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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Sep 28. 2022

오직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특징은?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특징이 뭘까?’

 얼마 전 비경쟁 토론 시간, ‘인공지능 로봇’과 관련 책으로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질문을 던졌다. 학생들은 ‘인간만이 가지는 이유 없는 선, 이유 없는 악’, ‘소소하게 느끼는 감정들’, ‘인간이 표출하는 욕망’들이 바로 ‘인간’을 나타내는 특징이라고 이야기했다. 흔히 인간만이 가질 수 있다고 일컬어지는 특성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의 작가는 그런 특징마저도 인간이 ‘쉽게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다’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작가가 창조한 소설 속 주인공 아이는 이 세상 누구보다도 인간 같았고 본인 역시 인간이라는 점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휴머노이드 여부를 판가름하는 테스트기에 그저 ‘재수가 없게’ 걸려 수용소로 잡혀 왔고 ‘죄 없이’ 휴머노이드 수용소에 갇힌 인물처럼 보였다. 주인공은 자신을 ‘휴머노이드’라고 계속 의심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감정’을 느끼고 ‘꿈’을 꾸며 ‘어린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기에 ‘인간’이라고 외쳤다. 감정, 욕망, 기억, 선과 악 등…. 흔히 차가운 인공지능 로봇이 가질 수 없는 오로지 인간만이 가진다고 알려진 특성들이다. 하지만 소설 끝자락에 밝혀진 그는 ‘인공지능 로봇’이었다. 너무도 인간적인 특징들을 고루 가진 휴머노이드 말이다.


 SF 소설을 읽고 나니 소설 속의 풍경이 꼭 ‘상상’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지금보다 과학기술이 더욱 발달하면 과학자들이 인공지능 로봇에게 ‘인간의 감정’을 주입하고, ‘사람의 욕망’을 입히는 일쯤은 식은 죽 먹기가 아닐까?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미지에 대한 호기심이 왕성하고 더욱 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발버둥을 칠 테니까 말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사람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갖춘 로봇이 인간 세계를 통제하는 일이 비단 영화에서의 일만은 아닐 것이다.


 수많은 호기심, 욕망, 감정들, 선과 악 등 이 모든 특징 중에서 인간이 가장 인간일 수 있는 특징은 ‘성찰’이라고 생각한다. 오직 사람만이 부조리한 상황에서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야 자신에게 다른 사람에게 옳은 일일지 선택할 수 있다. 이 특징은 자신이 한 일과 마음을 깊이 되돌아볼 수 있는 성찰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돌이켜 보는 활동’을 통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앞으로 직진할지’, 아니면 ‘포기를 할지’, ‘거짓말로 우겨댈지’ 아니면 ‘사람들에게 사과할지’…. 오직 인간만이 이런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을 거듭하며 ‘어떤 사람으로 거듭날지’ 고를 수 있다.


 몇 년 전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영화, ‘변호인’의 감독은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주인공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 인물은 돈만 밝히는 변호사였지만 운명적인 사건을 만나서 진정한 법조인의 의무를 조금씩 깨달아요. 저는 이런 주인공의 변화를 영화에 담고 싶었어요.”라고 말이다. 실제로 영화 초반에 묘사된 변호사는 돈만 밝히는 속물이었다. 그런 그가 한 부조리한 사건을 만나면서 그 너머의 진실을 발견하고 수많은 고민 끝에 진정한 변호사로 거듭나는 과정은 무척 감동적이었다.


 물론 같은 부조리한 상황을 접해도 ‘변할 의지’도 ‘바꿀 생각’도 없는 사람은 분명 존재한다. 이 영화에서 공안 책임자 역을 맡았던 인물은 모든 명백한 진실 앞에서 눈과 귀와 마음을 닫았던 사람이다. 그는 오로지 자신의 신념 안에서 다른 진실을 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의 신념만이 ‘나라의 충성’이요, ‘나라에 대한 애국’이라고 믿었던 인물이다.


 세상에는 자신의 의견만이 최고라 믿으며 주변의 이야기들을 듣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참 많다. 앞뒤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자신의 감정, 의견만이 최고라 고집한다. 그러다 조금이라도 불편한 구석을 발견하면 큰 진실을 외면한 채 그 조그만 점이라도 파내기 위해 난리다. 그저 ‘자신의 행동을 되돌아보는 성찰’, ‘주변의 의견을 들어보는 마음’, ‘사과하고 변하는 의지’ 면 충분한데 왜 다들 어렵고 힘든 길만 골라서 가는지 모르겠다. 혹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싸움에서 지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더 밝은 미래, 함께 화합하는 미래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인정해도 좋을 텐데…. 좀 더 인간다운 특징, ‘성찰하며 성장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라는 것은 오직 내 욕심일까? 대한민국의 시계가 자꾸만 뒤로 움직이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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