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으로 미래를 가늠해보다

나는 해피엔딩을 그리기 위해 글을 쓴다.

by 하늘진주

때때로 나에게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가끔 어떤 질문으로 물어야 할지 헷갈릴 때가 있다. 특히 절박한 상황에 빠졌을 때 누군가 명쾌하게 대답을 해 줬으면 좋겠다. 시간의 여유가 있을 때는 이런저런 질문으로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겠지만, 지금의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오직 하나다. 바로, ‘닫, 힌, 질, 문’!


물론 평소에 좋아하는 질문은 여러 가지 질문으로 이런저런 가능성을 생각해 보는 것을 좋아한다. 어떨 때는 비판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논리적인 질문을, 또 어떨 때 새로운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는 창의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그중에서 닫힌 질문, 열린 질문들을 번갈아가면 던지는 것을 좋아한다. 소싯적, 누군가를 좋아할 때 꽃잎들을 한 장 한 장 뜯으며 ‘좋아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외쳐 본 것처럼, 이미 마음속의 정답, ‘좋아한다’를 간절히 원할 때가 있다. 마음의 절실함이 넘치고 넘칠 때, 빠르게 결정할 수 있는 답이 정말 고프다.


‘닫힌 질문’을 말할 때의 목소리는 단호하고 명확하다. 이미 알고 있는 문제, 누구나 알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구하는 질문이기에 대답하는 목소리마저 단단하다. 하지만 때때로 ‘닫힌 질문’으로 묻는 내면의 목소리는 너무 냉철해서 가슴마저 시릴 때가 있다. “정말 당신이 그것을 할 수 있을 것 같나요?”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을 것 같나요?” 이미 스스로 부정적인 대답을 품고 자꾸만 그 답을 유도하는 질문, 그 질문 또한 ‘닫힌 질문’ 일 경우가 많다. 어떤 긍정적인 대답을 던져도 결국 “No(나는 할 수 없어)”라며 지금 상황에서 꼼짝달싹도 못하게 하는 질문도 바로 ‘닫힌 질문’이다.


‘열린 질문’을 말할 때의 목소리는 좀 더 온화하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도, 답을 하는 사람도 답을 모르기에 질문의 방향은 좀 더 다양한 방향으로 열려 있다. 가능성과 창조력, 그리고 잠재력을 키우는 질문, 이것이 바로 ‘열린 질문’이다. 하지만 때때로 질문 자체가 너무나 모호하기에 질문하는 사람도, 대답하는 사람도 확신이 없다.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그 자리에 갈 수 있을까요?” “지금 하고 있는 이 일이, 지금 가고 있는 이 길이 진정 제가 원하는 길이 맞을까요?” 질문하는 스스로도 , 답을 해야 하는 내면의 나도 답을 알 수 없다. 한참을 헤매고 고민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 질문, 또는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이 상황에서 또 다른 나를 찾게 만드는 부싯돌 같은 질문, 그 질문이 바로 ‘열린 질문’이다.


현재 내가 묻고 싶은 질문은 오직 하나다.


“과연 우리 큰애가 내년에 정말로 원하는 대학으로 무사히 갈 수 있을까요?”

명확하게 답을 낼 수 있는 닫힌질문이 절실하다. 하지만, 여러 가능성으로 진로를 선택할 때는 열린 질문 또한 필요하다.


‘인생은 미지수이니 무한한 길이 앞에 펼쳐져 있다’라는 열린 가능성의 말은 때론 잔인하다. 스스로 답을 찾아 헤매며 열린 질문들의 범람 속에 가끔은 ‘닫힌 질문’의 냉혹함을 바라기도 한다. 지금은 아플지라도, 지금은 화가 날 지라도 말이다. 나는 어떤 질문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까? 나는 스스로 어떤 질문을 던져야 하나? 열린 질문? 아니면 닫힌 질문?


아직은 오지 않는, 그리고 알 수 없는 미래, 여전히 잡히지 않는 안갯속을 향하며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하나하나 헤아려 보고 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해피엔딩을 꿈꾼다. 우리 큰 애 녀석, 원하는 대학, 꼭 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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