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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an 29. 2023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사계절/2020>

 어린이를 톺아보게 하는 책, <어린이라는 세계/김소영/ 사계절/2020>


 돌이켜 생각해 보면, 두 아들을 키우면서 굽실거리며 남의 눈치를 가장 많이 봤던 시기는 초등학교 입학 전, 유아기였다. 조용히 시키기 위해 아무리 타일러도 말이 통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규율을 잡느라 ‘미친년’처럼 소리를 질렀던 기간이기도 했다. 아이들은 온몸 염색체가 ‘질주와 호기심 DNA'로 가득 차 있는지, 대부분의 장소에서 우선 달렸고 모든 것을 궁금해했다. 다른 여자아이들처럼 얌전히 앉아서 뭔가를 보고 즐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공공장소에 갈 때마다 주변의 눈치를 많이 보았고 항상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그런데, ‘평생을 바지런하게’ 뛰기만 할 것 같은 녀석들이 지금 이렇게 바뀔 것이라고 그때의 나는 상상이나 했을까? 한시도 침대에서 등을 떼기 싫어하는 ‘게으른 사춘기 남자애들’로 말이다. 참 놀랄 일이다. 아이들의 면모는 꼭 사춘기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살펴봐야 할 듯싶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사계절, 2020)는 어린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혹은 어린이와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이라면 궁금해할 내용으로 가득한 에세이집이다. 작은 몸집의 어린이, 그 아담한 체형 속에 어떤 세계를 품고 있는지 많은 어린이 작가들은 궁금해했다. 몇몇 어른들은 마냥 신비로운 어린이 세계를 알기 위해 ‘훈육과 교육’이라는 관점을 과감히 내려놓기도 했다.


 동화창작교실의 한 작가님은 ‘어른은 누구나 마음속에 어린이를 품고 산다’라고 말했다. 겉으로는 어른이지만 마음 깊숙이에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추억들이 가득 숨어 있다는 뜻이다. 그런 즐거운 기억들은 때로는 힘겨울 수 있는 어른들의 사회에서 큰 힘이 되기도 한다. 그는 이 시대에 사는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선물하기 위해 어린이 책 작가가 되었다고 털어놓았다.


 이 책의 저자는 어린이 책 편집자로, 이후에 독서교실 선생님으로 이십 년 남짓 일했다. 그녀는 꽤 오랜 기간을 어린이와 함께 지내고 있다고 자부하지만, 이 책을 쓰기까지 고민이 많았다고 실토했다. 저자는 아이를 가진 양육자도 아니고 교육 이론이나 어린이 심리를 연구하는 사람도 아니기에 더 조심스러웠다고 고백했다. 그런 저자의 상황 덕분인지, 이 책은 한 편의 ‘어린이를 향한 관찰일지’이자 주관적인 느낌이 가득하다. 어떤 면은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공감을 받을 것이고, 또 어떤 면은 ‘너무 독단적인 생각이 아니야?’라는 논쟁의 여지가 많다. 하지만 처음으로 어린이들이 속한 상황, 사회적인 분위기, 배경들을 토대로 ‘어린이라는 세계’를 구체적으로 살펴봤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


 이 책 속의 수많은 에피소드들을 보면서 가장 많은 생각을 했던 주제는 ‘노키즈 존’에 대한 이야기였다. 저자는 ‘노키즈 존’에 대한 에피소드를 풀어내며 '차별이며 혐오’의 의미로 설명했다.


 ‘얌전한 어린이를 선별해서 손님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것 자체가 혐오이고 차별이라는 데에 어떤 논의가 더 필요한 걸까? 돈을 내고 사용하는 공간에서조차 심사를 받아야 하는 것이 차별이 아니면 무엇이 차별인가?(p.209)


 그러면서 그녀는 "'노키즈 존'이 단지 가게를 운영하는 분들의 편리만을 위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문제를 원천 봉쇄하기 위해 어린이 손님을 거부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저자는 이런 생각 자체가 "해결책이 아니라 차별이다. 그리고 차별은 어떤 말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p.211)고 주장한다.


 이 부분을 읽은 많은 독자들은 다양한 생각들을 가질 수 있다. 어떤 이는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조용한 휴식을 원하는 다른 고객을 생각해야 하기에 저자의 생각에 공감할 수 없다’라고 강하게 비판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애초에 ‘부모가 엄격한 예의범절을 가르친 다음에 아이들을 공공장소에 데려와야 한다’라고 주장할 수 있다. 혹은 저자의 주장처럼, ‘노키즈 존’이 입장 표명을 강하게 할 수 없는 약자, 어린이를 위한 ‘차별’이자 ‘혐오’의 표현이라며 격렬하게 공감할 수 있다.


  이 문제에 관해서 만큼은 모든 사람의 주장이 다 옳다. 누구나 공공장소에서 자기만의 휴식과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 다만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입장과 생각이 조금씩 달라질 뿐이다. 현재는 ‘노키즈 존’ 논란을 ‘차별’이라며 불편하게 바라보는 나 역시도 예전에는 ‘노키즈 존’을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결혼을 하기 전, 사회에서 종종 만나는 아이들의 모습은 ‘시끄럽고 제 감정을 잘 추스르지 못하는 불편한 존재’였다. 특히 도서관, 식당, 카페와 같이 조용해야 할 공공장소에서 ‘무법자’처럼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눈살을 찌푸리곤 했다. 왜 부모들은 아이들을 잘 ‘단속’ 하지 못하는지, 왜 일찍 감치 ‘예의범절’을 가르치지 않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그동안 활동적인 두 아들을 향해 언제 시끄럽게 굴지 모르는 ‘잠재적인 범죄자’로 취급하는 시선을 많이 받았다. 그런 세상의 매서운 눈길에 맞서 버텨온 엄마로서는 ‘노키즈 존’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아이들이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아직은 감정을 잘 조절하지 못하는 이유로, ‘노키즈 존’이라는 세상의 차별을 당하는 기분을 다른 사람들은 이해할까? 아이들은 아직 서툴다. 세상의 모든 규범에 대해 호기심으로 알아가 는 중이라 기다림이 많이 필요하다.


 저자의 말처럼, “어른은 빨리 할 수 있는(p.18)” 것이 많다. 생각해 보면, 아이들은 젓가락 잡는 법, 연필 잡는 법, 운동화 끈을 묶는 법과 같이 어른들에게는 어쩌면 사소한 일상행동까지 몸에 익숙해 지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아이들이 못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경험이 부족하고 기다림이 필요할 뿐이다. 어른들의 익숙하고 재빠른 행동들 역시 그런 시행착오와 부모의 인내 속에서 길러졌다.


 어린이들은 작다. 하지만 ‘어린이가 어른의 반만 하다고 해서 어른의 반만큼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가 아무리 작아도 한 명은 한 명이다.’(p.197)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가독성이다. 작가의 필력으로 어린이와 관련된 미묘하고 복잡한 이슈들을 잘 풀어냈다. 어쩌면 중구난방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주제들을 ‘어린이’에 대한 관심으로 잘 엮었다.


 여러분에게 ‘어린이’는 어떤 존재일까? 내가 보는 어린이는 ‘어떤 틀에 갇히지 않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어른들이 가진 편협한 관점이, 과열된 욕심이 아이들을 가두지 않기를 바란다. 어린이와 관련된 직업, 독자들, 어린이를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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