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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03. 2023

방 안의 코끼리, 한반도의 정세

 ‘방 안의 코끼리’는 누구나 알고 있지만 먼저 쉽게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는 상황이나 어려운 문제 비유하는 표현이다. 쉽게 말해 방 안에 뜬금없이 코끼리가 있어도 못 본 척 회피하거나 이야기하지 않는 상황을 일컫는다. 요즘 한반도가 이런 상황이 아닐까 싶다.


 며칠 전부터 방송과 뉴스에서는 북한과의 불편한 관계를 보도하기 시작했다. 2023년 12월 23일 자 <연합뉴스/이상헌 기자>에 따르면, “북한은 3일 한국의 9·19 군사합의 일부 조항 효력 정지로 한반도 정세가 극도로 악화했다면서 대한민국의 적대 행위는 '완전 소멸'로 이어질 것이라고 위협했다.”라고 전했다. 그리고 북한 조선중앙통신에서 "지난 5년간 유지되어 오던 군사분계선 완충지대는 완전히 소멸되고 예측할 수 없는 전쟁 발발의 극단한 정세가 팽배해지고 있다"라는 보도를 인용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이러한 위협은 정세 악화의 책임을 남측에 돌리는 한편 추가 도발의 명분을 쌓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라고 덧붙였다.


 이 일에 관해 김연철(전 통일부 장관·인제대 교수)은 <한겨레 신문 칼럼>(2023.12.03.)을 통해 “윤석열 정부가 9·19 군사합의를 먼저 파기”하면서 “접경이 불안해졌고, 안보가 위태로워졌다.”라고 전했다. 그는 그동안 유지되었던 “완충 공간이 사라지면 우발적 충돌 가능성은 커”지고 서로 소통이 안 된 상황에서 충돌이 벌어지면 확전을 어떻게 멈출지 의문을 던졌다. 또한 “북한을 상대로 전쟁 불사를 외치는 무모함을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전쟁광이 아닌 이상, 세상 어느 사람도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전쟁은 항상 한순간의 불씨가 커다란 화염으로 변하여 벌어졌다. 그 불씨가 지도자의 야욕이 될지, 아니면 누군가의 정복욕으로 생길지, 혹은 오래 묻은 국가 간의 역사적 원한으로 벌어질지는 알 수 없다. 유럽과 전 세계가 전쟁의 열풍으로 뒤덮였던 제1차와 제2차 세계대전 때는 강대국들의 치열한 이권 다툼으로 비극이 벌어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국가의 이익과 생존을 위해서 당연히 ‘전쟁’을 감수해야 한다는 일반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기에,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고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처절한 전쟁의 암흑기를 벗어나 평화의 시대를 맞이한 현대다. 하지만 여전히 전쟁은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위협하는 암묵적인 공포이다. 특히 1년 전부터 지속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분쟁은 최근에 일어난 대표적인 비극이다. 전 세계인들은 실시간으로 벌어지는 두 전쟁의 기사들을 접하며 보며 엄청난 충격에 휩싸였다. 이 분쟁들이 커다란 공포로 다가온 이유는 전쟁은 언제 어디서든 순식간에 일어날 수 있고, 항상 전쟁에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민간인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생각해 보면, 대한민국 온 사회가 전쟁의 두려움에 갇혀 지내던 시기가 있었다. 옛날에는 초등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했던 대표적인 활동들은 ‘철마는 달리고 싶다.’ 따위의 반공 포스터 그리기나 ‘똘이 장군’ 혹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다는 이승복 어린이의 다큐 영화를 보는 일이었다. 북한과의 갈등이 너무도 빈번하게 일어나던 시절, 학교에서는 유달리 조국 통일을 강조했고,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줄기차게 부르게 했다. 비록 학생들에게 우리나라 현대사를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지만, 오직 하나 북한과의 통일만은 언젠가 꼭 이루야 하는 필수목표로 가르쳤다. 그 당시 국민에게 북한은 언제나 악몽을 꾸게 만드는 무서운 존재였고, 언제 쳐들어올지 몰라 항상 대비해야 하는 우리의 적이었다.


 요즘 인기리에 방영하고 있는 영화 <서울의 봄>을 보면서 가장 많이 화가 났던 부분은 사회 지도층들의 빈약한 책임 의식이었다. 특히나 국경의 최전방 부대를 끌어들이면서까지 본인들의 사리사욕을 채우려 했다는 부분에서는 견딜 수 없는 분노가 끓어올랐다. 국민에게, 특히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사소한 일들조차 ‘북한에 대한 공포심’을 조장시켰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군사력을 담당하는 지도자가 “지금 북한이 쳐들어오지 않는다”라며 사사로이 군사력을 사용했다는 사실이 경악스러웠다.


 1953년 한반도 휴전협정이 있은 지 70년째다. 그동안 북한과의 관계는 그 당시 권력을 장악했던 정부의 성격에 따라 다양하게 변했다. 어떨 때는 대화가 통하는 온풍의 시대가, 어떨 때는 서로 미워하며 적대하는 관계로 정말 파란만장하게 바뀌었다. 그런 변화무쌍한 분위기를 볼 때마다 ‘북한을 대하는 정책은 정부의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일까?’라는 의심도 든 적이 있다.


 전쟁은 모두에게 엄청난 두려움이다. 그래서 한반도의 정세가 흔들릴 때마다 국민은 공포에 떨고 정부의 지침에 수긍하고 따라갈 수 없다. 한때 전두환 정권 때 있었던 ‘평화의 댐’ 성금 모금이라는 대국민 사기극에 모든 국민이 일제히 성금을 바쳤던 것은 한반도의 평화가 계속 유지되기를 바라서였다. 그 당시 국민들에게 무엇보다 뜨거웠던 민주화의 열기보다 절실했던 것은 국가의 안보였다.


 요즘 국민은 정부의 말을 다 믿는 것도 아니요, 못 믿는 것도 아닌 애매한 관점에서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그런 미묘한 사람들의 마음과는 달리, 북한은 이번 정부를 향해 지속해서 표독한 말을 쏟아내고 있다. 그런 일촉즉발의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잘 모르겠다. 평범하고 평화로운 한반도를 원하는 국민으로서 참 불안하다. 그럼에도 그저 위험을 무시하고 묵묵히 지켜볼 수밖에 없다. 방 안에 커다란 코끼리가 활개를 치고 다니고 있지만, 모른 척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상황들이 무사히 지나가기만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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