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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06. 2021

아이들의 시험기간

시험기간을 대하는 엄마의 마음

 얼마 전에 읽은 김초엽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 중의 단편, <숨그림자>에는 호흡으로 의미를 읽는 인종들이 나온다. 그 인종들은 우리처럼 음성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내뿜는 호흡으로 의사소통을 한다. 그들이 내뱉는 언어들은 공기 중에 둥둥 떠다니다가 바로 읽히기도 하고 뒤늦게 읽히기도 한다.

 내가 만일 그들처럼 의사소통했다면, 주말 내내 머릿속에 가득 쌓아둔 '걱정거리와 불안거리' 공기들로 온 집안은 까맣게 물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걱정, 불안, 걱정들. 내가 요즘 외면하고 있는  스트레스 그림자들이다.


주말  내내 고등학생인 큰 애는 굉장히 애처로운 얼굴로 불안 덩어리들을 한가득 쏟아놓고 갔다. 바야흐로 학생들이 가장 불안하고 예민하다는 시험 기간이다.  큰 애는 항상 시험 기간이 되면 나를 붙들고 자신의 마음을 쏟아붓는다. 물론 그 속에는 일정한 패턴이 있다.

큰애는 기숙사에서 돌아오는 금요일이 되면 엄청나게 행복한 표정으로 집을 들어선다. 대충 씻는 둥 마는 둥 하면서 태초의 원시인 모습으로 침대에 푹 파고든다. 자신의 핸드폰을 최고의 '돌도끼'처럼 꼭 붙들고 몇 시간 즐겁게 놀다가 드디어 시험을 앞둔 수험생 불안 상태에  접어든다. 


 “엄마, 이번 시험 망하면 어떡하죠?"

 "어차피 정시로 갈려고 마음먹었으니 못 봐도 괜찮죠?”

 "시험은 왜 봐야 할까요?"

 " 힝. 학교 가기 싫어요."

 

 순간 쌓아두었던 엄마로서의 잔소리들 왈칵 밀려오지만, 꾹 누른다.

 “그래, 그래, 괜찮아.” , "그럴 수도 있지."

조금이라도 표정이 굳으면 가뜩이나 시험 기간, 녀석이 더 불안해할까 봐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체한다. 이때 중요한 연기의 포인트는 과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아주 '쿨한' 표정이다. 그리고 '엄마는 네 성적 따위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담대함과 '네 행복만 우선'이라는 내면 연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면 그 녀석은 이내  안심한 얼굴로 책상에 앉아 책을 펴 든다.


 주말 내내 큰 애의 스트레스, 불안들을 마주하다 보니 정작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나도 하지 못했다. 매번 시험 기간마다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녀석을 볼 때면 ‘진작에 공부하지 그랬냐’고 퉁박을 주고 싶다가  '도 닦는 기분'으로 스르르 마음을 가라앉힌다. 나 역시도 미리 준비하고 계획하는 사람이 아니거늘 그 녀석은 오죽할까 싶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공부, 쉼 없이 몰아치는 선생님들, 매번 밤새 공부한다는 친구들의 이야기. 어떨 때는 스트레스 때문에 그냥 공부를 놓아버리지 않은 것이 신기하다.


 안 그래도 그 녀석이 지난 주말에 이와 비슷한 말을 하기도 했다.

“저, 살짝 번아웃이 온 것 같기도 해요.”

 번 아웃? 고등학교 때 번아웃이 안 생기게 하려고 학원 2번 다닐 것, 1번 보내고, 어떨 때는 학원 선생님과 협상해서 학원을 빼기도 했는데 소용이 없었단 말인가?

 그 말을 들은 신랑이 그런다.

 “그럼, 앞으로의 미래를 생각해서 좀 더 견뎌봐.”

 앞으로의 미래? 머리 굵어진 녀석이 그런 이론적인 말을 듣고 수긍할까 싶었는데 의외로 고개를 끄덕인다. ‘대학교에 가면 너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어.’, ‘대학교에 가면 너 놀고 싶은 데로 놀 수 있어.’ 내가 고등학교 시절에 들었던 어른들의 사탕발림이 21세기 고등학생들에게도 먹힌다.


 아무튼 이번 주면 큰 애의 기말고사는 끝난다. 그리고 중학생인 둘째의 기말고사가 또다시 시작된다. 시험은 그 녀석들이 보는데 스트레스는 왜 내가 받는지 모르겠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던 주말이 지나고 이제는 해야 하는 일들만 남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못한 체 눈앞에 오가는 걱정거리들만 세고 있다. '해야 할은 태산인데. 빨리 해야 하는데.......'

시험 준비를 못해 불안한 아이들에게  ‘공부 미리 하지 그랬냐’고 면박도 줄 수 없다. 나 역시도 이렇게 손 놓고 있으니. 빨리 그 녀석들의 시험이 끝났으면 좋겠다. 아, 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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