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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Mar 09. 2023

실제 냉혈한은 과연 누구일까? <인 콜드 블러드>

실제 냉혈한은 과연 누구일까? <인 콜드 블러드/트루먼 커포티/2021/시공사>



 트루먼 커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 In Cold blood/시공사/2021>은 표지부터 무척 강렬하다. 오직 흑백 배경 속에서 안경을 벗고 있는 한 남자는 괴로운 기색인지, 아니면 서늘하게 웃고 있는 표정인지 도무지 가늠하기 어려운, 알쏭달쏭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다. 특이하게도 그는 두꺼운 뿔테의 안경을 오른쪽 검지에 걸고서 같은 방향의 관자놀이 부분을 겨누고 있다. 마치 총처럼 말이다. 이 책이 낯선 독자들은 536페이지의 긴 분량의 책을 다 읽고 난 이후에도 눈을 감고 있는 남자가 누구인지는 쉽게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영화 <카포티/2006년>를 본 후에야 ‘트루먼 커포티, 작가 본인이 아닐까?’라고 짐작할 뿐이다. 혹시, 이 책의 두께가 너무 두꺼워 ‘그냥 안 읽으렵니다.’라고 포기했다면, 그런 걱정은 내려놓으시길. 생각보다 이 책은 재미있다. 우선 일단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궁금증 때문이라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완독을 선택할 것이다. 오드리 헵번 주연의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의 원작자이자, 미국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 커포티의 천재적인 글 솜씨가 이 작품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이 책은 1959년 11월, 미국 캔자스 시의 홀컴이라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 일가족 네 명이 살해당한 실제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작가 커포티는 <뉴욕 타임스>에 짤막하게 실린 이 기사에 흥미를 느끼고 친구인 넬 하퍼 리와 함께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마을로 떠난다. 6년 뒤, 그는 이 살인 사건을 충실하게 재구성한 논픽션 소설, <인 콜드 블러드>를 발표하며 미국 문학계를 깜짝 놀라게 한다. 작가가 작품을 쓰기 위해 어떤 조사과정을 거쳤고, 두 명의 살인 용의자를 대하는 장면은 영화 <커포티>에 더욱 생생하게 묘사되었다. 혹 시간이 된다면,  이 책을 읽은 뒤, 영화까지 보기를 적극 추천한다.


  <인 콜드 블러드>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살인사건의 희생자들의 죽기 전의 모습과 2명의 범인, ‘페리’와 ‘딕’이 희생자들을 찾아가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2부는 4명의 일가족이 죽고 난 후 혼란스러운 마을의 모습에 대해, 3부는 수사관들이 범인들을 잡는 과정을, 4부는 범인들이 잡히고 난 후 재판과정과 사형을 당하는 장면들을 자세히 그리고 있다. 특히 작가 커포티는 어떤 장면은 순차적인 시간 순으로, 또 어떤 장면들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기법으로 살인사건의 등장인물들의 생각과 행동들을 잘 담아내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가독성이 뛰어나다. 독자들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인 만큼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범인들의 범행 동기를 찾는 과정은 웬만한 추리소설 못지않게 흥미롭다. 작가 커포티는 ‘왜 범인들이 부유하고 존경받는 일가족들을 살해했는지’에 의문을 던지며 이 살인사건을 아주 섬세하게 재구성했다. 무엇보다 범인들과 일가족들은 아무런 연결지점이 없기에, 사건의 ‘교집합’을 찾아가는 과정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가지는 첫 번째 궁금증이기도 하다.


 독자들이 가장 흥미로워하는 인물은 연코 용의자 페리이다. 그는 참 알 수 없는 인물이다. 어떤 때는 ‘친절하고 순박한 아이’처럼 보이고, 또 어떤 경우에는 누구 못지않은 ‘사이코 패스’처럼 느껴진다. 페리는 시시각각 변하는, 그러면서 알 수 없는 매력으로 읽는 이의 마음을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가득 채워 넣는다.


 페리 스미스는 불우한 가정에서 태어난 여섯 번째 막내이다. 그는 떠돌이 부모덕에 보살핌을 받지 못했고, 학대를 받으며 성장했다. 그의 가족 역시 비극을 지니고 있다. 큰 누나와, 큰 형은 자살했고, 어머니 역시 ‘알코올중독’으로 사망했다. 그는 스스로를 “제대로 된 인간”(p.174)이 아니라고 여기고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간다. 결국 페리가 모든 일가족을 죽인 것처럼 설명되지만, 작가는 자꾸만 그에 대해 ‘모호한’ 태도를 취한다. 이 살인 사건을 담당하던 수사관 듀이마저 페리를 “추방당한 동물, 상처 입고 돌아다니는 짐승의 오라를 가지고 있”(p.515)다고 여기며 측은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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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발췌>


 페리가 “우리는 뭔가 잘못된 것 같다”라고 말했을 때,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무언가를 인정했다. 결국,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잘못된 것이 무엇이든, 그것이 자기 자신의 잘못이 아니고 “타고난 것”이라고 생각하면 특히 더욱 그랬다. 자기 가족을 보라!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라! 알코올 중독자인 어머니는 자기 토사물에 목이 막혀 죽었다. (중략) 형 지미가 있었다. 지미는 어느 날 자기 아내를 자살로 몰아넣고 자기도 따라 자살했다.(p.174)


“나는 아빠의 검둥이 노예였어.” 페리는 말했다. “그게 다야. 아빠는 진이 다 빠질 때까지 부려먹고도 돈 한 푼 주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필요했을 뿐이야." (p.283)


 하지만 진짜 살인자가 스미스라고 해도, 듀이는 그에게 다른 감정을 갖고 있었다. 스미스는 추방당한 동물, 상처 입고 돌아다니는 짐승의 오라를 가지고 있어 형사는 그를 무시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p.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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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들이 가질 두 번째 궁금증은 왜 작가가 ‘이 책의 제목을 <인 콜드 블러드(냉혈한)>이라고 지었을까?’하는 점이다. 영화 <카포티>는 범인 페리를 ‘인 콜드 블러드’라고 단정 지어 묘사를 한다. 하지만, 이 책은 독자들이 좀 다양한 관점에서 생각하도록 해석의 여지를 남겨 놓는다. 첫 번째 ‘냉혈한’의 후보는 당연히 범인들, 페리와 딕이다. 무고한 일가족을 무참히 살해했다는 이유만으로 충분히 ‘인 콜드 블러드’라 불릴 만하다. 두 번째 후보로는 홀턴 마을 주민들이다. 실제로 선량해 보였던 마을 주민들은 사건이 일어난 후 살인자들이 ‘자기들 중’에서 범인이 있다고 여기며 서로 의심하며 예전과는 상반된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실제 범인들이 밝혀진 다음에도 “살인자가 자기들 중에서 나오지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는 실망하는”(p.353) 모습을 보여준다. 세 번째 후보는 작가인 본인이다. 그의 모습은 영화 <카포티>에서 좀 더 자세히 묘사된다. 작가는 이 책을 쓰기 위해 범인들과 친분을 가장하고 정보를 얻는다. 그 내용으로 책을 펴냈음에도 ‘아직 책을 쓰지 않았다’고 거짓말하고, ‘인 콜드 블러드’라고 붙인 제목조차 비밀로 붙인다. 범인들이 교수형을 당하는 순간까지도 말이다.


 작가가 페리에 대해 지닌 감정은 좀 복잡하다. 영화 <카포티>에서 작가는 페리 스미스를 사랑했느냐고 묻는 하퍼 리의 질문에, ”페리와 나는 어렸을 때부터 같은 집에서 자란 것 같았어.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앞문으로, 그는 뒷문으로 나간 것 같았지.”라고 답한다. 커포티 역시 부모에게 버림받았던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남다른 성 정체성으로 고통받았다.


 책 속에서 페리가 ‘꿈속의 노란 새’를 보며 ‘자유로워지는 상상’을 하는 장면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어쩌면 그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다른 상황이었다면, 페리 역시 작가 카포티처럼 ‘누구보다도 더 나은 위치’에서 훨훨 자리매김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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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 발췌>


 “감방 벽이 무너져 내리고 하늘이 내려오는 것 같았죠. 그리고 커다란 노란 새가 보였어요.”

 가난했으면 비천한 대접을 받던 어린 시절에도, 속박 없이 마음껏 돌아다니던 젊은 시절에도, 그리고 지금 이렇게 수감된 처지에도, 페리의 일생 동안 앵무새 얼굴을 한 커다랗고 노란 새는 적을 모두 살육해 버리는 복수의 천사가 되어 페리의 꿈으로 날아들곤 했다. 그리고 지금, 이 새는 페리를 죽음의 위험에 놓인 순간에 구해주었다. “새는 가벼운 생쥐처럼 나를 번쩍 들어 올렸어요. 우리는 높이, 높이 올라갔죠. 저 아래 광장에 사람들이 나를 쫓아오면 소리를 지르고 보안관이 우리를 향해 총을 쏘는 모습이 보였어요. 모두들 화를 내고 있었어요. 내가 자유로워졌기 때문에 내가 날고 있기 때문에. 내가 그 사람들 누구보다도 더 나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p.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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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기념비적인 논픽션 소설이다.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했지만, 지루한 사건 나열이 아니라 등장인물 한 명 한 명이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생생하다. 잘 짜인 논픽션 작품을 읽고 싶은 사람, 실제 범죄의 생생함과 인간의 내면의 갈등을 그린 소설을 읽고 싶은 성인 독자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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