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과 생계의 영원한 갈등

<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 창비, 2020>

by 하늘진주

‘일을 해야 먹고살 수 있다’는 사실이 기정사실화된 사회에서 일터는 직장인들의 영원한 갈등의 원산지이다. 자아실현의 꿈을 안고 용감하게 직장의 문을 두드리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관습과 계급의 사다리는 청춘의 열정을 무참하게 깔아뭉갠다. 갑질이 난무하는 불합리한 요구 속에서 ‘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여전히 ‘까라면 까야지’라고 체념해야 할까? 아니면 하나 남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반항해야 할까? 작가는 회사원들의 이런 고민을 단편소설집의 표제작 <일의 기쁨과 슬픔>(장류진, 창비, 2020)에서 재미있게 묘사해 냈다.


장류진은 1986년생으로, 젊은 작가이다. 그녀는 현실 속에 일어날 법한 일들을 소재로 다루며 독자들의 강한 공감을 끌어낸다. 특히, <일의 기쁨과 슬픔>은 판교의 IT 기업의 회사원과 그 중고 거래 앱을 독점하는 다른 회사원과의 일화를 다루고 있다. 작가는 <한겨레 21>에서 소설을 쓰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인터뷰했다. 그녀는 경기도 성남시 판교의 정보기술(IT) 회사에서 7년간 일했다. 이 소설을 쓸 당시 작가는 1년간 쉬면서 대학원에서 소설 공부를 한 뒤 두 번째 회사에 들어간 지 사흘이 지난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그런 경험에서 우러난 고민들과 갈등들이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소설로 탄생한 것이다.


소설 속 화자 ‘나’는 회사의 ‘사실상 막내’로, 우동 마켓’이라는 중고거래앱을 운영하는 회사에서는 일한다. 그녀는 사장님의 지시로, 회사에서 운영 중인 중고 거래 어플에 글을 도배하다시피 하는 ‘거북이알’과 중고거래 약속을 잡는다. ‘나’는 그 만남에서 그녀의 기막힌 사연을 우연히 듣게 된다. 카드회사 공연기획팀 소속이던 거북이알은 회장님의 지시로 유명 뮤지션의 내한 공연을 성사시키고 특진을 약속받았지만, 그 소식을 개인 SNS에 가장 먼저 올리고 싶었던 회장의 심술로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대신 받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녀는 그 포인트로 구매한 상품들을 ‘우동 마켓’에 중고로 팔면서 그동안 생활해 온 것이다.


작가 장류진은 갑질이 난무하는 회사에서 불이익을 받는 을의 현실을 ‘거북이알’의 사연으로 표현하고 있다. 소설 속 ‘을’인, 거북이 알은 회장의 지시로 월급을 카드 포인트로 받게 되었을 때의 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내가 회사 생활 십오 년 하면서 한 번도 운 적이 없었거든요. (중략) 그런데 그 포인트를 보고 있는데 눈물이 나더라고요. 포인트가 너무 많아서. 너무 막막해서.”(p.51)

작가는 이런 상황을 마냥 암울하게 이끌어 가지 않는다. “포인트로 모닝커피 마시고, 포인트 되는 식당에서 점심 먹고, 포인트로 장 보고, 부모님 생신선물도 포인트로 결제”(p.51)하는 거북이알의 모습을 통해 회장의 갑질을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당찬 젊은이의 모습을 묘사한다. ‘니가 아무리 그래봐라. 내가 굽힐 줄 아냐?’라고 말하듯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북이알의 불우한 사연을 접한 독자들은 그녀의 선택을 마냥 공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 달 동안의 소중한 노동의 가치를 돈이 아니라 포인트로 받게 상황이 아닌가? 극한의 상황 속에서 슬기롭게 해결한 그녀의 모습에는 박수를 보내나, 그런 불합리한 상황에서 침묵하는 그녀의 행동에는 의문을 품을 것이다. 돈이 있어야 생활을 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장인의 월급은 최소한의 품위 유지를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사직서’를 가슴속에 품고 다니는 수많은 직장인들이 숱한 고난의 한 달을 견디는 이유는 이 하루, ‘월급날’ 때문이다. 그런 가치를 회장의 심술로 온전하게 받지 못하게 된 상황이 아닌가? 거북이알은 사직서를 던지고서 회사를 뛰쳐나가야 했을까? 아니면 소설 속 모습처럼 포인트로 구매한 물품으로 중고 거래하며 감지덕지하며 생활을 꾸려나가야 했을까?


원래 노동이란 단어(프랑스어 travail, 라틴어 labor)의 어원은 고문ㆍ속박이다. 즉 노동은 원래부터 고통스러운 활동을 지칭했다. 이런 노동의 의미를 믿는다면 거북이알의 침묵은 온당하다. 직업은 생계를 꾸려가는 일일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을 테니 말이다. 하지만 직장을 자아실현과 이상을 실천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으로 생각한다면, 갑질이 난무하고 한 노동자의 자존심을 짓밟는 이런 상황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당신이 거북이알의 상황이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일의 기쁨과 슬픔>은 직장에서 느낄 수 있는 고민들이 담담하고 가볍게 그려진 소설이다. 오늘 이 순간에도 ‘자존심이냐 생계냐’로 고민하고 있을 대한민국 직장인에게 이 소설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