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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Dec 10. 2023

나라님, 올해 수능 실험, 만족하셨나요?

 분명히 올해 시험은 ‘물수능’이어야 했다. 이번 수능을 불과 몇 개월 앞둔 6월, “수능의 킬러 문항을 모조리 없애겠다.”라고 단호한 정부의 선언까지 있었기에 수험생들은 그 말을 찰떡같이 믿었다. 특히 6월 모의고사에서 킬러문항들이 출제되어 대통령님이 노하셨다는 풍문까지 들리는 상황이었다. 6월 시험의 어려운 난이도 때문에 수능 시험 출제 전문가가 경질되는 일까지 생겼다. 바로 즉시 사교육의 메카라고 불리던 서울의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가 일제히 압수수색 당했다. 한마디로 굉장히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세상에나, 이번에야말로 정부가 우리나라에 기생하는 사교육의 카르텔을 잡으려고 칼을 갈았구나’, 그러니 이번 수능이 ‘물수능’ 일 것이라 찰떡같이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시험의 난이도를 가리키는 말 중에 ‘물수능’, ‘불수능’이라는 용어가 있다. 시험이 쉬우면 ‘물수능’, 어려우면 ‘불수능’이라고 비유적으로 난이도를 평가하는 말이다. 재미있게도 수능의 난이도는 해마다 일정한 법칙이 있다. 만약 올해 수능이 쉬우면 그다음 해 수능은 어렵게 출제된다는 원칙이다. 작년 2022년 수능은 꽤 어려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올해 2023년 수능은 사람들 사이에서 막연하게 쉽게 출제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이 오갔다. 게다가 대통령님이 친히 칼자루를 휘두르며 수능의 난이도를 조절하겠다는 ‘뜻깊은 해’가 아닌가.


 하지만, 올해 2023년 수능은 역대급으로 어려운 ‘불수능’으로 평가받는다. 분명 킬러문항들을 모조리 없앴다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도대체 왜 이런 결과가 나온 걸까? 사실 올해 수능을 본 직후 킬러문항은 없지만, 알쏭달쏭한 문제들이 많았다는 평이 자자했다. 대부분 학생이 틀렸다는 수학 22번 문제는 킬러 문제가 아니냐는 비판이 조금씩 나오던 상황이었다. 문제 출제자들은 킬러문항대신에 애매모호한 문항들로 변별력을 키웠다고 했다. 그 욕심이 너무 과도했던 탓일까? 2023년 12월 8일, 수능 결과가 나오자마자 올해 수험생들을 둔 집에서는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정말 재미있게도, 올해 만점자와 표준점수 수석 학생은 사교육 대명사 학원의 재원생이다. 분명 정부가 나서서 ‘사교육’ 없이도 문제를 풀 수 있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EBS’ 방송 연계와 학교 교육과정 내에서 문제를 출제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런데 그 문제를 전국에서 가장 ‘잘’ 맞힌 훌륭한 수험생들은 사교육을 ‘잘’ 받은 학생이었다!


 애초에 올해 수능이 사교육을 전혀 받지 않고 풀 수 있는 문제들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수능 출제위원들이 너무 올해 수험생들의 수준을 높게 본 탓에 이런 기이한 현상이 벌어진 것인지 알 수 없다.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결과가 벌어졌고, 앞으로 사교육에 의존하는 일이 더 빈번하게 일어날지 모를 일이다. 정부가 앞으로 시험 문제에 대해 어떤 말을 선언해도 수험생들과 학부모 사이에서는 우선 의심부터 할 것이다. 순수한 진실도 여러 번 어긋나면 어두운 거짓이 될 뿐이다.


 올해 고3 수험생들은 정부의 갑작스러운 입시 정책 실험에 휘말린 비운의 마루타로 기억될 것이다. 아주 어려웠던 6월 모의고사, 이상하게 쉬웠던 9월 모의고사, 이리저리 널뛰는 난이도의 모의고사를 치르며 고3 학생들은 아주 혼란스러운 마음으로 수능을 준비했다. 실제로 수능 결과를 받은 많은 학생이 재수를 선택한다고 들었다. 12년 동안 그 고생을 하고도 또다시 그 고행길을 택한 것이다.


 치열한 입시경쟁은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드는 아픈 현실이다. ‘가난 문제는 나라님도 구제 못 한다’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사교육 문제도 추가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나서서 강력하게 올해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고 사교육의 카르텔을 끊겠다고 선언까지 했다. 그런데, 사교육의 메카인 학원 출신 학생들이 더 좋은 결과를 받으면서 오히려 사교육에 대한 열망이 더 커져 버렸다. 역시 우리나라에서 사교육을 받지 않으면 시험을 잘 보기 어려운 걸까? 올해 수능 결과를 본 정부는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 무척 궁금하다.


 앞으로 수능 문제 유형은 어떻게 흘러갈까? 내년은 ‘물수능’일까?, 아니면 ‘불수능’일까? 다른 나랏일로 바쁜 정부가 굳이 수능을 몇 개월 앞둔 시점에서 시험 유형을 바꾸겠다고 선언까지 했다.  사교육만은 한시라도 빨리 없애겠다는 의지가 활활 타올랐기에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오랜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 단계적으로 수능 시험을 손보기보다는 불쌍한 학생들을 사교육의 마수에서 얼른 구해야 했기에 말이다. 2023년은 이번 수능 보기 전부터 사교육과 문제 유형으로 매우 시끄러웠던 시간이었다. 이제 정부는 시험성적을 보고 절망한 학생들을 위해 수능 실험의 의미에 관해 이야기해 줄 차례이다. 나라님, 이번 수능 실험, 만족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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