얘기를 참 태연히도 하는구나. 거짓말하면 못 쓰는 거야.

 나는 한동안 아저씨를 설득할 말을 찾느라 침묵했다. 하지만 어린 나는 아는 단어도 별로 없었고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했던 말보다 더 진짜 같은 말은 떠오르지 않았다.

 “죽을지도 몰라요.”

 했던 말을 반복하는 수밖에 없었다. (p16-17)


 소설 속 사람들은 이런 윤재를 보며 사이코패스라고 소리 높여 말한다. 학교 친구들은 진짜 그가 감정을 못 느끼는지 확인하기 위해 잔인한 폭력과 실험을 하고 왕따를 일삼는다. 급기야는 윤재는 그의 안전을 위해 학교를 그만두라는 이야기까지 듣는다. 솔직히 이 정도 상황이 되면 평범한 사람도 제멋대로 어긋나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하지만 그는 그 상황에서 도망치지도 회피하지도 않고, 자신을 괴롭혔던 곤을 끝까지 버리지도 않는다. 사람들은 이런 예상과는 윤재의 행동 때문에 책을 다 읽고 난 후에도 이 소설의 여운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다. 어떻게 감정을 느낄 수 없는 그가 어떻게 끝까지 사람 구실을 하며 살 수 있었을까?


 윤재는 자신의 이야기를 ‘괴물인 내가 또 다른 괴물을 만나는 이야기이다.’라고 프롤로그에 밝혔다. 그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자신을 ‘괴물’이라고 말했고, 감정을 느끼는 친구, 곤 역시 또 다른 ‘괴물’이라고 평가했다.


 윤재의 친구, 곤은 비극적인 사연이 있는 또 다른 인물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부유하고 명성이 높은 부모 밑에서 태어났지만 어린 시절 놀이동산에서 납치를 당했다. 곤의 본명은 이수이지만 오랫동안 그 이름으로 불리지 못했다. 그는 납치된 후 중국인 노부부와 대림동 쪽방 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이 집 저 집을 들락거리다 소년원으로 갔다. 부모와 떨어져 있는 동안 ‘살인 빼곤 다 해 봤을 걸’이라는 악명을 쌓았다.


 곤은 막상 부모에게 돌아온 이후에도 꿈속에서도 그렸던 가정의 온기를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오매불망 그리워했던 엄마는 그 대신 ‘윤재’를 잃어버렸던 아들이라 여기고 세상을 떠났다. 곤의 아빠, 윤 교수는 자신의 이상적인 아들의 모습과 다른 곤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래서 죽어가는 아내에게 ‘윤재’를 다시 찾은 아들처럼 소개했고, 끝끝내 곤을 마음으로 품지 못했다.


 남에게 피해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신조를 평생 지켜 온 윤 교수는 갑작스레 돌아온 자신의 피붙이가 그런 신조에 철저히 위배되는 짓을 일삼는 걸 견딜 수가 없었다. 곤이에 대한 안타까움보다도, 그토록 기다렸던 아들이 ‘이런 모양’으로 나타난 것에 대한 분노가 더 컸다. 그래서 윤 교수는 곤이에겐 매질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겐 사과하고 사과하고 또 사과하는 방법을 택했다.(p106)


 그런 윤 교수와 곤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윤재는 ‘십몇 년 만에 만난 진짜 아빠에게 매를 맞는 건 어떤 기분일까. 서로를 더 잘 알거나 친해지기도 전에 말이다.(p106)'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감정을 느끼기 어려운 윤재에게도 느껴질 만큼 곤은 친아버지와 있을 때 혼자 있을 때보다 힘들고 외로워 보였다.


 사람들의 감정을 온전히 느끼던 평범한 소년 곤은 뜻하지 않는 사고 때문에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그의 현실을 끝내 받아들이지 않는 친아버지에 의해 ‘진짜 괴물’이 되었다. 그는 윤재에게 그의 본심을 이렇게 털어놓는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어. 내가 그곳에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어떤 애들과 어울렸는지. 어떤 꿈을 꾸고 어떤 일로 절망했는지.......(p148)"


 "난 아들이 아냐. 잘못 찾아온 잡동사니지. 그래서 그 여자 죽기 전에 얼굴도 못 본 거고.......”


 윤재와 곤의 이야기를 읽고 나면, 자연스레 성악설(性惡說)도, 성선설(性善說)도 아닌 중국의 철학자 고자(告子)의 성무선악설(性無善惡說)이 떠오른다. 고자는 ‘인간의 품성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고 다만 교육과 수양으로 그 어느 품성이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의 주장처럼 백지상태와 같았던 두 아이는 비슷한 상황에서 서로 다른 삶을 살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나쁜 ‘괴물’이 될 가능성이 높았던 윤재는 끝내 괴물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는 어머니와 할머니가 있었기 때문이다.


 윤재는 어머니와 할머니를 이렇게 기억했다.


 어딘가를 걸을 때 엄마가 내 손을 꽉 잡았던 걸 기억한다. 엄마는 절대로 내 손을 놓지 않았다. 가끔은 아파서 내가 슬며시 힘을 뺄 때면 엄마는 눈을 흘기며 얼른 꽉 잡으라고 했다. 우린 가족이니까 손을 잡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반대쪽 손은 할멈에게 쥐여 있었다. 나는 누구에게서도 버려진 적이 없다. 내 머리는 형편없었지만 내 영혼마저 타락하지 않은 건 양쪽에서 내 손을 맞잡은 두 손의 온기 덕이었다. (p153)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이 소설이 아이를 낳고 ‘자신의 아이가 어떤 모습이든 변함없이 사랑을 줄 수 있을까. 기대와 전혀 다른 모습으로 큰다 해도?’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다고 밝혔다. 사람들에게 쉽게 사랑받기 힘든 조건을 가진 윤재와 곤은 작가의 그런 호기심에서 만들어졌다. 그녀는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며 ‘작가의 말’을 끝냈다.


 <아몬드>는 ‘한국형영덜트’ 소설이라는 수식어가 붙여져 있다. 2017년 소설이 출간된 이후 고등학교 필독서에도 매번 올라가는 ‘핫한’ 작품이다. 하지만 솔직히 이 작품을 청소년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진 않다. 왜냐하면 소설에서 청소년인 윤재와 곤이 당하는 고통들이 여과 없이 표현되고 너무 잔인한 폭력장면들이 생생하게 묘사되기 때문이다. 작품 자체는 무척 너무 재미있는 수작이지만, 청소년보다는 청소년들을 대하고 키우는 어른들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한국형영덜트’라는 표제가 붙은 것은 그런 까닭일 것이다.


 책을 읽고 난 후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나는 과연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고 있을까? ‘아이를 자신의 틀에 맞추는’ 곤의 아버지 윤 교수가 아니라 윤재의 엄마처럼 ‘있는 그대로 아이들을 바라보고 무한한 사랑’을 주고 있는가?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도, 괴물로 만드는 것도 사랑’이라는 작가의 말이 뼈아프게 다가온다. 진부하지만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사랑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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