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Sep 24. 2023

미래를 향해 날아가는 불나방들에게

 비비안 리와 클라크 게이블이 주연을 맡은 영화로도 유명한 마가렛 미첼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북전쟁을 배경으로 여주인공 스칼렛의 인생 역정 그린 장편 소설이다. 예쁘고 도도한 남부 부유층 소녀가 남북전쟁을 겪으며 타라 농장을 지키기 위해 강인한 여성으로 변모하는 모습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소설이 이토록 많은 독자들에게 회자되는 이유는 사람들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겠지만, 뭐니 뭐니 해도 마지막 결말 부분이 아닐까 싶다. 불타버린 애틀랜타, 폐허가 된 타라 농장과 떠나버린 남편을 바라보며 스칼렛은 그동안 외면했던 진실한 사랑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미 모든 것들이 끝난 상황, 그 순간 그녀는 말한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영화를 비롯한 대부분의 문학작품에서 ‘해피엔딩’과 정확한 결말에 열광하는 독자들 중 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소설류의  열린 결말을 보는 것은 무척 곤욕이었다. 뭐든 확실하게 결정되는 것이 좋았고, 이왕이면 등장인물들이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꾸려간다는 명확한 결론이 좋았다. 안 그래도 미완성인 현실의 삶 속에서 정확한 답을 찾아 헤매느라 충분히 머리가 아프고 골치 아픈 시간들이었다. 작가의 창작물에서만큼은 ‘이도저도 아닌’ 결말 따위는 절대로 보고 싶지 않았다. 문학적인 가치? 깊은 여운? 다 필요 없었다. 독자들의 상상에 맞추어 주인공들의 미래를 예측하라니, 작가로서 너무도 무책임한 행동이 아닌가. 하지만, 조금씩 나이를 먹고 보니, 요즘 들어서야 ‘열린 결말’이 꼭 나쁜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어?”라는 말, 정말 사람의 인생은 결정된 답이 없었다.


 부모님의 곁을 떠나 나만의 인생을 찾으며 살아온 지 몇십 년이 흘렀다. 어린 시절에야 부모님의 안전한 보호를 받을 때는 모든 지시와 충고들이 정답인 줄 알았지만, 지금은 ‘그게 과연 나에게 정답일까?’라는 의문을 가질 만큼 나이가 들었다. 부모님이 강조했던 인생의 ‘고속도로’를 빙자한 이야기들은 실제로는 내가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오히려 미래에 대한 두려움으로 포기했던 ‘비포장 도로’가 꿈과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지름길’이었다. 부모님이 원하는 삶과 내가 원하는 삶은 처음부터 달랐고 앞으로 맞이할 미래의 모습 역시 부모님 세대와는 다른 시간이었다. 그런 사실을 깨달은 이후부터 누군가에게 내 생각을 강요하는 것이 두려워졌다.


 며칠 전, 큰 애를 만나러 학교에 잠깐 들렀을 때, 아이에게 물었다.

 “친구들 요즘도 공부 열심히 하지?”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들도 있고, 포기한 친구들도 많아요.”

  2024년도 수능일이 얼마 안 남은 시점, 고3 아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음속에 지닌 불안감을 표현하고 있다. 아직 수능일이 50일 넘게 남은 시간, 무엇이 아이들의 마음속에 ‘포기’와 ‘희망’의 경계를 나눴을까? 단순히 그동안 지켜온 성적 때문일까? 아니면 지금 더 노력한 들 바뀌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 때문일까?


 수시 접수가 끝난 고3들의 2학기 교실은 수능을 앞두고 극명하게 대비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기이다. 일찌감치 수시 합격을 자신하거나 올해 입시를 포기한 친구들은 공부에 미련이 떠난 지 오래고, 정시에 올인 한 아이들은 죽자 사자 공부하느라 매일매일이 피폐하다. 큰 애 친구 중 A친구는 입시에 대한 스트레스로 잠깐 동안 눈앞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응급실을 다녀왔고, B친구는 혹시 본인의 입시로 부모님들이 피해를 볼까 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현재 그들은 ‘포기’와 ‘불안’과 ‘두려움’, 그리고 ‘혹시나의 가능성’으로 반짝이는 하나의 빛을 향해 날아가는 불나방들이다.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는 미래,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노력이 꼭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누구도 알 수 없다. 올해 입시가 끝나는 날, 못 미치는 결과에 눈물을 흘릴 수 있고, 또 다른 기회를 잡기 위해 도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이켜 볼 때, 모든 과정이 끝났다고 해서 삶이 멈추는 것이 아니었다. 입시 결과가 마음에 안 들어도, 때로는 원하는 길을 가지 못해도 사람의 인생은 계속된다. 스칼렛 오하라가 깜깜한 절망 속에서도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떠오른다”라고 말한 것처럼, 사람의 삶은 절대로 ‘닫힌 결말’이 있을 수 없다. 수만 가지 가능성 속에서 자기만의 길을 찾아가는 것, 그래서 사람의 인생은 열린 결말이 될 수밖에 없다. 미래의 불나방들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의 수만 가지 가능성들을 향해 날아갈 수 있기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