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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an 20. 2022

너를 믿는다는 말

가끔은 우리 아들들이 참 부럽다. 솔직히 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엄마일지 자신이 없지만, 남편은 아이들에게 99.99% 좋은 아빠일 것이라 확신한다. 물론 남편도 역시 나처럼 화도 내고, 잔소리하는 보통 아빠다. 하지만 그에게는 나와는 다른 점이 하나 있다. 바로 아이들이 무슨 행동을 하든 100% 믿어 주는 아빠라는 점이다.


 오 형제 중의 막내였던 남편은 아들들이 어릴 때부터 형제간의 서열을 확실히 잡았다. ‘남자 형제는 꼭 서열을 잘 잡아야 나중에 편해진다'며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았다. 여동생들과 투닥거리며 자랐던 나로서는 가끔, 남편의 ‘사내아이 서열 잡기’가 이해 가지 않았다.

‘분명, 큰 애가 잘못한 것 같은데, 단지 형에게 대들었다는 이유로 왜 둘째를 혼내지?’

 이런 불공평한 판결이, 이런 차별이 혹 형제 사이에 분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 하지만 내 우려와 다르게 아들들은 아빠의 결정을 잘 받아들였고 별 불만이 없어 보였다.


 드디어 말도 많고 한 숨 쉴 일도 많다는 아들들의 사춘기 시절에 돌입했다. 멀쩡한 아이들도 이 시기만 되면 ‘미친개’처럼 변한다는 이야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긴장을 많이 했다. ‘칭찬과 믿음’이 만병통치약이라는 생각으로 나름대로의 훈육 계획도 세웠다.

 

 '어린 시절에는 좀 엄하게, 사춘기 때는 누구보다 수용적인 엄마가 돼야지.'

 

그런데 그것이 가능한 말인가? 사춘기 자녀들을 키워본 부모 대부분은 많이 공감할 것이다. 나날이 ‘나무늘보’처럼 게을러지고 ‘삐딱선’을 타기 시작하는 아이들을 보며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부모는 별로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나도 역시 우아하게 불러도 “네, 엄마”라고 외치며 천사처럼 달려오던 아이들이, 목청이 터져라 불러도 게임에 팔려 뒤늦게 기어 나와 "못 들었어요." 대꾸하는 상황을 많이 접했다. 그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매일 저녁 퇴근한 신랑에게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들의 행동을 고발하며 하소연을 해댔지만 의외로 남편은 별 내색을 하지 않았다. "뭐 그럴 수 있지 뭐." 한번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음에는 잘 들을 거야"라며 나를 다독거렸다.


 큰 애가 고등학교 진학하고 첫 시험을 치른 작년 봄,  정말 말도 안 되는 국어 점수를 받아 왔다. 나름 야무지고 똘똘하다고 생각했던 녀석의 시험 점수, 그 점수를 보자마자 나는 또다시 비상 상태에 돌입했다. 그동안의 자유방임주의였던 태도를 반성하고 뒤늦게 여기저기 학원들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내가 그러면 그럴수록 큰 애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큰 애를 믿어봐. 부모가 아이를 안 믿으면 누가 우리 아이를 믿겠어?”

계속 불도저처럼 달려가려는 나를 진정시키고는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지 말고 큰 애만 바라보라고 말했다. 당시, 큰애는 예전의 애정이 충만한 눈빛이 아닌, 전혀 생소하고 주눅이 든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서로 눈만 마주치면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수다를 떨던 큰 애가 아닌, 어딘가 슬퍼 보이던 모습. 어린 시절의 내가 그 속에 숨어 있었다.


  어린 시절 난, 친정아버지께 “내가 그럴 줄 알았어”라는 말을 많이 들었다. 아버지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무엇이든 빨리빨리 해내는 것을 좋아하셔서 무엇이든 굼뜨고 느릿하게 진행하는 것을 못 견뎌하셨다. 그 시절의 나는 겁 많고 실수하는 것이 두려워 무엇을 하든 조심스러웠다. 실수를 안 하기 위해 무엇이든 천천히, 침착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친정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을 유달리 답답해하셨다. 내가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면 유심히 보시며 조바심을 느끼시는 게 보였다. 그러다 내가 실수를 하면, 아버지는 “내가 그럴 줄 알았다.”라며 소리치셨다. ‘그럴 줄 알았다’라는 말, 친정아버지는 내가 실수를 할지 어떻게 미리 아셨던 걸까? 그 당시 아버지의 성급한 마음이, 완벽하게만 키우려는 마음이 어린 시절의 나를 많이 주눅 들게 했다.


 그날 큰 애에게서 나의 어린 시절의 모습을 찾은 이후, 나는 그동안 알아보던 학원 검색을 멈추고 아이가 좋아하는 농구 수업을 다시 등록했다.

 현재 큰 애는 매주 1번, 좋아하는 친구들과 농구를 하며 즐겁게 스트레스를 푼다. 한 번 성적이 떨어졌다고 우리 아이의 미래가 흔들리지 않았고, 그날의 실패는 큰 애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


 큰 애가 학원을 다 끊고 혼자 공부하겠다고 할 때도, 둘째가 공부 안 하고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는 남편은 빙그레 웃으며 “그래, 그래. 잘 자라고 있어”라고 말한다.  조바심 내는 나를 붙들고, “괜찮아, 괜찮아. 그냥 우리 아이들을 믿어 봐.”라며 다독거린다. 혹 남편에게 우리 아이들을 위해 뾰족한 대책이 있는가 싶어 꼼꼼히 물어보면 별다른 대책은 없다.

“대학? 좋은 데 가면 좋고, 안 가도 할 수 없고. 그래도 우리 아이들은 자기 갈 길 잘 찾아갈 거야. 믿어 봐.”

너무 대책 없는 남편의 말인데, 엄마로서는 복장이 터지는 말인데, 한편으로는 부럽고 안심이 된다. 왜 남편의 ‘그냥 믿어 봐’라는 발언이 부럽고 안심이 될까?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어렸을 때도 우리 남편이 아이들을 대할 때처럼, 진득하게 기다려 주고 믿어 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지를 말이다. 좀 더 자신감이 넘치고 자부심이 강한 어른으로 자라지 않았을까?


 우리가 하는 언어는 힘이 있다. 그중에서도 '사랑과 믿음'을 가지고 하는 말은 더 힘이 세다. 가끔은 부모는 조바심에 "너 앞으로 어떻게 할래?",  "정말 큰일이다"라는 말로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을  한층 무겁게 한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의 미래를 부모의 경험치로 판단하고 재단하는 것이다.  사실 부모도 앞으로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아이들이 어떤 미래를 살 지 모른다. 잘 모른다면 그저 믿음으로 아이들을 바라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너를 믿는다는 말"은 무한한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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