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더 높은 대학들로 향하는 이카루스들
올해 마감된 서울대 수시전형 원서모집 경쟁률이 8.84대 1을 기록하며 작년보다 상승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뉴스 속 종로학원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자연 계열 학생들 수시에 소신 지원 현상이 뚜렷하다"면서 "최상위권 학생의 의대 쏠림현상은 금년도에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서울대 등 최상위권 대학 일반 자연계열 학과 합격 기대심리가 높아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재수생들 또한 수시 지원에 가세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특히 재수생 중 상위권 대학에 합격한 반수생 위주로 서울대 등 상위권대 수시 지원한 것으로 추정된다"라고 밝혔다. (출처: 뉴시스, 2023.9.13, 권지원 기자)
올해 고3 수험생(2005년생들)뿐만 아니라 재수생, N수생 그리고 멀쩡히 학교를 다니던 대학생들은 더 높은 곳을 향해 이카루스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이런 현상은 예전부터 예견되었던 사실이다. 올해 처음으로 도입된 자기소개서 폐지, 수능 문제에서 킬러 문항의 삭제, 역대 가장 적은 고3 학력 인구수 등이 원인이다. 더욱이 최근에 실시한 9월 모의고사의 결과에서 많은 재수, N수생, 대학생들은 희망을 엿봤고,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다시금 수능에 지원했다. 현 고3 학부형으로서는 ‘왜 하필 올해 이런 일이’라며 분통 터질 일이지만, ‘만일 내가 그들의 입장’이었더라도 이런 황금 같은 기회를 놓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토록 많은 시간이 흘러도 하늘 아래 ‘SKY'로 향하는 사람들의 욕망은 도무지 사그라지지가 않는다. 물론 최근 들어 ‘메디컬’ 관련 학과로 이른바 ‘똘똘한 학생들’의 쏠림 현상이 두드러진다고 하지만, 그런 남다른 뜻을 품고 있는 아이들을 제외하고, ‘SKY'는 여전히 넘볼 수 없는 벽이다.
몇 년 전,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은 대한민국 상위 0.1% 사모님들의 입시 전쟁과 입시 코디네이터를 풍자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많은 엄마들은 비정한 입시 현실에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단 한 가지 사실만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녀들이 그토록 원했던 ‘아이들의 S대 의대 진학’, 왠지 그곳이라면 ‘그럴 만도 하다’고 여겼다. 오히려 같은 고3 수험생 엄마인데도 천하태평하게 아이에게 모든 준비를 맡겨 놓은 채 방임하고 있는 우주 엄마의 모습이 기이하게 보일 정도로 말이다. 드라마 속 그런 인물을 본 대부분의 고등학생 엄마들은 어쩌면 이런 푸념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니 아들이 알아서 공부를 잘하니까 그렇지. 잘났네, 정말”이라고 말이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대한민국에서 공교육을 받았던 학생이라면 누구나 떠올려 봤을 문장이다. 정말 아닐까? 아쉽게도 화려한 ‘대학 간판’이 대한민국 사회에서 안정된 삶의 조건이라는 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사실, 드라마 <스카이 캐슬> 방영 당시, 주변 엄마들 사이에서는 이런 우스갯소리들이 떠돌았다. 정말 엄청나게 ‘돈’ 많고, 넘겨받을 ‘배경’이 있는 진짜 부유층들은 ‘스카이 캐슬’의 엄마들처럼 성적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어느 곳에도 기댈 곳 없이 ‘불안한’ 사람들만이 이렇게 대한민국만의 특별한 ‘SKY'를 향한 욕망을 꿈꾼다고 했다.
<선량한 차별주의자>의 저자 김지혜는 이런 현상이 사회 속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고정관념’ 때문에 생긴다고 설명한다. “소위 명문대학을 다니거나 졸업한 사람들은 단지 그 대학 출신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똑똑하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긍정적인 고정관념을 얻”고 , “명문대학의 학생들은 그들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기회를 통해 성장하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런 순환 고리 속에서 편견이 현실이 되고 현실이 다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p.65, <선량한 차별주의자>)고 했다. 이런 고정관념이 아직도 팽배한 오늘날의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어쩌면 ‘행복은 성적순’ 일지도 모르겠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밀랍 날개를 단 이카루스는 높은 하늘 위의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바다 위로 떨어졌다. 이야기에서는 그의 추락이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경고를 새겨듣지 않은 탓이라 전하고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애초에 천재 발명가였던 아버지가 태양열에도 녹지 않을 만큼 튼튼한 날개를 제공했다면, 그런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대한민국 사회가 고정관념 따위에는 흔들리지 않게 ‘누구나 잘 살고 행복한 곳’이었다면 올해 입시에서 이처럼 기이한 현상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런 유토피아는 더 이상 이 사회에서 존재하지 않는 ‘신기루’이다.
올해도 수많은 이카루스들이 더 높은 대학들을 향해 힘찬 날갯짓을 시작했다. 날아가는 그곳이 몇 사람도 들어가지 못할 ‘좁은 문’이라 할지라도, 그들의 비상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