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험 기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실낱같은 희망과 절망들이 번갈아 반복되는 살 떨리는 시간이다. 특히 당사자와 가족들에게 원하는 대학을 향하는 1분 1초가 스릴 넘치는 드라마이다. 이 연극에는 매월 모의고사들의 결과를 바라보며 느낀 안타까움들, 8월 수시 원서 지원할 때의 로또 같은 눈치작전 등, 아이가 고3이 되기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모든 희로애락이 가득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수험생과 가족들의 입시 드라마는 시청률 제로에 가깝다. 주변의 사람들은 무심하고도 냉정한 시청자일 뿐이다. 그들은 오로지 최종 스포일러인, 대학 합격 여부만 궁금하다. 나 역시도 그랬다. 아직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매년 연말 수능 시즌이 되면 주변 사람들의 고3 아이의 입시 결과만 궁금했다. 겉으로 주변인들을 만날 때마다 “아이가 너무 고생이 많다”라고 이야기했지만, 속으로는 ‘어느 대학을 갔는지’ 얼른 대답을 해 주길 바랐다.
부모의 교육관은 아이의 나이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아이가 대학 입시를 신경 써야 하는 나이가 되면 그동안 비교적 온건했던 부모도 계획적인 통제로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 아무리 기다려도 아이의 느슨한 공부 습관은 변할 기미가 없고,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을 때, 부모는 갑작스레 각성한다. “그래, 이제는 내가 나서야겠다”라고. 그때부터 아이의 수난은 시작된다. 부모의 철저한 감시를 받으며 아이는 A 학원에서 또 다른 B 학원으로 그동안 등한시한 여러 과목들의 순례를 시작한다.
우리 아이들이 어렸을 때 같은 부모의 입장에서 주변인들의 이런 모습들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아이들을 강제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모습을 보면 ‘저렇게까지 해서 아이를 대학을 보낸다고? 너무하다’라며 속으로 흉을 많이 보았다. 그와 반대로, 우리 아이들만은 많은 학원들을 보내기보다 좀 더 자유롭게 키우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몇 년 뒤, 전혀 예상치 못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속으로 부모의 교육 방식을 흉을 보았던 주변인의 아이들이 우리나라 top3 대학들에서도 요즘 가장 핫한 학과들에 당당히 입학한 것이다. 한마디로, 파란만장하고도 아름다운 입시 드라마가 완성된 셈이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는 독일의 속담이자 셰익스피어 희곡의 제목이다. 이 격언은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다면 모든 일들은 '만사형통'(모든 것이 뜻대로 잘됨)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 격언을 읽으면 항상 상반된 두 가지 의미가 생각난다.
첫 번째는 "끝이 좋다면 다 좋다고?"이다. 끝 어미에 물음표를 넣어 강한 어조를 덧붙이면 전혀 새로운 의미가 된다. 이때의 속내는 지금까지의 과정이 순탄치 않았는데 어떻게 결론로만 모든 일을 다 평가할 수 있냐는 비난이 숨어있다. 이른바 결과 중심의 무분별한 성과주의를 비판하고 좀 더 체계적인 과정을 중시하자는 일침이다.
두 번째는 끝어미에 상냥한 온점을 붙인 원래 그대로의 의미이다. 이 문장에는 '모든 일이 무사히 잘 끝났다'라는 안도와 기쁨이 숨겨져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이 힘들었지만 좋은 결과만으로 모든 고통이 상쇄된다. '쥐구멍에도 볕 뜰 날이 있다'라는 속담처럼, 밝은 희망이 있기에 살아갈 만하다.
앞서 언급한 주변인의 대학 입시 결과를 생각하면 항상 이 속담이 떠오른다. 그들의 강압적이고 통제된 교육 방식을 볼 때마다 ‘끝이 좋으면 다 좋을까?’라고 의문을 종종 품었다. 그 과정에서 고통받았을 그들의 아이들을 생각하면 항상 답답하기만 했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입시생이 되고 보니, 그동안 품었던 생각들이 조금씩 흔들린다. 좋은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보니 미리 입시공부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준비시켰어야 했나 싶은 생각이 들곤 한다.
고3의 1년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12년 동안의 모든 과정이 매듭지어지는 시간이다. 큰 애는 올해 대학입시를 위해 6장의 수시 원서를 썼다. 그리고 첫 번째 원서 서류심사 결과가 며칠 전에 발표되었다. 결과는 불합격이었다. 내신경쟁이 치열한 학교에서 받은 애매모호한 아들의 성적으로 도전한 A대학, 입시 결과를 알기 전부터 살짝 불안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그 결과를 눈으로 보고 나니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아들 역시, 애써 서운함을 감추고 11월에 있을 수능에 집중하겠다고 다짐하는 눈치였다. 겉으로는 "힘내라"라고 큰소리로 응원했지만, 처음 맛본 '실패'에 아들이 숨어서 울고 있는지는 않을지 무척 걱정이 되었다.
입시의 최종 관문을 향해 가는 요즘이다. 이 긴박한 순간에도 어떤 교육 방식이 대학 입시에 도움이 될지는 알 수 없다. 항상 어떤 일을 이루는 결과보다 목표에 도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그 길이 비록 느리고 답답한 과정일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때로는 좋은 결과만을 위한 희망도 필요하다 싶다. 이제 주사위는 던져졌다. '끝이 좋으면 다 좋다'로 모든 긍정적인 합격의 기운이 아들의 미래에 드리우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힘내라, 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