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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10. 2022

방송 인터뷰를 하다

 태어나서 방송 인터뷰를 할 기회가 얼마나 있을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TV에 얼굴이 비칠 일은 거의 없었다. 지극히 평범했고, 조용했고 남의 눈에 띄는 것이 싫었던 나다. 그저 방송에 나온 사람들을 보며 이러쿵저러쿵 말을 건네고 훈수를 두는 아주 평범한 삶이었다.  지금까지의 TV는 한 방향으로 보는 물체이지 나를 다시 비추는 물체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방송 인터뷰라는 것을 해 보았다. 아주 우연한 기회로 말이다.


 처음  인터뷰 연락을 받았을 때 엄청 많이 망설였다. 왜 나를? 갑자기? 무슨 일로? 너무 갑작스러운 마음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다른 일정들 때문에 메일을 자세히 살펴볼 수도 없었다. 뒤늦게 조금 여유가 생기고서 메일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니, 브런치의 글 때문에 연락을 해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앞으로 고3을 맞이할 아들을 위해, 수능을 치르는 아이들을 향해 안타까운 마음을 적은 글들, 그 브런치의 글 내용들이 TV 관계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모양이다.


 사실 그 글들은 아직 미완성이다. 어쩌면 큰 애가 시험을 치르는 내년이 되어도 그 책이 완성될지는 알 수 없다. 나름 해피엔딩을 꿈꾸며 그 책의 내용들을 채워가고 있지만, 매년 반복되는 수능, 항상 되풀이되는 엄마들의 걱정과 아이들의 한숨을 생각하면 그 책은 영원히 미완성의 결말로 남겨야 할지도 모르겠다. 책을 완성하면 다시는 고3 시절을 돌아보기 싫을 것 같다. 좋은 결론을 맺든 안 좋은 결론을 맺든 말이다. 고3 시절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괴롭고 혼돈스러운 시기이다. 한번 벗어나면 다시는 돌아가기 싫은 그런 시간 말이다.


 이번 방송 인터뷰에서 반복되었던 질문들은 그 내용이었다. 수능을 치르는 아이들을 향한 생각들, 하고 싶은 말들이 무엇인지 말이다. 인터뷰를 진행하시는 분들은 그 부분에 대한 내 생각을 무척 궁금해했다. 여러 가지 질문들이 섬세하게 엮이며 주어졌지만, 가장 큰 줄기는 바로 하나였다. ‘지금 고3 수험생들에게 무슨 응원의 말을 하고 싶나요?’

 

 하지만 솔직히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상황에서는 어떤 말도 그들에게 잘 들리지 않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수능으로 치렀던 나도 그랬고, 내년이면 고3이 될 우리 아들도 마찬가지다. 수능을 치르기 전까지, 모든 지루한 수험생 생활이 끝나기 전까지는 그 어떤 말도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그저 버티고 치러야만 했던 인생의 첫 시험, 그 시험이 바로 수능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첫 수능이 시작되고 거의 30년째가 되었다. 그런데 그때 느꼈던 비슷한 긴장과 두려움이 지금의 수험생과 부모들의 마음에 감도는 것을 보면 참 놀라운 일이다. 생각해 보면 수능은 인생의 첫 발을 디디게 만드는 중요한 시험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수능이 인생의 나머지 부분을 책임지는 절대적인 시험은 또 아니었다.


 나는 대한민국 수험생 중 유일하게 수능을 2번 봤던 고3이었다. 누군가는 ‘비운의 학번, 94학번’, ‘대한민국 첫 수능의 마루타’라고 부르는 그 시절의 아이들이 바로 우리다. 그 시절의 학생들은 지금의 수험생들과는 달리 거의 백지상태로 수능을 치렀다. 학교 선생님들도 어떻게 시험대비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반갑다 논리야’와 같은 책들을 던져 주며 책만 많이 읽으라고 했다. 특히 내가 다녔던 지방의 고등학교에서는 서울이나 수도권 학교보다 더 정보가 없었다. 선생님들도 학생들도 아무런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첫 수능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은 그 수능을 일상을 뒤흔드는 ‘로또’와 같다고 불렀다. 평소 시험을 잘 치던 친구는 수능을 못 봐 원하는 학교에 못 갔고, 시험을 못 보던 친구가 갑작스럽게 성적이 올라 원하는 학교를 골라서 갔다. 나 역시도 8월과 11월, 두 번의 수능 중 8월에 치른 시험에서는 그저 평범한 점수를 받았다. 좀 더 심기일전하여 11월의 시험에서 만회하고 싶었지만 결국 못했다. 11월의 시험은 8월의 시험의 난이도보다 훨씬 어려웠다. 롤러코스터처럼 휘몰아쳤던 1993년, 그 해가 바로 나의 고3 시절이었다.


 오늘 방송 인터뷰를 마친 뒤 오랜만에 94학년 대학 동기들 방에 이 소식을 알렸다. 갑자기 그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했다. 다들 잘 지내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말이다. 겉으로는 ‘대한민국에서 화장도 안 하고 방송에 나간 용감한 아줌마가 바로 나다’, ‘지나가는 사람 1’로 인터뷰했다며 너스레를 떨었지만 다들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친구들은 모두 뜻밖의 이 이벤트를 반가워했다. 자식들 중에 4명의 아이들이 올해 수능을 본다고 전했다. 그들은 여전히 수능이 떨리고 아이들의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 더 늙은 것 같다고 푸념을 했다.


 서로 다른 지역에 떨어져 있어 잘 만나지 못하는 친구들, 함께 1994년의 추억을 나누었던 그들은 여전히 나에게는 싱그러운 20대 청춘이다. 첫 수능으로 혼란스러운 시절을 보냈고, ‘X'세대라 불리며 자신만만하게 기성세대를 향해 ’NO'라고 외쳤던 우리, IMF로 처음으로 사회 진출의 쓴 맛을 보았던 친구들, 그들은 이제 첫 인생의 시험, 수능을 치르는 아이들과 다시 한번 긴장을 함께 하고 있다.


 힘든 수능을 치렀지만, 다들 용감하게 잘 살고 있다. 그때 수능이 우리 인생까지 점수로 매기지 않았다. 지금 우리는 눈앞에 있는 시험들, 고난을 하나씩 이겨내며 살고 있다. 수능?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저 나에게 맞는 속도로 조금씩 나아가면 된다. 그거면 된다. 모든 대한민국 수험생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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