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미 나는 해피엔딩을 염두에 두고 쓴다.

by 하늘진주

어린 시절의 난 세상의 모든 일에 호기심이 많았다. 까만 하늘 위로 무리 지어 별들의 깜박거리는 움직임들, 저녁노을이 지는 붉은 세상에서 친구들이 떠들썩하게 내는 소리, 하다못해 시커먼 도랑물 옆에서 피는 들꽃들의 하늘거림까지 모두 눈으로 보고 듣고, 확인하지 않으면 잠이 잘 안 왔다. 고동색 나무 대문 밖에서 친구들이 다닥다닥 뛰어가는 소리가 들리면 저녁을 먹다가도 재빨리 뛰어나왔다. 위태롭게 핀 들꽃 한 송이를 꺾다가 시커먼 도랑물에 빠지기도 하고, 마루에 놓아둔 빨간 김치 양념이 신기해 이리저리 뒤적거리다 양념 대야를 온몸에 벌겋게 뒤집어쓰기도 했다. 쓸데없이 모든 일에 궁금증이 많았고, 종종 끝도 없는 공상에 젖어 주변 사람들을 매우 답답하게 했다.


학교에 가면서 이런 호기심과 행동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도움이 안 되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서 점점 입을 다물었고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의 감정과 불안과 어려움을 혼자만의 글에 풀어내기 시작한 것이 말이다.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은 무지 쓰기 싫었고, 지극히 형식적이었지만, 나를 위한 글은 아주 자유분방했다. 적어도 글만은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 같았다.


천진난만했던 초등시절, 자신만만했던 중학교 시절 동안 글은 나를 위한 멋진 친구였다. 그러다 사춘기와 함께 찾아온 고등학교 시절을 지나면서 나는 더는 글을 쓰지 않았다. 그 시절 글쓰기는 나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다. 아무리 하얀 백지에 내 마음을 토해내도 나를 둘러싸 현실은 바뀌지 않았다. 힘겹게 써 내려간 글이 그저 차가운 까만 독백인 것을 깨달은 이후 글쓰기는 더 이상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세상으로 향하던 수다스럽던 호기심도 더 이상 생기지 않았다.


이후 그냥저냥 살았다. 그 사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적당히 취미생활을 했고 사랑을 했다. 결혼을 하고 세상에 둘도 없는 보물, 사랑하는 두 아들이 생기면서 여태껏 숨겨두었던 호기심과 불안들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점점 성장할수록 더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팍팍한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을 위한 굳건한 버팀목이 되고 싶었다. 미리 세상을 공부하고 미래에 대한 조언을 할 수 있는 길잡이가 되고 싶었다.


이제 앞으로 몇 개월 뒤, 고2인 큰 애는 미래를 향한 첫 선택의 갈림길에 선다. 세상 모든 이가 진절머리를 내는 고3, 그 험난한 길을 갈 차례가 된 것이다.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기에 ‘인생의 선배’로서 우리 아이에게 어떤 조언을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이미 지나왔지만,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기억, 고3 생활을 맞이할 아이에게 나는 어떤 말을 건네야 할까?


어찌 될지 모르는 미래를 상상하며 쓰는 글은 참 어렵다. 지나온 나의 고3 생활과 주변에서 보는 고3들을 생각하며 글을 쓴다. 이 글은 우리 아이를 위한 기록이자 앞으로 고3을 맞이할 미래의 아이들, 그리고 미래의 부모를 위한 마음의 오리엔테이션이 될 것이다. 그저 이 글을 읽는 모든 아이들이 고3 시절을 잘 견디기를 바라며 써 내려갈 글의 얼개들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본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고3의 의미는 무엇일까?

-고3 수험생들의 부모가 그 시절을 각각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은 비단 그들의 성향 차이일까?

-나의 고3은 어땠을까?

-고3 엄마가 갖추어야 할 자질은 무엇일까?

-수험생 엄마들의 불안은 그저 그들만의 것인가?

-고3 엄마가 가지는 특권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에서 대입이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


어쩌면 지금부터 써 내려갈 글들은 지극히 수박 겉핥기식의 상황들의 나열과 주관적인 감정들의 아우성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이 글의 마지막 목차만은 대한민국 고3을 위한 박수, 우리 아이들을 위한 긍정적인 메시지가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미 ‘해피엔딩’을 염두에 두고 쓰는 글, 그것이 바로 나의 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