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욕망과 치욕의 경계 <추락 DISGRACE>

by 하늘진주

사람의 욕망과 치욕의 경계, J. M. 쿳시의 <추락 DISGRACE>(동아일보사, 1999)




J. M. 쿳시는 영어권에서 최고로 권위 있는 상인 부커상을 이례적으로 두 번이나 수상한 작가다. 첫 번째는 1983년에 수상한 『마이클 K의 삶과 시대』이고 두 번째는 1999년에 『치욕』으로 받았다. <추락 Disgrace>(동아일보사, 1999)은 2003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품이다. 당시 부커상 심사위원 중 한 사람이었던 보이드 톤킨(Boyd Tonkin)은 쿳시의 노벨상 수상이 결정된 직후 영국의 <인디펜던트>지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평가했다. “엄격하고 비정하고 정교하게 쓰인 쿳시의 소설은 새로 탄생한 남아프리카한테 두들겨 맞아 개처럼 코너로 꼼짝 못 하게 몰리고, 굴욕을 당한 진보적 학자에 관한 이야기인데, 이 소설에서 그는 사랑, 섹스, 정치의 한계만이 아니라 인간성 자체의 한계를 테스트했다.”부커상 심사위원들이 한 작가에게 상을 두 번 주지 않는다는 전례를 깨고 두 번째로 부커상을 쿳시에게 줄 정도라면 이 소설이 얼마나 대단하고 훌륭한 소설인지 알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소설을 한 대학교수의 제자와의 성희롱 스캔들과 그의 딸이 부랑자들에게 강간을 당하는 이야기라고만 단순하게 이해할 수 있다. 번역가가 원래 제목인 ‘Disgrace (치욕)’을 ‘추락’이라고 번역한 것처럼, 소설의 제목에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사회의 저명인사였던 대학교수인 주인공의 추락과 흑인에게 부당한 일을 당한 백인의 현실 추락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이 <추락>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설의 배경과 내용을 좀 더 꼼꼼하게 살필 필요가 있다. 소설은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이후 난공불락이라고 여겨졌던 남아프리카의 무너져 내린 사회적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아파르트헤이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과 제도로, 넬슨 만델라 대통령에 의해 종식되었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녔던 백인의 지배가 끝나고 흑인정권이 들어섰지만 350년 넘게 지속된 인종차별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런 복잡한 사회 배경과 상관없이 52세 케이프타운의 한 대학의 백인 교수 데이비드 루리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유색인 여성 ‘소라야’와 성매매를 하고 자신의 대학 제자를 유혹하며 성관계를 가진다. 그는 그런 관계를 ‘사랑’이라고 규정하지만, 제자의 고발로 진상조사위원회가 소집된다. 위원회에서 그는 한사코 자신을 ‘유죄’라고 먼저 이야기하지만 사과를 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의 욕망을 ‘에로스의 노예’라고 표현하며 ‘절제할 수 없는 충동’이라고 말한다. 데이비드는 ‘세속적인 위원회 앞에서 세속적인 유죄를 인정’하지만 ‘참회’를 거부하며 결국 대학교수의 자리에서 쫓겨난다. 이것이 첫 번째 추락의 장면이다.


이후 그는 외딴 시골에 살고 있는 전처의 딸 루시를 찾아간다. 루시는 자연 속에서 동물들을 돌보고 주변에 사는 흑인 페트루스의 도움을 받으며 살고 있다. 데이비드는 그런 딸을 보며 못마땅해 하지만 루시는 자신의 삶에 만족하다며 일축한다. 어느 날, 데이비드와 루시는 농장에 찾아온 세 명의 흑인 부랑자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그 사건으로 부녀는 엄청난 고통에 휩싸이지만 딸 루시는 그 사건에 대해 정확하게 밝히기를 꺼린다. 이후 데이비드는 페트루스의 파티에서 그 사건의 인물들을 발견하고 분노하며 루시에게 떠날 것을 권유한다. 그녀는 루시는 떠나기를 거부하며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너무나 개인적인 일이었어요. 그들은 제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는 것처럼 그 일을 하더군요. 무엇보다 그것 때문에 더 간담이 서늘해지더군요. 나머지는... 예상되는 것이었어요. 하지만 그들이 저를 왜 그렇게 증오했을까요? 저는 그들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중략)


“그것은 역사가 그들을 통해서 말을 하기 때문에 그래. 죄악의 역사가 말이다. 도움이 된다면, 그런 식으로 생각해라. 그것은 개인적인 것으로 보였을지 모르지만 그렇지는 않았을 게다. 그것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지.”(p.235)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으로 고통받았던 일부 흑인들은 루시와 데이비드에게 한 것처럼 ‘개인적인 원한’을 가진 양 백인들에게 복수한다. 그들의 고통은 백인인 루시나 루리의 잘못이 아니지만, 고통을 받은 일부 흑인은 복수하는 것처럼 그대로 백인에게 돌려주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것이 루시와 데이비드가 겪은 두 번째 추락이다. 루시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 하지만 그것을 달리 볼 수는 없을까요? 만약... 만약 그것이 제가 여기에 머무는 것에 대한 값으로 지불해야 하는 거라면 어떻게 될까요?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 생각할지 몰라요. 어쩌면 저도 그렇게 생각해야 하는지 몰라요. 그들은 제가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빚지고 있다고 생각하죠. 그들은 자신들을 빚쟁이나 세금징수원으로 생각하죠. 왜 저는 아무런 값도 지불하지 않고 여기에 살아야 하나요?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 거예요.” (p.238)


데이비드는 딸 루시에게 그 사건이 일어난 농장을 떠나기를 종용하지만, 루시는 그 권유를 거부한다.


"하지만 제가 지금 농장을 떠나면 저는 패배한 것이 돼요. 그리고 그 패배감을 평생 동안 간직하며 살아야 할 거예요. 저는 언제까지나 어린애로 살 수는 없어요. 아버지가 언제까지나 아버지일 수 없듯이 말이에요. 아버지가 좋은 의미로 그러신다는 건 알아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그런 도움이 필요 없어요."(p.242)


성 스캔들로 자신의 일터였던 대학을 떠났던 아버지 데이비드와 성폭력의 현장에서 떠나지 않기고 결심한 딸 루시, 두 사람은 그들 앞에 닥친 추락 앞에서 서로 다른 반응을 보여준다. 권력을 지녔던 백인인 데이비드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해서 생긴 갑작스러운 위기 앞에서 ‘회피’를 선택한다. 그의 딸 루시는 ‘개인적인 이유’가 아닌 ‘오직 백인’이라는 이유로 흑인들에게 성폭행을 당했지만, 자기 앞의 위기에서 도망치며 ‘패배’를 선택하지 않는다.


데이비드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며 그 결과에 대해 사과하지 않지만, 딸이 겪은 치욕에는 분노한다. 그는 개들의 본능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욕망은 다른 얘기지. 어떤 동물도 본능을 따랐다는 것 때문에 벌 받는 걸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p.136) 소설에 개는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루시가 키우는 개들과 거세와 안락사를 전문으로 하는 배브의 사무실로 찾아오는 개들이다. 그는 우리에 갇힌 개들 중 오그라든 왼쪽 뒷다리를 질질 끌고 다니는 개를 특별히 좋아한다. 데이비드는 본인이 원한다면 이 개를 ‘한 주일 더 살려둘 수 있’지만 결국 안락사시킨다. 그의 선택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배브 쇼가 말한다. “난 당신이 이 개를 한 주 더 살려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이 개를 단념하시는 건가요?” “그렇소, 단념하는 거요.” (p.331)


항생제 하나조차 쓸 수 없는 아프리카에서는 너무 많은 동물들은 안락사시켜야 하고 그래야 생태계가 보전될 수 있다. 데이비드는 여성인 배브 쇼를 따라 동물들을 안락사시키며 번식 본능에 따라 이루어진 결과물에 대해 생각한다. 루시가 사고에 애를 낳겠다고 선언하면서 결국 자신이 좋아했던 동물도 포기한다. “단념하는 거요.”라는 그의 말에는 치욕을 당한 자신의 딸을 위해 본능을 포기하겠다는 아버지의 성찰이 아니었을지 생각해 본다.


J. M. 쿳시의 <추락>은 여러 번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 힘든 소설이다. 물론 작가의 필력이 좋아 금방 읽히지만 책 내용 그대로만 이해한다면 작가가 숨겨놓은 여러 장치를 파악하기가 어렵다. 부커상을 두 번이나 탔다는 <추락>에 도전하고 싶은 성인 독자들,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읽고 싶은 성인 독자들에게 이 소설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