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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04. 2023

‘나는 솔로 17기’에서 찾은 지켜야 할 선


 사람마다 지켜야 할 선이 있다. 그 선을 넘을 때 다양한 반응들이 생겨난다. 불타오를 듯이 분노가 솟아오르기도 하고, 차갑게 얼어붙은 침묵이 둘 사이에 감돌기도 한다. 가까울 때는 ‘상대방이 무조건 내 편’이라고 느낄 만큼 가깝다가도, 어느 순간 아주 뜻밖의 계기로 멀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의 관계다.


 요즘 ‘나는 솔로 17기’를 정주행 하기 시작했다. 물론, 파란만장했고 지금도 시끄러운 기수, ‘나는 솔로 16기’ 방송 이후 엄청난 피로감을 표하며 시청을 그만두었다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도 그런 시청자 중의 한 명이었다. 게다가 모든 것이 막장 드라마 같은 16 기수들에 비해 이후에 등장한 17 기수들은 좀 밍밍하고 재미없어 보였다. 잠시 프로그램 시청을 멈췄다가 우연히 접한 두 커플, 현숙과 상철, 그리고 순자와 영식의 이야기가 궁금해 처음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


 사실 그 어떤 드라마를 봐도 이 프로그램만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으면서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현실 드라마가 없다. 게다가 모든 참가자의 행동과 심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전지적 시청자 시점’이다. ‘나는 솔로 16기’가 그토록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세상만사 있을 수 있는 인간군상의 모든 욕망을 총망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간의 심리변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이 방송을 꼭 봐야 한다. 그만큼 꼭꼭 숨겨진 사람들의 이면을 관찰할 수 있는 굉장히 흥미로운 프로이다. 매력적인 미혼 남녀들의 알콩달콩한 연애 프로그램이 난데없는 인간의 심리 관찰이라니, 참 뜬금없는 소리처럼 들릴 수 있다. 그만큼 이 프로에서는 평소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 하는 모든 어둠의 모습들이 낱낱이 드러난다.


 이번 ‘나는 솔로 17기’에서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응원하는 커플은 미소가 아름다운 현숙과 상철이다. 첫눈에 호감을 느꼈고, 줄기차게 서로를 배려하는 모습이 보기 좋은 이 커플은 장담컨대, 방송 마지막에는 최종 커플이 되지 않을까 추측해 본다. 이과 반대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또 다른 커플은 순자와 영식이다. 들의 시작은 현숙과 상철 커플과 비슷했다. 이 커플 역시 다 첫 만남부터 서로 호감을 느꼈고, 꾸준히 연결되는 단독 데이트로 최종 커플로 가지 않을까 예상했다. 하지만, 갑자기 순자가 다른 인물, 광수에게 관심을 보이면서 모든 상황이 급격하게 바뀌었다. 그녀는 속마음 인터뷰를 통해 본인에게 ‘올인’하는 영식을 부담스럽고 재미없으며 겉으로 ‘츤데레’처럼 구는 광수에게 아주 강한 흥미를 느꼈다고 말했다.


 ‘나는 솔로’는 4박 5일 동안 여러 남녀가 제한된 공간에 있으면서 서로를 알아보는 시스템이다. 그런 만큼, 순자가 보이는 이런 뜻밖의 마음 변화는 전혀 잘못될 것이 없다. 문제는 그녀가 보인 태도이다. 순자는 첫 만남부터 꾸준히 본인에게만 호감과 관심을 표현하는 영식을 ‘잡은 물고기’ 취급하며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종종 보였다. 급기야 슈퍼 데이트권을 딴 후, 그녀는 영식과 다른 상대를 저울질했고, 결국 광수를 데이트 상대로 정했다. 거의 ‘커플’처럼 여겨지고 있던 영식에게는 미리 양해를 구하지 않고 데이트 당일 아침에서야 그 결정을 알렸다. 그리고는 “제가 영식님의 마음은 거의 확고한 것을 알고 있잖아요.”라고 단호하게 덧붙였다.


 그에 반해, 슈퍼데이트권을 따고 난 후 비슷한 상황에 놓였던 현숙은 순자와 다르게 행동했다. 그녀는 상철에게 큰 호감이 있지만, 열정적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영호에게도 궁금증이 있었다. 하긴 겨우 며칠 동안 만난 남녀들이 서로에게 지고지순한 연애 감정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나는 솔로’ 역시 많은 인연과 다양한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 기본 방침이다. 그런 점에서 이 프로그램에서 제공하는 슈퍼 데이트는 다른 이성에게 자기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참여자들의 당연한 권리이다. 그럼에도 현숙은 무척 망설였고, 슈퍼 데이트 상대를 정하기 전 상철에게 미리 의견을 물었다. 상철은 ‘마음먹은 대로 하라’며 그녀의 고민을 헤아려 줬다. 결국 현숙은 영호에게 슈퍼 데이트를 쓰기로 마음먹은 뒤, 상철을 불러 그 결정을 말했다.


 ‘나는 솔로 17’에서의 순자와 현숙의 모습을 보면 인간관계에서 서로를 미리 생각해 주는 배려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서로 호감을 느끼고 있거나 가까울수록, 소중한 존재라고 느낄수록 지켜야 할 선이 있다. 순자는 본인에게 아낌없는 호감과 관심을 보이는 영식을 미리 배려하지 않았다. 그동안 한결같은 마음을 표현했던 영식은 역시 그녀가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배려와 이해의 선을 넘어가자 결국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그에 반해 현숙은 다른 남자와의 데이트로 속상해할 상철의 마음을 끊임없이 헤아리며 어루만졌다. 그녀는 모든 갈등 상황을 상철과 깊이 소통하고 대화했고, 그런 과정에서 그에 대한 진실한 감정까지 깨달았다.


 사람과의 사이에 존재하는 선은 딱딱하고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차가운 벽이다. 잘 모르는 사이에서는 예의를 지키고 조심스레 두드려야 조금씩 상대방의 속내를 볼 수 있는 실금이 나타난다. 특히 상대방이 본인보다 더 큰 호감을 가지고 있다면 벽이 무너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그 벽이 완전히 무너졌다고 해서 무작정 그 선을 넘어 본인의 마음대로 상대방을 좌지우지해서는 안 된다. 보이든 보이지 않든, 사람마다 지켜야 할 선은 꼭 배려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서로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다.


 ‘나는 솔로 17기’에서 한순간의 행동으로 서로 다른 결론이 나 버린 두 커플이다. 그들의 현재를 보며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선의 의미를 무겁게 느낀다. 혹 나 역시도 무심코 했던 배려 없는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준 적이 없었을까? ‘나는 솔로 17기’를 보며 다시금 그동안 했던 행동들을 되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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