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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의 나에게

by 하늘진주

<매일 충전 30분 글쓰기> 2021년 11월 19일 09:50-10;10


오늘 아침은 안개가 자욱하다. 이렇게 하얀 분무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날이면 19세기 독일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의 ‘안개바다 위의 방랑자’ 그림이 생각난다. 홀로 어두운 바위 위에서 맹렬하게 요동치는 안개 바다를 바라보는 한 남자의 뒷모습. 자연의 위대함에 맞서 오늘도 이겨내리라는 투쟁이 느껴지기도 하고 혹은 거칠게 위협하는 자연 앞에 굴복하려는 인간의 나약함도 엿보인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자신의 미래 앞에 하루하루가 힘들 그 남자를 바라보니 과거 17세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요즘은 이런저런 일에 치여 과거를 생각할 여유는 없다. 나보다는 ‘엄마’로, ‘아내’로, ‘며느리’로 살아온 부캐의 삶이 더 큰 탓이다. 예전에는 종종 과거로 돌아가는 타임머신을 많이 돌렸다. 남자는 닥쳐올 미래를 상상하며 불안해하고 여자는 과거를 돌아보며 우울해한다고 했던가. 부캐의 삶으로 바빠지기 전 나는 종종 과거를 여행했다. 꼭 고등학교를 입학하던 17세의 나에게로. 그때의 삶도 지금의 고등학생의 삶과 별 다를 게 없었다. 공부하고 야자하고 시험성적에 걱정하고 유난히 성적에 관심이 많던 친정아버지 덕에 성적표가 나오는 날이면 그날 하루 내내 불안해했다.


내 삶의 가장 힘들었고 괴로웠던 시절, 난 왜 그렇게 그 시간 언저리를 여행하는 걸까? ‘그때 이랬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 저랬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후회 따위는 부질없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안다. 20대의 나는 항상 17세의 나에게로 돌아가 후회 섞인 한탄만을 내뱉었고 30대의 나는 17세의 나를 돌아보지 않을 만큼 바빴고 무심했다. ‘그때의 너는 너’, ‘지금의 나는 나’로 차갑게 경계 지으며 다시는 돌아보지 않으려 했다. 지금 40대의 나, 큰 애가 예전과 나와 같은 17세의 삶을 지나는 것을 보니 다시 한번 그때의 내가 떠오른다. 지금은 나는 그때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괜찮아. 잘하고 있어.” 그냥 그 말을 해 주고 싶다 “네가 하고 싶은 것 다 해봐. 살아보니 지금 생각하는 것만이 다는 아니더라. 길은 많고 하고 싶은 게 있다면 끝까지 도전해 봐.”라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어쩌면 부모님은 그 당시에 그렇게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고, 나는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때는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다시 17세의 소년의 엄마가 된 지금, 난 우리 애의 말을 더 들어주고 이해해주려 노력한다. 간혹 아이의 성적에 대한 불안과 조금 더 다그치고 싶은 유혹이 스멀스멀 올라오지만 ‘힘내’ 혹은 ‘조금 있으면 시험기간이지?’라는 말로 퉁치려고 노력한다. 물론 그 말들도 큰 애에게는 부담과 스트레스로 다가올지 모른다. 하지만 ‘알아서 할게요.’ ‘에이 엄마는 이제 그만’이라는 말로 자기 속내를 잘 비추는 큰애를 보면 17세의 나보다는 지금 시기를 훨씬 잘 견디고 있는 듯싶다. 3년 동안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었고 불안 속에 혹독한 사춘기를 지냈던 17세의 나에게 힘내라는 응원을 다시금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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