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자도 패자도 없는 갈등상황', <극한갈등>

by 하늘진주

‘승자도 패자도 없는 갈등상황’, <극한갈등>



극한 갈등의 시대다. 우리는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끝도 없이 최후의 보류선까지 다다른 지점을 ‘극한’이라고 부른다. 요즘의 정치권처럼 이 말이 잘 맞는 용어가 있을까? 작년 5월, 새로운 정부가 수립된 이후, 빨간 정당과 파란 정당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첨예하게 맞서는 중이다. 한 야당대표는 정부의 잇따른 정치 공세에 몇 주째 단식 투쟁에 들어갔다. 죽음과 삶이 오가는 ‘극한 갈등’의 시대다.


흥미롭게도, 미국 기자 아만다 리플리가 바라본 미국의 상황 역시 2023년 대한민국의 갈등 상황과 별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녀가 관찰하고 느끼고 성찰한 모든 기록들이 흥미로운 책으로 탄생했다. 바로 <극한갈등>(아만다 리플리, 세종, 2022)이다. 이 책은 한 마디로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갈등에 관한 책이다. 가족과 직장 동료 간의 사적인 갈등부터 정치, 갱단, 전쟁, 기후 분쟁 등 사회적, 국가적, 정치적 갈등들이 꽤 많은 내용들이 책 속에 상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참고로, 이 책을 쓴 저자는 뉴욕, 워싱턴, 파리 등에서 <타임>지 기자로 활동하며 ‘최고의 언론인들’만 받는다는 ‘내셔널 매거진 어워드’를 두 차례나 받은 타고난 글쟁이다. 그런 탓인지 이 책 <극한갈등>은 472쪽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임에도 가독성이 좋다.

이 책은 크게 2가지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추천사를 작성한 소설가 장강명의 소개처럼, 1부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수렁에 빠지게 되는지’에 대한 설득력 있는 분석이요, 2부는 ‘그 수렁에서 빠져나오는 방법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이 담겨 있다. 저자 아만다 리플리는 책의 서론에서 “이 책은 사람들을 이념의 갈등과 정치적인 반목, 그리고 집단 간의 복수극으로 몰아넣는 알 수 없는 힘에 관한 책이다”라고 콕 집어서 이야기한다. 그녀는 “갈등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라며 이것이야 말로 책을 쓰면서 가장 크게 깨달은 사실이라고 설명한다. 저자는 “개인이든 국가 차원에서든 갈등이 건강한 성격을 띨 수 있도록 관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녀가 소개하는 갈등의 종류는 ‘고도 갈등’과 ‘건전한 갈등’, 두 가지다. ‘고도 갈등’은 “선과 악의 구도가 뚜렷이 형성되어 ‘우리’와 ‘그들’ 간의 반목으로 치닫게 된 갈등”을 말한다. 이런 갈등의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관계의 법칙이 더 이상 작용하지 않”고 “상대방과의 모든 관계가 대결의 양상을 띤다”. 한 마디로, 고도갈등은 ‘직접적인 만남’이든, ‘간접적인 만남’이든 온갖 부정적인 소모만 되는 관계이다. 그에 반해, ‘건전한 갈등’은 서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필요한 선한 힘”이다. 이 갈등은 “사람들을 웃음거리로 전락시키지 않”는다. 때로는 “스트레스와 분노를 겪기는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자존심을 지킬 수 있”(p.18)는 고마운 갈등이다. 저자는 이 ‘건전한 갈등’이야 말로 서로의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갈등이라고 말한다.

그녀는 사람들의 “갈등을 촉진하고 확산”(p.165)하는 4가지 요소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첫 번째는 집단 내에 도사리고 있는 ‘집단의식’이다. 집단 내에 함축된 알 수 없는 충성심은 “갈등의 폭을 키움으로써 그저 평범하게 끝날 갈등조차 꼼짝도 못 하는 함정으로 만든다”.(p.174) 두 번째는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갈등촉진자’다. 그들은 “분쟁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 때마다 가장 즐거워”하며 갈등을 야기한다. 세 번째는 마음 깊은 곳, 자존심을 건드리는 ‘굴욕’이다. 사람들은 본인의 자부심, 자존심, 명예 등, 존중받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가 훼손될 때 분노를 느낀다. 마지막 네 번째는 ‘부패’이다. 저자는 이 상황이 사람들이 “정상적인 사람들은 정부에 더 이상 기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다른 방식으로 정의를 구현”하고자 “폭력이 일상화되고, 사회는 퇴보”(p.220)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그녀가 제시한 갈등의 4가지 요소 중 어느 조건에 가장 마음이 가는가?


결국 <극한갈등>의 가장 큰 목적은 ‘고도갈등’과 ‘건전한 갈등’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고 더 나은 관계로 나아가자는 데 있다. 저자는 그 방법으로 사람들과의 ‘접촉이론’을 내 세운다. 이는 “사람들이 특정 조건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다 보면 상대방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다”(p.274)는 이론이다. 물론 이런 ‘접촉이론’에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필요하다. 첫째, “만남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지위가 대략 같은 수준”이어야 하고, 둘째, “양측의 만남을 지지해 줄 권위 있는 제삼자”가 필요하고, 셋째, “만남이 그저 대화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협력으로까지 이어”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만남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모두 자발적인 마음과 협조적인 태도를 지녀야 한다”.(p.280) 결국 갈등 당사자들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며 자주 만나라는 이야기다. 요즘처럼, 극한 갈등의 시대에 적절한 조언일지는 좀 의문스럽다.


마지막 2부에서의 해결책이 지극히 낙관적인 이론으로 그쳐 좀 아쉽지만, 그래도 이 책은 읽어볼 만하다. 이토록 사람들의 갈등상황을 상세하고 명쾌하게 풀어낸 책은 드물다. 극도의 감정소모가 난무하는 ‘극한갈등’의 시대에 갈등상황을 ‘읽고 뜯고 되새겨 보는’ 재미가 있다. 갈등과 인간관계에 지친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지만, 요즘 서로 비방 ‘어퍼컷’을 던지느라 바쁘신 높으신 임들이 읽어보시면 너무도 좋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