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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Jan 14. 2022

고양이와 강아지 그리고 둘째 녀석

 어제 필라테스 수업을 갔다가 선생님이 내 옷을 유심히 쳐다보더니 대뜸 이렇게 말다.

 “어머나, 고양이 키우시나 봐요.”

 고양이? 우리 집에는 고양이가 없는데. 고양이는 키우지 않고 패딩 코트의 털이 빠져서 그런 것 같다고 대화를 마무리 짓다가 갑자기 떠올랐다. 우리 집에도 고양이 비슷한, 혹은 가끔 강아지 비슷한 존재가 살고 있다는 것이. 바로 우리 둘째 이야기다.


 둘째는 자신의 감정을 고양이와 강아지 소리로 표현한다. 아침에는 ‘야옹’ 거리는 고양이 소리, 오후에 화가 날 때는 ‘컹컹’ 거리는 개소리, 저녁에 기분이 좋을 때는 또다시 고양이 소리가 울린다. 어쩌다 친구들과 통화라도 하면 전화기 가득 울리는 고양이 소리에, 친구들은 항상 묻는다.

 “어머, 너 고양이 키우니?”

 ‘고양이는 아니지만, 고양이가 되고 싶은 녀석은 키우고 있어’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그냥 웃고 만다. 마치 아이즈원의 <고양이가 되고 싶어>의 주인공처럼 둘째는 어릴 때부터 고양이 소리와 강아지 소리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이러면 ‘역시 남자아이라 말을 잘 못 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전혀, 네버! 그 녀석의 말발은 청산유수다. 나도 꽤 말을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 녀석 앞에서는 종종 말문이 막힌다. 어찌나 논리의 초점을 구석구석 잘 찾아내는지 감탄할 정도이다.


 둘째는 강아지처럼 활동성이 강해서 다른 친구들은 학원 다니느라 바쁜데 종종 마실을 잘 나간다. 햇살 아래 나른하게 고양이처럼 누워있다가 에너지가 충전되면 첫눈 만난 강아지처럼 빨빨거리며 달려 나간다. 도대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다. 나갈 때마다 지금은 코로나 시국이라 친구 집에는 가지 말고 밖에서 놀라고 당부하지만 그게 가능한가? 분명히 집에 놀러 갔을 테지만, 항상 대답은 “네”다. 어쩌겠는가. 아들이 “네”라고 대답했으면 그대로 믿어야지. 알지만 서로 속고 속아 주는 관계가 형성된다.


 어제도 친구랑 놀러 간 둘째랑 이런저런 통화를 하다가

 “아들아, 중2라 이런저런 엄마 잔소리 들으면 화가 날 때도 있지?”

 “무슨 말씀, 이제 올해면 중3이에요.”

 “그렇구나. 그러면 중3쯤 이제 철들 때가 되지 않았니?”

 “엄마도 중3이 지난 지가 몇십 년이 지났는데 왜 그래요?”

 무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웃음이 팍 터졌다. 저 녀석은 무슨 의도로 저런 말을 한 거지? 엄마가 철이 없다는 건가? 아니면 자신의 변호를 위해서 저런 말을 한 걸까? 다시 꼬치꼬치 물었지만, 그 녀석은 대답 없이 헤헤 웃으며 통화를 끝냈다.


 오늘 아침 둘째 녀석을 깨우자, 잠에 취한 그 녀석은 “일어났어요.”라고 불퉁하게 말한다. 음, 아직은 사람 상태인가 보다. 그 와중에도 표정과 몸짓으로 고양이와 강아지 모드를 여러 번 오갔다. 아마 학원 특강을 다녀오면 다시 기분이 좋아서 고양이와 강아지 모드를 반복하겠지. 가끔 말도 잘하는 녀석이 왜 자꾸 ‘야옹’과 ‘컹컹’ 소리를 오갈까 궁금하다. ‘내가 그 녀석 앞에서 잔소리를 너무 많이 했나? 엄마의 잔소리를 듣기 싫어 그런가?’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분명한 것은 쑥스럽거나 좋을 때는 유독 고양이 소리를 많이 내고, 화가 나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할 때는 강아지 소리를 많이 내는 듯하다. 이런, 둘째 녀석은 자신의 소리도 기분 별로 범주화시킨 걸까? 그래도 이런 행동들을 내 앞에서만, 가족들 앞에서만 보인다니 다행이다.

역시, 어릴 때 ‘우리 강아지, 우리 고양이’ 소리를 많이 하지 말았어야 했나 보다. 또 한편으로 동물 소리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나도 한번 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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