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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Sep 23. 2022

대입이 대체 뭐기에

 차가운 기온이 2022년 대한민국의 가을을 조금씩 감싸는 요즘이다. 온몸에서 느껴지는 찬바람에 바로 거실 창문을 닫으려다 몇 시간 뒤 찾아올 낮 더위를 생각하며 잠자코 이 추위를 견뎌 본다. 올해 9월~10월이 지나면 이 차갑고도 상쾌한 공기도 날카로운 기세를 동반한 ‘동장군’으로 바뀔 것이다.


 동장군이 기세를 떨치기 전에 맞이하는 11월은 아직 겨울이라 말하기도, 이미 가을이 지났다고 말하기도 참 어렵다. 이 달은 ‘인디언 썸머’처럼 따스한 기운이 한동안 감돌다 이상하게도  아이들이 수능을 치르는 11월 셋째 주 목요일이 되면 기온이 확 떨어진다. 사람들은 이런 추위를 ‘수능 추위’라 부르며 신기해했다. 시험을 치르는 아이들이 긴장으로 얼어붙어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아니면 실제로 날씨가 유독 이달만 온도가 내려가는 탓인지는 알 수 없다. 나 역시도 수능일 때는 온몸이 사시나무 떨렸다. 매사 무덤덤했던 엄마도 그런 나를 보며 온종일 마음을 졸이며 그날을 보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수능 일을 12년의 노력이 결실을 보는 날이라고 부른다. 그래서 이날은 수험생들에게 특별하고, 더 절실하다. 대중매체에서는 수능 날이 다가오면 수험생이 긴장을 풀 수 있는 음식과 시험 컨디션을 잘 유지하는 방법을 앞 다투어 소개했다. 수험생 주변의 사람들을 역시 ‘엿’과 ‘초콜릿’, ‘찹쌀떡’ 등을 건네며 수험생의 시험을 응원했다. 게다가 이날은 ‘수험생’이 유일하게 ‘경찰차’를 타고 수능 장에 들어설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온 대한민국의 국민이 하나 되어 응원하는 날, 바로 수능 날이다.


 솔직히 하루에 수험생이 그동안 했던 12년 간의 노력이 평가되는 것은 참 웃긴 일이다. 아이가 긴장해서 시험을 못 보거나 갑자기 몸이 아프다면 어떻게 할까? 혹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시험을 치르지 못하는 경우, 우리는 그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까? 참 안타깝게도 수능을 치르는 수험생은 아파도 이날만은 아파선 안 되고, 어떤 사정이 생겨도 수능 시험만은 무조건 치러야 한다. 누가 뭐래도 아플 수 없는 ‘슈퍼 수험생’이 되어야 하는 유일한 날, 그날이 바로 시험 날이다.


 다행히, 그동안의 이런 불만들을 인식하듯 대한민국의 시험제도는 계속 진화했다. 내가 첫 수능을 치를 때만 해도 수능 점수 하나로 모든 수험생의 인생을 결정했다. 그러다 오직 한 번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기에는 미흡하다는 여론에 따라 평소 학교 모습을 알 수 있는 ‘수시’와 논술 비중을 높여 대입 인원을 보충했다. 그러다 결국 생활기록부 조작과 같은 ‘수시’ 비리가 터지면서 내년, 2023년부터는 ‘수시’ 비중을 줄이고 수능일의 성적이 중요한 ‘정시’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수능 시험도 여론과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진화하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수능을 지켜보는 보통 엄마들의 마음은 잘 바뀌지 않는다. 엄마들에게 수능은 무조건 잘 치러야 하는 시험이요, 아이들의 인생이 걸린 중요한 시험이다. 고3 수험생을 둔 엄마들은 아이들 못지않게 긴장했다가 공부 안 하는 아이를 보며 화를 내는 한 해를 보낼 것이다. 적어도 지금까지 주위에서 본 고3 엄마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모두 비슷했다. ‘아이가 공부를 안 해서 걱정’이라는 A 엄마, ‘아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라며 B 엄마, ‘요즘 공부 때문에 아이와 싸운다’라는 C 엄마, 등등 그들은 만날 때마다 한숨을 쉬었고, 고3 한 해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평소 여유 있고 온화했던 그들은 아이가 고3이 되자 하나씩 주름살이 늘었다.


 그저 고3 아이를 가진 엄마의 욕심이라고만 치부하기에는 그들의 상황이 애달프다. 그렇다고 내가 현장에서 본 고등학교 아이들 역시 엄마들 표현처럼 ‘아무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매번 시험일이 다가올 때마다 불안해했고, 조바심을 냈다. 잠깐 시간 내 놀면서도 눈은 항상 시계와 일정표에 가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아이들은 지금 공부하고 있을 텐데….’라는 생각으로 마음은 항상 불안에 떨고 있었다.


 내년에는 나도 고3 엄마의 행렬에 합류한다. 어쩌면 큰 애가 고등학교에 합류한 순간부터 이미 그 행렬에 들어섰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학원을 안 가고 빈둥거릴 때마다, 혹 지금 하는 공부를 놓을까 봐 매 순간 불안하다. 솔직히 이 불안이 어디에서 왔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내가 머릿속에서 부풀리고 있는 망상인 걸까? 아이가 커 갈수록 계속 불안함의 연속이다.


 아이가 수능을 잘 치르고 명문대에 입학하기만 하면 나의 불안은 ‘이제 끝’, ‘행복 시작’일까? 안타깝게도 주위의 수많은 선배 엄마들은 단호하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들은 아이가 대학교에 간 뒤부터는 취업, 결혼, 등등 수많은 선택과 갈림길이 놓일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공부 때문에 실랑이할 때가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한다. ‘좋은 대학’ 입학은 그 수많은 갈림길의 발판일 뿐이라며 푸념하듯 털어놓았다.


 앤 헬렌 피터슨의 <요즘 애들>에서 우리가 흔히 MZ세대라고 부르는 ‘밀레니얼’을 ‘최고 학력을 쌓고 제일 많이 일하지만 가장 적게 버는 세대’라고 칭한다. 저자는 이들이 부모님처럼 성공한 중산층이 되기 위해 ‘명문대’를 위해 갖은 노력으로 입학했지만, 남겨진 것은 수많은 이력서와 번 아웃, 그리고 불안감뿐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절대다수의 밀레니얼에게 ‘대학 학위’는 ‘중산층의 안정’을 안겨주지 않았고, ‘더 많은 노동일뿐’이라고 단호히 언급한다.


 어쩌면 나의 불안은, 고3 엄마들이 겪는 불안, 아이들이 겪는 불안은 안정된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버텨보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오직 너만은 좀 더 편안한 일을 할 수 있기를’, ‘너만은 좋은 직장과 여유를 가지고 생활할 수 있기를’, 돈도 없고 백도 없고, 정보도 없는 보통의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심스럽게 건네는 ‘공부해라’는 잔소리뿐이다. 명문대에 가지 않아도 정부가 여유 있게 살 수 있도록 생활을 보장해 준다면 굳이 수능 일을 겁낼 필요도, 공부하는 아이들을 안타깝게도 바라볼 필요도, 고3 한해를 불안에 떨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모든 일의 해결책은 사회보장제도 개선인가? 잘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앞만 바라보고 나아갈 수밖에. 이 일 앞에서 트리나 폴러스의 ‘꽃들에게 희망을’처럼 수많은 애벌레들이 떨어지고 있는 광경을 볼지라도 지금은 앞으로 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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