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수능까지 34일 남았다. 이제는 서서히 수능 도시락을 고민해야 할 시기이다. 얼마 전 큰 애 학교에서 수능 도시락과 관련된 공지가 올라왔다. 수능 일에 따뜻한 잡곡밥과 쇠고기뭇국, 3가지 반찬을 준비할 예정이니 음식 담을 개인 보온도시락 용기를 따로 준비하라는 내용이었다. 큰 애가 다니는 학교는 다른 지역 출신의 기숙사 학생들이 많아 일정한 비용을 내면 수능 당일 도시락 서비스를 제공한다. 물론, 수능 도시락을 미리 신청해야 하고, 조리사 선생님들과 후배 학년 어머님들의 수고로운 봉사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사실 큰 애가 고3이 되기 전만 해도 학교에서 제공하는 수능 도시락 서비스가 너무 편하겠다고만 여겼다. 학교까지 가까운 동네도 아니고, 다른 지역에서 수능을 볼 큰 애의 도시락을 제시간에 전달하기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버거웠다. 그렇다고 해서 기숙사 생활에 익숙한 아이를 수능 전날에만 잠깐 집에서 재운 후, 다시 그 지역으로 데려가 수능을 보게 하는 것도 못할 노릇이다. 수능 치를 학교는 원칙 상 아이가 다니던 학교를 기준으로 배정받기 때문이다. 수능 당일, 엄마의 정성 어린 도시락이냐 아니면 익숙한 학교 음식이냐, 잠시 고민이 되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난 음식 만들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항상 따뜻한 집밥을 강조하는 남편과 시어머니의 영향으로 결혼 후 나름 열심히 요리를 배웠다. 특히 매년 가족의 생일상에 올리는 갓 무친 나물 세 가지, 뜨끈한 쇠고기 미역국, 붉은 팥밥, 그리고 윤기 흐르는 고기반찬 정도는 이제 눈감고도 한다. 보통 어쩔 수 없이 매끼를 위해 음식을 하지만, 솔직히 참 귀찮다. 이렇게 음식 하기를 그다지 즐기지 않는 성향은 어쩌면 친정어머니를 닮았는지도 모르겠다.
음식 배달문화가 유행하지 않았던 그 시절에는 누구나 집밥을 해 먹었다. 항상 바쁘셨던 엄마는 지금 생각해도 음식솜씨가 뛰어나지 못했던 것 같다. 며칠 전 전화 통화를 한 동생이 엄마 요리는 참 맛이 없다고 기억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그래서인지 유난히 입맛이 까다로운 친정아버지는 항상 식탁에서 ‘밥이 진밥이니, 국이 싱겁네, 반찬이 맛없다’라고 이런저런 음식 품평을 하셨다. 솔직히 그 당시 엄마의 요리는 항상 맛보다는 가족들의 건강을 고려한 음식이었다.
그에 반해, 시어머니는 너무도 요리를 잘하셨다. 워낙 대식구의 끼니를 책임지신 탓에 손도 빨랐고 같은 나물을 무쳐도 특별한 감칠맛이 있었다. 슬쩍 참기름 한 방울, 소금 한 꼬집을 넣어 음식을 만들어도 군침이 돌만큼 맛있었다. 남편의 입맛이 유난히 고급인 이유는 어머님의 영향이 크다. 그저 식사는 끼니만 때우는 정도로만 생각하는 내가 시댁만 가면 항상 밥을 고봉으로 담아서 먹을 정도다. 특히 어머님이 가족들을 위해 직접 재료를 갈아서 만들어 주시는 도토리묵과 추어탕은 아주 별미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큰 애를 임신하고 입덧을 할 때면 시어머님의 음식이 아니라 자꾸만 엄마의 맛없는 음식들이 생각났다. 기존 요리법보다 소금, 간장, 설탕을 적게 넣어 싱거운 쇠고기 불고기, 시원한 맛만 있고 시금털털한 빨간 김장 김치, 짜지 않게 볶은 멸치 볶음 등이 자꾸 떠올랐다. 힘겨운 입덧이 조금 가라앉으면 아무리 집안에 맛깔스럽고 누구나 맛있어하는 시어머니의 음식들이 있어도 친정 엄마의 밍밍한 요리가 먹고 싶었다.
아직 어렸던 막내를 제외한 우리 3남매들이 고등학생이었던 무렵, 친정 엄마는 다른 지역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근무하셨다. 그런 탓에 엄마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항상 바빴다. 아침에는 다른 지역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느라, 저녁에는 가족들의 끼니를 급하게 챙기느라 말이다. 그 당시 엄마는 항상 피곤에 찌든 모습이었지만, 최선을 다해서 가족들을 돌보았다. 특히 우리 3남매가 학교에서 점심과 저녁에 먹을 6개의 도시락만은 항상 새벽 5시에 일어나 준비해 두고 출근하셨다. 서로의 일과로 얼굴 보기 힘들었던 당시, 매일매일 꼬박꼬박 챙겨주시는 6개의 도시락만은 무뚝뚝한 엄마의 유일한 사랑 표현이었다.
솔직히 30년 전 내 수능 도시락이 어땠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도 시험 날에 굶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면, 엄마는 분명 그날도 출근하시기 전에 수능 보는 딸내미의 도시락을 싸 놓았을 것이다. 비록 그날 수능이 끝나고 교문 밖에서 딸을 기다리진 못했어도 말이다. 요즘도 사랑 표현에 인색한 엄마를 대할 때면 가끔 서운할 때가 있다. 그래도 학창 시절 매일 챙겨주셨던 엄마의 도시락만 생각하면 그래도 ‘나를 생각하시구나’라는 기분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나에게 있어 엄마의 도시락은 따뜻한 사랑의 표현이다. 그렇다면 큰 애에게 수능 도시락은 어떤 의미일까?
아들에게 솔직하게 현재 고민을 털어놓았다. 수능 도시락을 준비하고 싶은 나의 마음과 현실적인 문제를 말이다. 아들은 씩 웃더니, 그냥 편하게 학교에서 제공하는 수능 도시락을 먹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조심스레 덧붙였다. “엄마, 혹시 제 수능 도시락을 못 싸줘서 서운하세요?”
그 시절 대부분의 부모님은 자식에 대한 사랑을 겉으로 드러내 놓기보다는 속으로 감췄다. 그리고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했다. 나에게 친정 엄마의 사랑표현은 도시락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큰애는 굳이 도시락과 같은 다른 물건으로 사랑을 표현하지 않아도 엄마 아빠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느끼는 듯하다. 항상 기숙사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면, 본인을 위해 회사에서 반차를 내고 있는 아빠, 올해 갑자기 강의 횟수를 줄이고 자주 시간을 보내는 엄마, 아이는 이렇게 우리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참 감사하다고 말한다.
내일은 일주일 동안 묵힌 큰 애의 빨랫감을 가지러 기숙사 학교로 가는 날이다. 오랜만에 아들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너무 신난다. 이번에 만나면 큰 애는 항상 그랬듯이, 얼른 집으로 가고 싶다고 징징거릴 것이다. 그러면 나 역시 아들의 시험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고 열심히 맞장구를 치겠지. 내심 수능 날에 내 손으로 수능 도시락을 싸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뿐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이야기해 주는 우리 아들, 내일은 꼭 한번 안아주고 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