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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Oct 12. 2022

말 한마디로 바뀌는 교육정책이 안 되길

아들의 중간고사와 일제고사 부활

 기숙사 고등학교에 다니는 고2 큰아들의 중간고사 이틀째 날이다. 이상하게도 아들의 시험 기간에는 연락을 안 하게 된다. 물론 아들이 첫 번째 날 시험을 잘 치렀는지, 혹 실수해서 지금 울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도 궁금하다. 하지만 혹 내 연락으로 부담감을 가지는 것은 아닐지, 서투르게 건넨 말이 아들의 감정 꼭지를 건드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어 더 연락 못 하겠다. 솔직히 말하면, 제발 아들이 이번 주 금요일 시험까지 다른 일은 신경을 쓰지 말고 집중해서 시험을 잘 치렀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아들은 이번에도 “망했어요.”라는 말을 열 번도 더 말하고 학교에 갔다. 매번 시험을 치기 전에 꼭 듣는 아들의 레퍼토리다. 그 녀석은 미리 “망했다”라는 말을 사람들에게 해야 안심이 되는 양, 시험 기간 전에는 꼭 이 말을 내뱉곤 한다. 아들의 이 말은 학창 시절에 모범생이 시험공부를 많이 하고서 친구들에게는 ‘많이 안 했다’라고 연막을 치는 것과는 좀 다르다. 그 녀석은 항상 사람들이 자신에게 많은 기대를 하는 것을 무척 부담스러워했다. 아들은 신중하고 묵직한 편이라 어린 시절부터 ‘당연히 잘했겠지’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그러다 어쩌다 실수라도 하면 친구들이 다들 그 상황을 이상하게 여기는 분위기를 아이는 참 견디기 어려웠다고 지나가는 말로 흘린 적이 있다. 그래서인가 웬만하면 큰아이에게는 ‘실수해도 괜찮다’, ‘어떤 성적이 나와도 괜찮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이런저런 공부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고등학생에게 엄마가 또 부담을 주기는 참 미안한 일이 아닌가.


 안 그래도 많은 공부로 힘겨워하는 학생들이 또다시 괴로움의 한숨을 내 쉴만한 기사가 하나 떴다. 어제 윤 대통령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했다는 말이다. 대통령은 요즘 공부를 안 하는 학생들이 많은 것 같으니 ‘지난 정부에서 폐지한 학업성취도 전수 평가를 원하는 모든 학교가 참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기사를 읽고 제일 먼저 떠올린 사람은 당연히 학교에 있는 우리 학생들이었다. 안 그래도 이리저리 바뀌는 시험제도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학교 현장인데, 이렇게 누군가 ‘툭’하고 던지는 말 한마디로 또다시 교육 현실이 개편될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아팠다. 얼마 전에도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의 내용 때문에 교육계와 학부모들이 노발대발했는데 이번에는 ‘일제 고사 부활’이다. 다행히 교육부가 재빨리 ‘일제 고사 부활’의 취지가 아니라는 해명을 내놓긴 했지만, 자꾸만 ‘말 한마디’로 바뀌는 우리 교육계 현실이 너무 답답하기만 하다.


 윤 대통령이 보는 우리 교육계는 이런 모습이다. "줄 세우기라는 비판 뒤에 숨어 아이들의 교육을 방치”한 어두운 대한민국의 미래이고, “지난해 고등학생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수학, 영어 수준이 미달되는 학생이 2017년 대비 40% 이상 급증”한 공부 안 하는 학생들이 수두룩한 교육 현장이다. 하지만 3년 동안 겪었던 코로나의 현실을 왜 생각하지 않았을까? 예기치 못했던 사상 초유의 재난으로 지구상의 모든 사람이 혼란스러웠다. 학교의 문이 막히고, 교육이 중단되는 현실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든 버텨야 했다. 그 원인을 모른 체하고 결과만 탓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대한민국에서 전국의 학교 또는 특정 지역 내의 모든 학교에서 모든 학생이 동시에 치르는’ 일제 고사를 치른다면 대통령의 표현처럼, ‘수학, 영어 수준이 미달되고 공부 안 하는 학생들’의 성적이 올라갈 수 있을까? 갑자기 안 그래도 부담스러운 학원비의 부담과 더 추가되는 사교육으로 힘겨워할 아이들의 모습이 떠올라 소름이 끼친다. 안 그래도 지금의 대한민국 교육계는 너무나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올가미이다. 어느 한쪽을 풀어보려고 해도 다른 쪽이 꽁꽁 얽히는 형편이다. 아이들은 매번 바뀌는 시험제도에 맞춰 순응하며 공부하지만, 한편으로 제발 기도한다. ‘내가 시험을 치는 시기에는 제발 시험제도가 바뀌지 말아라.’라고 말이다. 물론 시험제도가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 바뀌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변화가 자꾸만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누구의 말 한디’에 따라서, 아무런 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바뀌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더 혼란스럽고 힘겹다.


 휴가지의 바닷가에 놀러 가면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푸른 바다에 몸을 담가 파도를 온몸으로 느끼는 사람, 발 한쪽만 담그고서 혹 옷이 젖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 바닷물이 스치지 않는 모래사장의 파라솔 아래에 앉아 ‘조심하라’라고 지시만 하는 사람 등 여러 인간 군상이 있다. 우리 교육계도 이런 모습과 비슷하다. 입시를 코앞에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들은 바뀌는 시험제도의 논란에 대해 적극적으로 방어할 수 없다. 그저 이 입시의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어서 빨리 땅을 디딜 수 있는 해방의 육지로 가기만을 학수고대한다. 입시를 아직 실감하지 못한 사람들은 교육의 분위기에 발 한쪽만 담그고서 어찌 될지 관망한다. 오직 교육의 모습을 껍데기로만, 결과로만 추정하는 사람들만이 자꾸만 ‘감 내놔라, 배 내놔라’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시험제도가 바뀔 때마다 얼마만큼의 현장 전문가들,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반영되었을까? 문득 궁금하다.


 지금 교육의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건 말건, 우리 아이들은 시험 기간이 되면 또다시 “망했다”라고 외치며 시험을 치러야 한다. 공부는 아이가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으면서 ‘이 공부는 내 공부’라는 분위기는 형성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제히 ‘시험’을 치르고 ‘성적’을 잘 받는다면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아질까? 잘 모르겠다. 제발, 이번 입시제도 형식에 맞춰 우리 아들의 점수가 진짜 ‘망했다’라는 결과만 안 나오기만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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