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Oct 24. 2023

미래사회의 글쓰기 주권

 댄 야카리노의 <책이 사라진 세계에서>(2023, 다봄)는 디지털의 도움과 감시로 살아가는 미래사회를 그린 그림책이다. 이 책에는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이 개발되고 난 이후 오직 과학기술에만 의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작가의 걱정이 가득 담겨 있다. 책 속의 미래사회에 사는 인간들은 “무엇이든 다 도와주는 눈”들과 살아간다. “학교에서도 각자 화면을 보며 읽기 공부”를 하고 읽고 싶은 것조차 모두 ’눈‘들이 대신 골라 준다. 책 속의 미래 사회 사람들은 더 이상 스스로 생각하고 선택하지 않는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눈’의 몫이다.


  챗GPT와 같은 인공지능 앱을 경험하면서 작가 댄 야카리노와 비슷한 불안을 잠시 느낀 적이 있다. 처음에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AI의 결과물을 보며 너무도 신기하다고만 여겼다. AI 앱에 몇 개의 적절한 질문들과 키워드를 넣으면 순식간에 멋진 글쓰기와 그림들이 완성되었다. 내가 직접 작업한 것보다 훨씬 훌륭한 결과물 말이다. 더 이상 힘들게 많은 책들을 읽으며 자료를 찾을 필요도, 여러 문장들을 넣었다 빼며 전체적인 구성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몇 개의 키워드와 질문으로 세상의 모든 자료들을 찾을 수 있는 세상이라니. 야호! 하지만 이내 처음의 신기함은 곧 알 수 없는 두려움으로 변했다. Ai는 그저 몇 개의 키워드와 질문으로 모든 글쓰기 결과물을 낼 수 있다. 그렇다면 온전히 인간의 힘으로 쓰는 글쓰기는 앞으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현재 AI 글쓰기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 째 부류는 ‘AI를 이용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얼마나 좋아?’라는 AI의 효율성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경우이다. 과거에는 인간의 힘으로 모든 노동을 해결하며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세탁기, 식기 세척기, 핸드폰’과 같은 기계문명으로 현대 사람들의 삶은 훨씬 풍요로워졌다. 그렇기에 미래 사회의 중요한 열쇠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는 반응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AI를 이용하면 훨씬 수월하게 글을 쓸 수 있는데 왜 굳이 변화의 움직임을 마다하겠는가?


 두 번째 부류는 ‘AI의 글이 내 글은 아니잖아.’라며 AI의 이용을 극렬하게 거부하는 경우이다. Ai를 이용하면 인간이 찾는 것보다 더 다양한 자료들을 수집할 수 있다. 하지만 계속 AI가 제공하는 자료들만을 활용한다면 본인이 편집하고 구성하는 법을 잊어버릴 수 있다. 몇 가지 키워드와 질문으로 인공지능이 수집한 자료들은 AI 관점으로 발견한 세상의 지식축적물이다. 기계의 편리성에 취해 생각하기를 게을리하면 결국 인간은 스스로 사고하는 능력마저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글은 인간의 생각들을 표현하는 최고의 무기이다.


 <어른의 말글 감각>(김경집, 2023, 김영사)에서도 글이 지닌 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역사에서 글은 ‘신분체계의 낡은 틀’을 깨뜨리고 ‘혁명’으로 이끄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도 역시 ‘디지털 혁명’의 영향으로 점점 ‘글의 위력’이 빠르게 위축된다고 말한다.


 글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삶의 방식과 내용의 차이는 이전의 신분 차이에서 오는 것들보다 훨씬 더 커졌다. 급기야 글은 신분체계의 낡은 틀조차 깨뜨렸으며, 이것들이 한꺼번에 응축되어 혁명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중략)

 영화와 TV가 ‘상’의 시대를 촉발하긴 했으나 제한적이었던 반면, 컴퓨터와 인터넷 그리고 다양하고 신속하며 광범위한 네트워크 능력을 가진 여러 매체들의 출현은 기호, 즉 문자의 시대를 상의 시대로 빠르게 변화시켰다. 디지털 혁명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거의 모든 지식과 정보가 끝없이 화면으로 교환되었고, 글의 위력은 빠르게 위축되기 시작했다. (p.27)<어른의 말글 감각)


 안타깝게도, 글쓰기와 책 읽기에 대한 기피 현상은 청소년층에서 더욱 가파르게 진행 중이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빠르게 바뀌는 영상자료에 쉽게 몰입하지만, 딱딱한 활자의 책에는 심각한 거부반응을 보인다. 화려한 영상과 짧은 문자에 익숙한 ‘상의 시대’의 아이들에게 당연한 반응이다. 하지만 그런 체념 어린 묵인과 인정이 청소년들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 아이’로 만들까 두렵다.


 언제나 “글을 쓰는 사람이 여론을 형성하고 권력을 만들었다” 그리고 “글을 읽는 사람이 사회를 변화시켰다.”(출처: 어른의 말글 감각) 글쓰기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료를 수집하고 구성해서 보고서를 쓰고 인간사회의 표면적인 사실을 묘사하는 것만은 아니다. 떠오르는 생각을 머릿속에 묵혀 자기만의 고유의 의견들을 재창조하는 과정이다.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 그리고 AI의 자료에 무조건 동조하다 보면 결국 생각하는 힘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 눈앞에 다가온 미래 사회, 인간의 글쓰기 주권만은 지켜야 한다. 기계문명이 제공하는 안락하고 편리한 유혹에만 빠져 있다면 결국 모든 것을 감시하는 AI ‘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지 많은 대한민국, 바람 잘 날 없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