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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Nov 30. 2021

대한민국 고1이 학원을 그만둔다는 것은

 “엄마, 이제 학원을 다 그만두고 혼자 공부해 볼게요.”

 며칠 전 큰애가 잔잔한 엄마 마음에 짱돌을 던졌다. 올해 고1이 된 큰애가 다니는 기숙사 고등학교는 잘한다는 아이들이 몰려 있어 내신 따기가 엄청 어려운 학교이다. 게다가 고등학교 2학년부터는 수학 진도를 엄청나게 빨리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애 학교 친구들이 주로 다니는 학원을 알아보던 차였다. 그동안 다른 학교 친구들이 많은 학원에 다니다 보니 너무 벅찬 학교 시험 범위 때문에 학원 선생님들의 눈치가 만만치 않았다. 이번 기말만 치고 나면 본격적으로 다른 학원으 옮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난데없는 학원 중단 선언이라니.


 큰 애의 말을 듣고 첫 느낌은 ‘쟤가 왜 저러지? 였다. 친구들과의 경쟁에 지쳐 공부를 손에서 놓기로 했나? 아니면 학원에서 무슨 일이 있어서였을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마냥 바라보고 있으니 큰 애가 그런다.

 “그냥요. 평일에는 학원 다닌 시간도 없고 주말에 학원을 다니다 보니 제 공부할 시간이 없어서요. 인강을 볼 시간도 없고. 한 번 혼자서 공부해 볼게요.”

 그러면서 ’자기 못 믿냐 ‘며 씩 웃는다. 물론 큰 애 너를 믿지. 믿고말고. 믿으려고 하고 있고. 다만 네 주위의 컴퓨터와 핸드폰, 온갖 유혹 거리 들을 못 믿을 뿐이란다.


 큰 애가 학원을 그만두겠다는 말이 이렇게 마음을 철렁하게 만들 줄은 몰랐다. 내가 언제부터 학원의 노예가 되어 있었던 걸까? 매달 학원을 자동으로 끊고 그 녀석은 학원을 가고 나는 학원을 보내고 신랑은 학원비를 대는 것이 자동 공식처럼 형성되었었다.

 물론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표 교육‘이나 ’사교육 없는 세상‘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무작정 학원부터 보내는 분위기에 괜히 반발도 많이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점점 성장하고 주위 아이들이 모두 학원 다니는 분위기가 되었을 때는 ’학원‘의 의미가 점점 내 속에서 바뀌기 시작했다. ‘학원가다’는 ’공부하러 간다‘로 의미로, ’학원을 몇 개 다닌다‘는 ’사는 형편이 넉넉하여 여러 개를 다닐 여유가 된다‘로 받아들여졌다.


 원래 학원은 구한말 개화기 때 당시 민권과 독립의 정신을 기초로 새로운 세계와 지식을 배우려는 국민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시작되었다고 한다. 지금 2021년 대한민국 학원은 앞선 지식과 과중 학습량을 바탕으로 수능에서 좋은 성적을 휘날리며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려는 학생들로 넘쳐난다. 우리 큰애는 그런 학원에서 한시라도 빨리 독립운동을 하고 싶었던 탓일까?

 얼마 전에 큰 애가 다니던 수학학원을 먼저 끊었다. 학원으로 퇴원한다고 전화를 거니 상담 샘이 굉장히 놀라는 목소리로 ’앞으로 힘들 텐데 어떻게 공부할 거냐‘고 묻는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학원 하나를 단호히 끊고 나니 ’뭐 학원 별거 아니네’라는 생각을 들지만,

여전히 두렵다. 큰 애, 너 믿어도 되는 거지? 우선은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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