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자님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까요?

<경제학자들은 왜 싸우는 가?>(질 라보, 서해문집, 2015)

by 하늘진주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시시포스(Sisyphos)는 신을 기만한 죄로 엄청난 형벌을 받았다. 죽은 뒤 커다란 바위를 산꼭대기 위로 밀어 올리는 노동의 벌을 받은 것이다. 그가 죽을힘을 다해 큰 바위를 산꼭대기에 갖다 놓으면, 그 비정한 돌은 반대편으로 다시 굴러 떨어진다. 바위를 밀어 올리면 떨어지고... 시시포스는 이 반복적이고 무의미한 노동을 평생 동안 반복해야 한다. 그가 잠시나마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은 오직 떨어진 바위를 찾으러 가는 순간뿐이다. 노동 후 맞보는 휴식, 잠깐의 쉼은 근로자들에게 꿀맛과 같다. 하지만 요즘, ‘노동량이 곧 경제’라고 믿는 관점은 노동자의 ‘쉴 권리’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런 혼란스러운 가운데 질 라보가 쓴 <경제학자들은 왜 싸우는가?>(질 라보, 서해문집, 2015)는 경제를 이해하는 의미에서 읽어볼 만하다. 이 책은 변화하는 경제상황을 설명하는 짧은 분량의 경제입문서이다.


저자 질 라보는 파리 8 대학 유럽연구소에서 경제를 가르치는 인물이다. 그는 경제를 바라보는 여러 가지 방식들 중 4가지를 소개하며 현 자본주의를 세밀하게 살핀다. 애덤 스미스의 ‘시장’, 존 메이너드 케인스의 ‘순환’, 칼 마르크스의 ‘권력’, 칼 폴라니의 ‘자연과 사회’의 관점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4명의 전문가들이 각각의 이론들을 주장했던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설명하며 경제이론에 익숙지 않은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애덤 스미스가 활동했던 자본주의가 생겨난 산업혁명 초기부터 케인스가 활동했던 1929년 대공황, 극악한 노동시간에 시달리는 노동자와 강력한 계급사회를 목격했던 마르크스와 칼 폴라니의 시대는 경제와 인간의 삶이 얼마나 밀접한지 다시금 알려준다.


경제는 저절로 굴러가지 않는다. 수요와 공급에 따라 자유롭게 널뛰기한다. 그런 시장의 자유경쟁을 신봉했던 인물이 바로 애덤 스미스이다. 자본주의 개념이 막 생성되기 시작한 시점, 그는 “자유경쟁을 신봉했”(p.22)다. 애덤 스미스와 같은 자유주의 경제학자들은 “국가의 개입”을 “부정적”(p.30)으로 보며 비판했다. 이 이론의 맹점은 시장의 불균형이 “경제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p.37)고 실업을 유발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주장하는 ‘방임’으로는 이 불균형을 해결할 수가 없다. 그렇기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자율적으로 돌아가는 시장”에서는 “해답을 찾을 수 없”(p.51)고, “민간에 맡겨진 지휘권을 일정 부분 중앙기관에 부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p.44)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나친 ‘정치적 개입’역시 “시장의 정상적 기능을 방해하는”(p.107) 것은 마찬가지다.


칼 마르크스는 “노동이 자유로운 활동이 아니라 강제되고 강요된 활동”(p.73)이라고 믿었다. 그는 “자본주의의 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노동자 착취가 자본주의를 파멸시킬 것”(p.79)이라고 주장했다. 마르크스주의의 경제학자들은 “국가의 강력한 개입도 자본주의를 구할 수 없”기에 “자본주의는 파괴되고 대체되어야”(p.82)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주장들에 대해 칼 폴라니는 일부 동의하면서도 “계급투쟁에 관해서는 다른 의견을 피력했다.” 그는 “계급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사회의 필요”(p.90)라고 주장했다. 그는 노동자의 소득이 증가해도 사회적 환경과 여건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노동자가 인간성을 유지할 수 없다”(p.92)고 말했다. 즉, 칼 폴라니는 시장에서의 성장보다는 사회의 ‘상호성과 재분배’에 좀 더 집중한 것이다. ‘에너지, 식량, 기후’라는 세 가지 환경 위기에 직면한 현 상황으로서는 칼 폴라니의 이론이 좀 더 설득력이 있다. 결국 경제는 인간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활동인 것이다.


요즘 ‘주 69시간 근무시간’ 개편안으로 몹시 시끄럽다. 정부는 노동자들의 근무시간을 탄력적으로 조정하여 경제를 활성화시키자는 취지로 이 제도를 제안했다. 주장의 요지는 노동자의 연장노동시간을, 특정한 주에 집중적으로 일할 수 있게 하여 ‘근로자의 선택권, 건강권, 휴식권을 보편적으로 보장’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개념은 ‘노동의 질’의 유연화가 아니라 ‘노동의 양’에 집중하여 경제를 휘두르겠다는 심보이다. 주 52시간의 노동환경에 적응한 현 상황에서 다시 노동시간을 늘리는 것이 가능할까? 양적 성장만을 위해 12시간 이상을 일하던 시절은 이미 지났다. 노동 시간의 참다운 가치는 스스로 정할 때 의미가 있다. 이런 사태가 계속되다가는 군말 없이 커다란 바위를 굴리던 시시포스가 당장이라도 파업에 나설지도 모르겠다.


경제는 시대와 상황에 따라 유기적으로 변모한다. ‘나 때는 말이야’라는 고리타분한 생각만으로 해석될 수 없는 것이 바로 경제다. 그렇기에 변화무쌍한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애덤 스미스가,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칼 마르크사가, 칼 폴라니가 머리를 싸매고서 경제를 파악하고 연구했을 것이다. 한 가지 이론만으로, 한 가지 주장만으로 변덕스러운 경제상황을 파악하기란 불가능하다. 수많은 역사의 부침 속에서 자본주의는 스스로의 생명력을 가지며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양적 생산만을 추구하던 경제가, 부의 재분배, 복지로, 사회구성원들의 요구에 따라 바뀌고 있다. 앞으로 우리의 경제는 어떻게 흘러갈까? 우리의 노동 시장은 어떤 쪽에 목표를 어디에 두고 나아가야 할까? 모든 정답은 이 경제 입론서를 읽고 찾아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