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늘진주 Dec 12. 2023

후라이의 꿈

‘악뮤’라고 불리는 2인조 남매 듀오, 이찬혁과 이수현의 노래는 평소에 자주 듣는 곡 중의 하나이다. 이 듀오는 노래 경연 프로그램 ‘K-pop 스타’에 나와 노래를 부를 때부터 기존의 가수들에게서 찾아볼 수 없는 신선한 매력으로 많은 사람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다리 꼬지 마’부터 ‘외국인의 고백’, ‘오랜 날 오랜 밤, ‘200%’ 등등 그들의 노래는 나오기만 하면 노래 차트에 올라 전국에 울려 퍼졌다. 박진영이 K-pop 스타에서 했던 심사평처럼, 악뮤의 노래는 신선하면서도 아름다웠고 재치 넘쳤다. 올해 발매한 ‘후라이의 꿈’ 역시 색다른 매력이 가득한 곡이었다.


 처음 이 곡을 좋아했던 이유는 흥겨운 멜로디 때문이었다. 악뮤 특유의 통통 튀는 리듬과 흥겨운 멜로디가 가득한 이 곡은 걸어 다니면서 듣기에 적절한 노래였다. 그래서 노래 가사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평소 노래를 멜로디 위주로 듣는 성향 때문에 노래의 제목이 ‘후라이의 꿈’이어서 이상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 곡에는 꽤 재미있는 사연이 숨어 있었다.


 원래 ‘후라이의 꿈’은 2014년에 만들어진 곡으로 이찬혁이 아이유에게 선물한 노래였다. 당시 아이유는 당시 카톡 프로필로 계란 후라이의 이미지를 이용했다. 이 사실에 호기심을 느낀 찬혁이 질문하자, 그녀는 어릴 적 꿈이 계란 후라이처럼 푹 퍼져 있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찬혁은 이 말에 흥미를 느껴 ‘후라이의 꿈’을 만들어 아이유에게 선물했다. 한동안, 이 노래는 소유권에 대한 오해로 발매되지 않다가 서로 합의해 악뮤에게 되돌아갔고, 최근에 음원으로 발표되었다.


 <후라이의 꿈>은 아직 꿈을 찾지 못한 젊은 세대들을 위로하는 ‘힐링 송’으로 알려져 있다. 노래의 가사는 역시 날지 못하는 가위도 하늘 위를 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느릿한 달팽이도 넓고 거친 바다로 갈 것이라는 꿈을 꾼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질문한다. ‘너는 뭐 하냐고? 꿈이 없으면 남의 꿈이라도 대신 꾸라고’ 말한다. 여기까지 들으면 꿈이 없는 사람에게는 비극이다. 하지만 악뮤는 재치 있게 이렇게 대꾸한다. 내 꿈이 아닌 구겨진 꿈을 ‘강요’ 하지 말고 ‘내밀지도 말라’고. 자꾸 강요하면 ‘고민 하나 없이 퍼져 있는 계란 후라이’처럼 퍼져 있겠다고 협박한다. 다른 사람들이 높은 곳으로 가든 말든 ‘내 물결을 따라가겠다’라고 애교스럽게 덧붙인다.


내게 강요하지 말아요. 이건 내 길이 아닐걸.

내밀지 말아요. 너의 구겨진 꿈을


난 차라리 흘러갈래

모두 높은 곳을 우러러볼 때

난 내 물결을 따라

Flow flow along flow along my way


난 차라리 꽉 눌어붙을래.

날 재촉한다면

따뜻한 밥 위에 누워 자는

계란 fry fry 같이 나른하게.


(중략)


무시 말아 줘요. 하고 싶은 게 없는걸.

왜 그렇게 봐 난 죄지은 게 아닌데.


 출처: <후라이의 꿈>(악뮤) 중에서.

   

 이처럼, 꿈은 미래를 향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기도 하지만, 스트레스가 되기도 한다. 당장 진로를 결정하기를 강요당하는 젊은 세대에게 무조건 찾아야만 하는 꿈은 엄청난 부담이다. 어쩌면 ‘하고 싶은 너의 길을 찾아라’라는 말속에 숨겨진 날카로운 가시일지도 모른다. 주변을 둘러보면 아직 하고 싶은 꿈을 찾지 못한 청소년들이 많이 있다. 어른들은 이런 아이들에게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뭐니?’라고 매번 묻는다. 하지만, 세상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아이들에게 그 질문은 대답하고 싶어도 대답할 수 없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다.


 이런 꿈에 대한 고민은 비단 아이들만의 일이 아니다. 어른들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 꿈에 관한 질문을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그들 역시 충분한 고민 없이 무작정 직업 전선으로 뛰어들었고, 하고 싶은 꿈을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고 나면 엄마들은 직업 전선을 뛰어들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이럴 때 엄마들은 다시 한번 꿈을 둘러싼 갈등과 고민이 시작된다.


 유난히 활력이 넘쳐 24시간도 모자를 정도로 바쁘게 돌아다니는 A가 집에만 있는 B에게 말했다.

 “집에만 있지 말고 하고 싶은 꿈을 찾아봐.”

B는 대답했다.

 “몇십 년 만에 겨우 여유가 생겼는데 또 하고 싶은 꿈을 찾아야 할까? 이제 좀 쉬고 싶은데. 난 이렇게 집에 있는 것이 너무 좋아.”

그녀는 그동안 치열하게 쌍둥이 아이들을 키우느라 직장을 그만둔 상태였다.


 따라 하고 싶은 꿈이 많아 매일 바쁜 사람들에게 ‘푹 늘어지고 싶다’라는 후라이의 소망은 한심한 꿈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없’고 ‘내 길을 가겠다’라는 마음이 보잘것없어 보여도 꿈은 꿈이다. 세상은 있어 보이고 멋지게 반짝이는 꿈만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소심한 꿈을 응원해 주는 세상은 어떻게 만들어질까? ‘먹고살기가 어렵다’라는 이유로 다른 이의 꿈, 특히 아이들의 꿈을 무시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라님, 올해 수능 실험, 만족하셨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