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하재영/라이프 앤 페이지>

공간과 자리의 의미

by 하늘진주

공간과 자리의 의미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하재영/ 라이프 앤 페이지/2021>


여름휴가로 들른 강원도 양양 숙소에서의 마지막 날, 집으로 빨리 가고 싶다는 가족들에게 “좀 더 여기 있으면 안 될까? 아니, 집에 가는 도중에 잠시 카페라도 들렀다 가자.”라며 자꾸만 다른 말을 해댔다. 그렇게 괜히 뭉그적거리다 결국 집으로 향하며 길게 한숨을 내 쉬었다. 가족들은 갑자기 시무룩해진 나를 보며 저마다 원인을 추측하기 바빴다.


짧은 쉼 뒤에 집으로 돌아오던 길, 왜 그렇게 내 발걸음은 무거웠을까? 긴 명절 뒤, 시댁에 있을 때는 그렇게 집에 빨리 올라가고 싶었던 예전과는 영 반대되는 상황이었다. 누구에게나 편하고 아늑한 곳, . 이 곳은 상황에 따라, 같이 있는 사람들에게 따라 너무나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혼자만 있는 집은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곳이다.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시간의 구애를 받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장소, 그런 곳이 바로 나의 이상적인 집이다. 하지만 현실 속의 ‘우리 집’은 청소를 하고 치우고 정리하는 또 하나의 노동의 공간이다. 바지런히 움직여 가족들이 편한 환경을 유지해야 하는 책임을 다해야 하는 곳, ‘삶의 체험 공간’이 바로 ‘집’이다. 그런 집의 의미는 명절 때나 다른 친척들이 모이는 날이면 더 심한 노동의 강도로 내 숨을 턱 막히게 한다.


심란한 마음으로 작년에 읽었던 하재영의 책,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하재영/라이프 앤 페이지/2020)를 집어 들었다. 이 책은 발간되자마자 작가의 사인 본으로 구매했다. 그녀는 책의 속 내지에 “당신에게 집은 무엇인지, 집에서 당신의 자리는 어디인지 사뭇 궁금합니다.”라는 긴 문장을 적어 독자들에게 보냈다. 그렇다. 이 책은 단순히 작가가 살아왔던 집들, 거리를 나열하는 서적이 아니다. 지금의 집에 자리 잡기까지 그녀가 거쳐 온 수많은 집들을 묘사하며 그 집 안에서 진정한 본인의 자리가 어디냐고 묻는 책이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무렵, 한창 글을 쓰고 싶은 열정에 불탈 때였다. 우리 집은 방 3개의 32평 아파트여서 네 식구가 살기에는 충분한 공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진득하게 엉덩이를 붙이고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할 공간은 어디에도 없었다. 특히 코로나 상황이라 남편은 재택근무로 거실의 제일 좋은 컴퓨터를 차지하고, 고등학생인 큰 애, 중학생 둘째가 각각 한 방을 차지하니, 방 안 가득 커다란 침대만 놓인 안방만이 내 차지였다. 하루 종일 조용히 숨죽이며 안방의 침대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점심때면 점심을 차리고 혹 방해가 될까 청소기 한번 제대로 돌리지 못했다. 가족들이 집 안에서 일정을 소화하던 코로나 시기, 우리 집은 다른 일들은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어느 때보다 훨씬 답답하고 가혹한 노동의 공간이었다.


이 책의 저자, 하재영 작가는 집을 단순히 사람들이 머무는 곳으로 해석하지 않는다. 그녀는 집에서의 공간이 바로 자신의 정체성과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라 설명한다.


공간을 소유하는 것은 자리를 점유하는 일이었다. ‘나는 누구인가?’하는 물음만큼이나 ‘나의 자리는 어디인가?’ 하는 물음이 나에게는 생소했다. 집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집에서의 내 자리’를 인식하는 일이었다. (p.130)

그 예시로, 그녀의 어머니의 일화를 떠올린다. 그 일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친정어머니의 모습이자 현재의 내 모습인 것 같아 갑자기 서글프다.

자기만의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이 언제든 방해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엄마의 독서, 사색, 휴식은 수시로 멈춰졌다. 할머니가 집안일을 시키거나 아빠가 출출하다고 말할 때, 또는 나와 동생이 사소한 것을 요구하는 순간에. (p.132)


그녀는 성이 다른 시댁 식구들과 함께 살며 ‘자기만의 방’을 가지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공간’이 주는 소중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부유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명문 빌라에서도 그녀의 엄마는 ‘자기만의 방’을 가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고 ‘며느리-아내-엄마인 여자는 집 안의 어느 곳에나 있어야 하므로 집 안의 어느 곳도 소유해서는 안돼’(p.141) 었다. 기껏해야 그녀의 엄마가 오직 ‘거실 소파나 주방 식탁’에서 휴식을 쉬할 수 있었고, 그마저도, 짧은 순간이 지나면 다시 ‘노동의 현장’(p.142)으로 돌아가야 했다고 서술했다.


작가는 자신이 살아왔던 집을 통해 가부장제에 희생된 엄마를 떠올리기도 하고, 명문 빌라에서 부유한 아파트와 구옥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집이 가진 계급과 자본의 속성’(p.44)을 깨달았다고 서술한다. 그동안 살았고, 자취를 남겼던 그녀의 집은 단순히 생존을 위해 살았던 공간이 아니었다. 작가는 지금껏 거쳐 온 집들을 향해 “집이 나를 지켜본다는 느낌을 들 때가 있다”(p.122)라며 말하며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부를 만큼 각별한 애정을 지니고 있다. 비단 그 집들이 화려하고 멋지고 아름다워서가 아니다. 그녀가 부유했던 유년 시절 지냈던 대구의 명문 빌라부터 현재 사는 서울의 집까지 느꼈던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작가 하재영이 보는 집의 의미는 ‘사적 영역인 동시에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장소’(p.217)이다. 단순한 재산의 가치가 아니라 한 인간이 지금까지 살아온 역사이자 삶의 흔적인 것이다.


작가는 오랜 기간 ‘자신의 공간’을 확보하고 ‘읽는 데에서 나아가 쓰는 사람’이 되기 위해 열심히 싸웠다. 인류학자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의 글귀를 인용하며 지금껏 살아온 집은 ‘투쟁의 역사이자 자리의 역사’(p.138)라고 설명했다. 누구보다 뛰어난 독서가였던 자신의 엄마가 집안에서 온전하게 그 존재로 존중받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무척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질문을 던진다. ‘자기만의 공간과 시간이 있었다면’ 엄마도 역시 지금 자신이 가진 ‘쓰는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지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을 말이다.


이 책은 남녀 간의 갈등을 부추기는 페미니즘 책이 아니다. 혹 지금까지의 이야기로, 그런 오해를 했다면 접어두시라. 이 책은 지금 나에게 있어 집은 어떤 의미인지 묻는 책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너무도 당연시 여겨왔던 역할을 공간의 개념으로 다시 살펴봐라 는 의미도 담고 있다. 가족들과 함께 살던 집, 홀로 독립해서 살던 돈 없고 백 없던 초라한 사회 초년생 시절의 집, 이리저리 전전하며 집주인의 눈칫밥을 먹던 전셋집, 우리 사회에 있는 여러 종류의 집들의 기억을 이 책은 모두 끌어 모은다. 소설가인 하재영의 재미있고 가독성이 좋은 책의 문체도 이 책을 술술 읽게 만든다. 지금 당신의 자리가 궁금한가? 시간 내어 이 작품을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