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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Sep 28. 2022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고2 아들 녀석이 학교 통지서를 툭 내밀었다. 학교에서 대규모로 복사한 듯한 거친 회색 용지 위에는 ‘가을 수학여행’ 여부를 알리는 안내 글이 적혀 있었다. 그저 펜을 들어 ‘O, X’만 해도 되는 간단한 문항, 기계적으로 볼펜을 들어 적다 말고 아이의 얼굴을 힐끗 쳐다봤다. 아들은 온몸으로 수학여행을 찬성해달라는 듯 간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올해 고2가 된 큰 애, 그날 이후 아들은 지금까지 한 번도 학교에서 주관하는 수학여행을 가 본 적이 없다. 따갑게 느껴지는 아들의 애절함에 순간 ‘O’에 눈길을 던졌다가 애써 외면하며 단호하게 ‘X’에 동그라미를 칠했다. 아들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네”라며 답하며 힘없이 종이 용지를 책가방에 넣었다. 그의 뒷모습은 깊이 내쉬는 한숨과 함께 커다란 키가 10㎝는 쪼그라들어 보였다. 그때의 아이들과 똑같은 나이의 아들을 보며 자꾸만 그날의 비극이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그날 아침은 여느 때처럼 아름답고 화창했다. 봄날의 햇살은 마음을 은근히 들뜨게 했고 사람들은 저마다의 하루를 시작했다. 회사원들은 바쁘게 출근길 버스를 탔고 아이들을 곧 있을 수학여행과 소풍을 생각하며 콧노래를 부르며 학교로 향했다. 나 역시도 가족들이 모두 나간 여운을 즐기며 카페에서 지인들과 즐겁게 수다를 떨던 때였다.


 갑자기 핸드폰으로 전해진 짧은 속보 하나, 난데없이 인천에서 제주도로 향하던 배가 침몰 위기라는 기사였다. 그 배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가던 고등학생들 325명을 포함한 476명이나 되는 많은 승객이 타고 있었다. 오전 9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순간 얼어붙은 채로 핸드폰 기사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세상의 모든 시간이 멈춘 듯했다. 몇 분이 지났을까? 곧 배에 탄 ‘승객들이 모두 구출되었다’라는 기사가 다시 떴고, 우리는 ‘정말 다행이다.’라며 한시름을 내려놓았다. 그때 이 상황을 좀 더 의심하며 예민하게 살펴봐야 했다. 안심시켰던 그 기사는 뒤이어 ‘오보’라는 속보가 다시 전해졌다. 그 이후, 대한민국 국민은 아까운 수많은 생명을 실은 거대한 여객선이 조금씩 차갑고 짙은 바닷속으로 침몰하는 과정을 생생하게 지켜봐야 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 사건이다.


 사건 발생 직후 정부 관계자는 “시간은 충분하다. 승객들은 순조롭게 구출될 것이다”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그의 호언장담처럼, 배의 침몰이 알려지고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의 해경들은 배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커다란 여객선은 조금 위태롭긴 하지만 거뜬히 평형을 유지하며 바다 위에 떠 있었다. 이제 배 안의 승객들만 구하기만 하며 모든 일은 제자리로 돌아갈 차례였다. “내가 수학여행 때 말이야. 죽을 뻔했어.”라며 고등학생들이 치기 어린 영웅담을 늘어놓는 가슴 떨리는 경험으로 남겨질 수 있는 그런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해경들도, 헬리콥터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아직은 시간이 충분한 걸까? 배로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나 보다’라고 여길 만큼 느긋한 움직임이었다. 그 여유를 참다못한 몇 명의 학생들이, 선원들이, 선장이 튀어나올 때까지 이상할 정도로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뒤늦게 바다에서 발견된 고등학생들의 핸드폰에는 그 침몰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녹화되어 있었다. “배가 갑자기 기울고 있어요. 도와주세요.”라며 첫 번째로 신고했던 학생의 떨리는 음성, “너무 무서워. 우리 살 수 있을까?”라고 기울어지는 선체에서 울고 있는 아이의 음성, “괜찮을 거야. 지금 밖에 해경이 와 있대.”라고 희망을 외치던 목소리, “방송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으니까, 얌전히 있으면 구조가 될 거야.”라고 서로를 다독이는 이야기들. 희망을 잃지 않고 승객들은 서로에게 용기를 불어넣었다. 어린 청춘들을 포함한 승객들의 희망은 서서히 기우는 배 위에서, 조금씩 밀려드는 차갑고 짠 바닷물을 마시며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일찍 도착하고도 아무런 구조활동을 하지 않는 해경들을 원망하고 서서히 가까워지는 죽음을 받아들이며 아이들은 마지막 메시지를 남겼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거대한 세월호가 완전히 가라앉기까지 걸린 시간은 단지 3일이었다. 그 시간은 배에 탄 승객들에게는 너무도 빠르게, 그 장면을 지켜보는 대한민국의 국민에게는 너무도 느리게 흘렀다. 배 위의 아이들이 바닷속에서 죽음의 공포와 싸우는 동안 유명세를 바라며 절망에 빠진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치는 구조대원이 있었다. 사건이 일어나고 7시간 뒤에 노란 구호복을 입고 나타난 대한민국 수장도 있었다. 그녀는 눈물 한 방울 비추지 않았고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고 있느냐?’라고 물었다. 우리의 대한민국 수장은 가슴을 치며 울고 있는 부모들 앞에서 앵무새처럼 ‘괜찮을 것’이라는 말만 반복했다.


 수많은 아까운 목숨이 바닷물로 가라앉았다. 유일한 배의 생존 조건이라 믿었던 에어포켓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은 어두운 죽음의 공기 방울에 휩싸인 채 바닷속으로 천천히 침전되었다. 실시간으로 가라앉는 배를 바라보며 국민은 슬픔에 잠겼고 이해할 수 없는 의문에 빠졌다. 왜 일찍 도착한 해경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는지, 왜 승객의 구조를 책임져야 할 선장과 선원들은 일찌감치 탈출했는지…. 수많은 슬픔과 의문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건이 흐지부지 마감된 이후 대부분의 국민은 광화문으로 모여 자그마한 촛불 들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한 목소리로 외쳤다. “왜 국가는 국민을 보호하지 않았느냐?”라고.


 2014년 이후 8년이 흘렀다. 초등생이었던 큰 애가 고2가 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대한민국의 대부분 부모는 그날 이후 ‘수학여행’에 대한 공포에 휩싸였다. 혹시 학교에서 단체 여행 계획이라는 통지서라도 보내면 무조건 ‘반대’부터 했다. 우리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무기력한 국가를 보았고, 그 사건을 자꾸만 무마시키려는 비겁한 행동을 몇 년에 걸쳐 지켜봤다. 정치인들은 자식을 잃은 유가족을 ‘자식을 이용하여 돈을 뜯어내려는 사기꾼’으로 취급했다.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지 않는 나라, 오직 정치세력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나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이었다.


 조금 전에 엄마 눈치를 살피며 시무룩하게 학교 안내문을 넣던 아들이 갑자기 TV에서 나오는 ‘떡볶이 광고’을 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먹고 싶니?’라는 물음에 아들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올해 2022년, 우리 아들은 천진난만하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위해 세월호에 오르던 아이들과 같은 나이가 되었다. 매운 떡볶이를 좋아하고, 시험을 싫어하고, 친구들과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녀석이다. 그 사건 당시 초등생을 가진 나에게는 여객선 속의 아이들이 이미 다 컸다고만 느꼈는데, 올해 우리 아이의 나이와 그들의 나이가 겹쳤다. 아직은 어리고 순진하고 착한 아이들, 그 침몰하는 여객선 안에서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의 국민은, 대한민국의 어른들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가 천천히 가라앉으면서 아이들이 ‘수장’되는 모습을 무기력하게 지켜봤다. 죄 없는 아이들이 죽어갈 때 국가는, 어른들은 아무것도 한 것이 없었다. 8년이 지난 지금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점점 망각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우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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