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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진주 Feb 09. 2024

에세이, 솔직함과 숨김 사이에서 널뛰다.

 솔직하고 본인의 삶을 성찰하는 글을 좋아한다. 이런저런 수식어가 난무하고 가식이 느껴지는 문장보다 거칠어도 인생의 무게가 느껴지는 내용이 좋다. 특히 문학작품에서 이런 글을 만나면 마음이 울렁거리면서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진다.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의 마지막 장면을 읽을 때마다 훌쩍거리는 이유는 바로 그런 까닭이다. 하지만 그 장르가 너무도 솔직한 개인적인 서사를 가득 담은 에세이일 때는 망설여진다. 이 이야기를 계속 읽을 것인가 아니면 접을 것인가.


  며칠 전, <먹고사는 게 전부가 아닌 날도 있어서> (노지양, 북라이프) 책으로 사람들과 읽은 소감을 나눌 때의 일이다. 이 책은 번역가 노지양의 첫 번째 에세이 집이다. 그동안 저자는 직업상 다른 작가들의 글을 번역해서 옮겼지만, 마음속으로 '매일 머리로 에세이’를 쓰고 싶었다면 꽤 길고 간절한 내용으로 프롤로그를 장식했다. 그 설명은 본인의 책 한 권을 내기 원하는 작가 지망생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내용이었다. 그런 호감 때문인지, 책 속에서 표현된 작가의 개인적인 감정표현, 지나칠 정도로 솔직하게 늘어놓은 가정사, 번역가의 고충들에 푹 빠져 읽었다.


 그런데 같은 책을 읽었던 다른 사람들은 이 에세이에 관해 가혹하리만큼 짜게 책 읽은 평점을 매기며 혹평했다. "무슨 내용을 말하는지 주제가 잘 와닿지 않았어요." , "저는 이 작가와 이렇게까지 친해지고 싶지 않았어요"라고 말이다. 그들은 하나같이 솔직하게 표현된 작가의 개인적인 서사들을 불편하게 여겼다.


 ‘가장 개인적인 내용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보편적인 내용이다’라는 말이 있다. 갓 태어난 생명에 대한 감탄, 점점 멀어져 가는 사춘기 아이들과의 갈등, 먹고사는 걱정, 병들고 나이 듦에 대한 쓸쓸함, 죽음에 대한 공포 등, 인생에서의 굵직굵직한 개인적인 사연들이 많은 대중들의 공감을 부르는 이유는 본인에게 이런 일들이 언제 닿칠지 모른다는 감정 때문이다. 독자들을 그런 글을 읽으며 울고 웃으며 다시 현재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물론 언급했던 사례와 같이, 개인적인 내용을 다룬 에세이가 모든 독자에게 공감받는 것도 아니다. 어떤 독자들은 이런 종류의 글이 ‘어색하고 불편하다’라는 이유로 심각하게 거부하기도 한다. 나 역시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기에 어느 정도 공감한다. 몇 년 전에 유명한 에세이 작가의 책 몇 권을 산 적이 있다. 문체가 아름답고 탁월한 에세이 작가라는 많은 대중의 찬사를 받는 인물어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책들을 완독하고 나서도 썩 좋은 감정을 받지 못했다. 작가의 부부간의 갈등이나 시댁 묘사 부분을 읽을 때마다 책에 대한 호감이 자꾸만 사그라들었다. 그러면서 ‘왜 그녀의 일들을 이렇게 자세히 알아야 하지’라는 한탄마저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조지 오웰의 에세이 <나는 왜 쓰는 가?>를 읽을 때는 또 달랐다. 이 책은 조지오웰이 썼던 서평과 칼럼, 미얀마에서 근무했던 경찰 간부 시절의 이야기, 런던과 파리를 떠돌던 부랑자 생활 경험 등, 다양한 글들이 수록된 에세이 집이다. 그중에서도 <정말, 정말 좋았지>에 묘사된 작가의 어린 시절 기숙사 이야기는 놀라울 정도로 솔직했다. 조지 오웰은 그 시절 기숙사 선생님들에게 매질과 학대를 당했고, 어린 그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는 선악의 세상에 감금돼 버렸다는 처량한 고독감과 무력감” (p.378) 마저 느꼈다고 했다. 에세이 속에 묘사된 작가의 감정에 깊이 공감하면서도 ‘이래도 될까?’라는 심정이 들었다. 이 글을 읽은 기숙사 선생님들의 후손이 소송을 걸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그렇지만, 작가의 개인적인 서사가 거북하지는 않았다.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읽고 ‘그의 개인적인 서사가 불편했다’라고 말하는 독자들을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런 내용에 대해 독자들의 호불호가 나뉘는 것은 결국 작가에 관한 관심 때문일까? 팬들이 연예인에게 열광하는 것처럼, ‘천재’라 불리는 작가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독자의 욕망이 그의 개인적인 서사마저 갈급하게 하는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천재’가 되지 못하는 사람들은 에세이를 어떻게 써야 할까? 개인적인 일에 관한 ‘너무’ 솔직한 글은 부담스럽고, ‘너무’ 드러내지 못하는 글은 밋밋하고 재미가 없다. 에세이 쓰기에도 다른 문학 장르처럼 글쓰기 순서나 공식이 있으면 좋으련만, 그마저도 없다. 수많은 작가가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것처럼, 이 에세이 쓰기만큼은 그저 계속 쓸 수밖에 없다. 하다 보니 늘었다는 말은 요리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중에서 글쓰기의 재료가 되는 솔직함의 정도는, 어머니들의 요리노하우를 참고하면 된다. ‘소금 약간, 설탕 약간’이라는 어렴풋한 설명으로 한 그릇의 요리를 완성하는 것처럼, ‘약간’에는 본인만의 해석을 넣어야 한다. 그렇게 본인을 드러냄과 숨김 사이에서 교묘하게 균형을 잡으면, 훌륭한 에세이가 완성되지 않을까? (13.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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