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Mar 23. 2023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그림책'

<우리 모두의 하루>(김현주/BICYCLE/2023)

'모두가 주인공이 되는 그림책' <우리 모두의 하루>/김현주/BICYCLE/ 2023.3


 모든 일정을 끝내고 침대에 누워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본다. 아침에 나설 때부터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들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과 마주쳤을까? 10명? 15명? 어설프게 손가락으로 꼽아보다 가만히 생각하기를 멈춘다. 어차피 부질없는 일이다. 그 당시 그들은 그저 내 하루의 주변 배경으로만 존재했던 인물들이다. 인간은 다른 이들과 더불어 살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存在)‘라고들 하지만, 신기할 정도로 대부분 우리는 일정한 가시거리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들이 어떤 시간을 보내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는지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하나의 공동체에 살면서도 한없이 외로움을 느끼기 쉽다. 나 혼자만 생각하며 살기에도 바쁘고 고독한 구조,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다.


 올해 3월에 막 나온 따끈따끈한 신작, 김현주의 <우리 모두의 하루/2023/BICYCLE>은 외로운 사회에 따뜻한 온기를 듬뿍 안기는 ‘참’ 예쁜 그림책이다. 이 작품은 아침에 일어나 잠들 때까지 마주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다. 그래서인지 책 속에는 사람들의 활기와 생생한 시간의 향기들이 가득하다. 고요한 평면의 책이지만,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책 속에 숨겨진 소리가 금세 뿜어져 나오는 듯하다. 작가는 뛰어난 관찰력과 상상력, 세심한 애정으로 그저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의 하루, 경험, 마음들을 섬세하고 생생한 파스텔화로 살려냈다.


 <우리 모두의 하루>는 표지부터 남다르다. 기다란 한가운데의 벽이 반으로 나눈 5층 건물에서 터전을 잡은 10 가족들이 각각의 삶을 꾸려가고 있다. 1층 첫 번째 집은 운동을 하는 사람, 그 옆집에는 휴식을 취하는 이들이 있고, 2층의 집은 아이들이 피아노를 뚱땅거리고 있고 그 옆집은 한 사람이 깜짝 생일파티를 준비하고 있다. 그 밖에도 소란스럽게 놀고 있는 아이들, 잠을 자는 사람, 청소를 하는 사람, 파티를 하는 사람들 등등 각자의 보금자리에서 그들만의 귀중한 시간은 보내고 있다. 작가는 두꺼운 벽 속 너머의 사람들의 삶을 다양하고 재미있게 그려내었다. 게다가 건물의 지붕이 ‘펼쳐진 책’이라니.


 이 도서는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천천히 넘기며 장면의 그림들을 꼼꼼하게 살펴봐야 ‘진가’를 발견할 수 있는 책이다. 어린 시절 즐겼던 빽빽한 그림 속의 ‘윌리’를 찾는 기분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대화 내용을 신중히 관찰해야 한다. 무심히 넘겼을 때는 몰랐던 ‘타인’의 삶이, ‘관심’을 가지고서야 비로소 그들의 삶이 내 마음속으로 콕 파고든다. 그저 주변 풍경의 배경으로 존재했던 사람들, 그들도 역시 ‘아침’을 갖고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아픔’을 간직한 시간을 보내는 삶 속의 주인공이었다.


 작가는 이런 사람들의 하루를 구구절절하게 설명하기보다는 짧고 소담한 문장들로 표현한다. ‘하루가 아픔이 되기도 하고’, ‘하루가 놀이가 되기도’ 하는 책 속의 문장들을 눈으로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왠지 모를 기분이 읽는 이의 감정을 쿡 찔러댄다. ‘하루가 기록이 되어 역사가 되고’, ‘또 다른 하루를 기대’한다는 그림책의 마지막 문구를 읽으면 저도 모르게 그림책 속의 한 등장인물이 되어 자신의 삶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된다. ‘지금 내 그림책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이제야 책 표지에 있는 건물의 지붕이 왜 '펼쳐진 책'이었는지 감이 온다. 이처럼 작가는 많은 장치들을 그림 속에 숨겨 놓았다. 등장인물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뜻밖의 장치를 발견하는 것은 이 책의 숨겨진 장점이다.


 작가는 <우리 모두의 하루>를 보며 ‘나의 책 속의 잊고 있었던 이야기를 떠올리고, 어떤 이야기로 채워질지 상상하며 읽으면 좋겠다’라고 책의 뒷면에 후기를 작성해 놓았다. 굳이 이런 말을 읽지 않아도 책장을 천천히 넘기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은 본인들의 삶을 생각하며 그림책을 덮게 될 것이다. 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자신들의 일상이 ‘더없이 특별하고 아름다운 것이었구나’라고 깨달으면서 말이다.


 ‘하루가 모여 일주일이 되고, 일주일이 한 달이 되고, 그렇게 하루하루가 모여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뛰어난 재능이 없어도, 돈과 권력이 없어도, 그저 꾸역꾸역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평범한 우리는 적어도 본인의 그림책 안에서는 특별한 주인공이다. 삶이 지루하고 힘든가? ‘나만 왜 이럴까’라는 생각에 괴로운가? 꼭 이 책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모두가 주인공이 되게 하는 마법의 책, 김현주 작가의 <우리 모두의 하루>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실제 냉혈한은 과연 누구일까? <인 콜드 블러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