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존 윌리엄스, 2015, 알에이치 코리아)

당신은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요?

by 하늘진주

당신은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요?, <스토너>(존 윌리엄스, 2015)



한 사람의 일생을 써 내려간 장편 소설, 혹은 여러 인물의 생애를 다룬 대하소설을 읽을 때면 참 허무할 때가 많다. 그 인물이 뉴스에 나올만한 기상천외하게 특별한 사건을 겪지 않고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주인공의 행적을 시간순으로 하나하나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삶에 동화가 된다.


지금 읽고 있는 이 인물의 이야기가 작가가 상상 속에서 그려낸 결과물임을 머리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이미 그에게 푹 빠져 버린 마음이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물의 행동에 따라 함께 울고 웃던 독자들은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면 허무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 느낌은 책을 완독 했다는 아쉬움과는 다르다. 한 사람의 삶을 쉬이 읽어버린 허무감과 ‘사람의 인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적인 질문이다. <스토너>를 읽고 나면 또 하나의 질문을 추가해야 할 듯싶다. 삶의 마지막 순간에 무슨 질문을 던져야 할지, 어떤 모습으로 마지막 순간을 준비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 2015, 알에이치코리아>는 평범하고 조용한 인물, 스토너의 일대기를 그린 소설이다. 그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농업을 배우기 위해 대학에 진학한다. 주인공은 아처 슬론 교수의 영문학 개론 수업에서 셰익스피어의 일흔세 번째 소네트를 접하고 문학과 사랑에 빠진다. 스토너는 고향에 돌아가는 대신 대학에 남아 영문학도의 길을 택하고 결국 교수가 된다. 제1차,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속의 변화에서도 그는 자신만의 신념과 옹고집으로 개인적인 불행과 고난을 그저 버틸 뿐이다. 어쩌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행적들, 스토너는 그저 무심하게 상황들을 바라본다. 주인공의 삶은 소설의 제일 첫머리에 서술된 것처럼, ‘그를 조금이라고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p.8) 평범한 인생이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지만, 아내인 이디스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그녀는 그 당시 여성들이 지녔던 답답한 관습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스토너를 이용했을 뿐이다. 그런 결혼 생활은 스토너를 점점 움츠러들고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다른 소설 속의 주인공들처럼 쉽게 분노하거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스토너는 대부분의 역경과 고난들을 ‘제삼자’처럼 관망하며 침묵했다.


주인공은 ‘사람이 변하면 죽을 때가 된 것’이라는 옛사람들의 격언처럼, 암에 걸리고 쇠약해졌을 때야 비로소 아내인 이디스를 보며 자기 생각을 다시 되돌아본다. 그가 “서로를 입힌 상처를 용서’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지’(p.383)라는 생각을 한다. 그는 그동안 본인의 삶과 가정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다. 스토너는 나이가 들어 다시 찾아온 사랑이 ‘불륜’이라는 소문으로 더럽혀졌을 때도 ‘그저 우리 자신이 파괴될 것이라는 생각, 우리의 일이 망가질 것이라는 생각’(p.303)이라는 이유로 인생의 여인, 캐서린을 떠나보냈다.


소설 속에 묘사된 주인공 스토너의 모습은 아주 평범하고 답답하고 이기적인 인간이다. 그는 세계대전 때 대부분의 젊은 사람들처럼 ‘애국심’이라는 이유로 전쟁에 나가지도 않았고, 자기 일에만 몰두했다. 스토너는 전쟁 때문에 ‘대학의 일들이 중단된 것에 화’를 냈고, ‘자신의 내면에서 강렬한 애국심 같은 것은 찾을 수 없었다’(p.49)라고 솔직히 고백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선, 다른 소설들의 주인공처럼 멋지고 영웅적인 면모는 결코 발견할 수 없다. 그렇다고 그가 엄청나게 사악하거나 못된 인간도 아니다. 여느 평범한 사람처럼 어떨 때는 자기만의 욕심을 차리고 때때로 후회하는 인물일 뿐이다. 그런데도, 왜 많은 독자는 이 책을 읽고 난 후, 감동하고 주저 없이 ‘인생 책’이라고 꼽을까?


그 이유를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토너는 암에 걸린 후 죽음을 앞두고서 본인의 인생을 되돌아본다. 그는 ”남들 눈에는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인 자신의 삶’을 생각하며 “넌 무엇을 기대했나?”라는 질문을 3번이나 던진다.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스토너는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p.390)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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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남들 눈에 틀림없이 실패작으로 보일 자신의 삶을 관조했다. (p.387)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중략)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p.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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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너는 어쩌면 ’평범하고 실패자‘처럼 보일지 모르는 삶을 살았지만, 적어도 그만은 본인의 삶을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문학’을 사랑했고,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손으로 ‘자신의 책’들을 어루만지며 생각했다. 그의 책이 “망각 속에 묻혔다는 사실, 아무런 쓸모도 없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p.391)라고 회고했다. 스토너는 자신의 삶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이루었던 일들을 사랑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실패’ 혹은 ‘성공’이라고 판가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 돈 많고 화려한 삶, 누구나 알아봐 주고 추앙하는 삶, 오직 그것만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스토너는 누구도 알아주는 권력을 누리지 않았고 자신의 사랑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아내와 딸마저 그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그런데도, 그는 절대로 본인의 인생이 실패했다고 여기지 않았다. 적어도 자신만은 말이다. 스토너는 “무엇을 기대했나?”라고 질문 속에서 그의 삶을 담담히 정리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 그는 ‘오랫동안 색이 바래고 닳은 본인의 책’을 펼치고, 처음으로 사랑에 빠졌던 문학과 함께 죽음을 맞았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처음으로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본다. 난 어떤 죽음을 준비해야 할까? 죽음, 인생은 언제나 무겁고 어려운 주제이다. 하지만, 누구나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그 순간 난 어떤 질문으로 인생을 갈무리해야 할까?


<스토너>는 한 사람의 삶을 진득하게 지켜보고 싶은 사람, 인생의 의미를 성공과 실패가 아닌 평범한 인생의 의미를 알고 싶은 성인 독자에게 추천한다. 당신은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나? 스토너처럼 물어보는 시간을 가지기를, 그리고 부디 당신만의 인생의 의미를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