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금 떠나온 세계> 김초엽 소설집/한겨레 출판

하늘 진주의 독서여행

by 하늘진주

칠 전, 김초엽 소설집 <방금 떠나온 세계>의 두 번째 독서 여행을 마쳤다. 첫 여행은 작가 김초엽이 창조한 SF 세계를 알 수 없어 독서 여행 내내 삐걱거렸고, 뿌옇고 흐리멍덩한 이해 속에서 여행을 끝냈다. 첫 여행의 느낌은 ‘모르겠다’였다.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의미 단어들이 혼돈스러운 내 머릿속을 둥둥 떠 다녔다.

다시 오기로 시작한 김초엽 책의 두 번째 독서 여행, 한 편, 두 편, 세 편 읽을 때마다 나는 조금씩 작가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고 조금이나마 내 생각들을 글로 표현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의 글들은 그런 내 노력의 결과물이다.

김초엽의 <방금 떠나온 세계>는 ‘최후의 라이오니’등 총 7편의 단편소설로 구성된 SF단편소설집이다. 작가는 현실에서 부딪힐 수 있는 사회의 문제들, ‘팬데믹, 사회적 약자, 이방인, 인간소외’ 등을 토대로 7개의 그녀만의 가상 미래 이야기들을 창조했다. <최후의 라이오니>는 스스로 결핍이라고 느끼던 로몬인 화자와 기계인 셀의 마음 나눔을, <마리의 춤>은 시지각 장애인 모그 ‘마리’가 모그를 이해시키기 위해 벌이는 화학적 테러를, <로라>는 일반인과는 다른 신체지도로 ‘세 개의 팔을 가진 ’로라‘와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남자 친구의 마음을 그렸다. <숨그림자>는 호흡 언어를 사용하는 숨그림자인과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원형 인류의 갈등을, <오래된 협약>은 고요한 행성에서의 ’오브‘의 생명체와 시간을 빌려 생명을 유지하는 인간의 이기성을, <인지 공간>은 모든 지식을 공동인지공간에서 관리하는 사회의 모습과 그로 인해 벌어지는 삐걱거림을, 마지막으로 <캐빈 방정식>은 시간 지각 능력 장애를 가진 언니와 시간 거품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녀 소설 속의 세계는 현실 세계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가상의 세계이지만 현실세계와 똑같은 사람들 간의 갈등, 미움, 사랑, 후회, 이해 등 여러 가지 감정과 갈등들이 공존한다. 작가는 현실과 독특한 상상 속에서 매 단편마다 새로운 인물과 세상을 만들어 낸다.


소설가 김초엽은 1993년생으로 포스텍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7년 「관내분실」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으로 제2회 한국과학문학상 중단편 대상과 가작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과생으로서의 전문적인 지식 덕분인지 ‘보통의 소설가는 주로 발견하지만 소설가 김초엽은 발명한다.(한겨레 21)’ 그래서인지 김초엽 작가가 발명한 가상 우주와 우주인은 여태껏 발견하지 못한 세계와 인종들이다.


<최후의 라이오니>의 로몬인은 멸망의 현장에서 죽음을 정리하는 유품정리사이다. 작가는 사회에서 결핍을 느끼는 로몬인 화자가 기계들만 존재하는 3420ED 행성에 조사하러 갔다가 자신의 전생과 조우하는 이야기를 창조했다. <숨그림자>의 사람들은 음성 대신 호흡으로 의미를 전달하고 대화하는 인종이다. 이 단편에서 작가는 수백 년 전 동면에서 깨어나 음성으로만 대화할 수 있는 ‘원형 인류 조안’과 오직 호흡으로만 의미를 전달하는 ‘숨그림자 단희’의 교류를 그렸다. <오래된 협약>의 사람들은 먼 우주에서 온 지구 탐사선이 벨라타 성에 도착하여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죽음의 위기에 처하자 행성 생명체 ‘오브’에게서 시간을 건네받고 생명을 연장하는, 사실은 나약한 인종들이다.


작가는 <한겨레 21>의 인터뷰에서 ‘최후의 라이오니’는 팬데믹에서 소재를 얻었다고 밝혔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순조로웠다. 도시에서 수백 년만의 ‘죽음’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배양실 인근 구역에서 감염병 D가 처음 보고되었을 때 연구자들은 감염원을 분석한 후 기존 바이러스의 국소적인 변형으로 결론을 내렸다. 전염력도 약했고 발열과 오한이 전부였기에 대수롭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p37) <최후의 라이오니>


<마리의 춤>과 <로라>에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향한 작가의 시선이 녹아 있다.


모그는 일종의 시지각 이상증을 겪는 사람들로 현 미성년 인구의 최대 5퍼센트 정도로 추정된다. 왼손잡이 정도로 흔한 셈이지만 마리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모그를 직접 만난 적이 없었다. 모그와 그들의 가족은 주로 편의 시설이 잘 구비된 특수구역에 거주하며 주로 저들끼리만 교류하는 등 폐쇄적인 공동체를 이루고 살아간다고 알려져 있다. (p62)<마리의 춤>


“인간은 고유의 신체지도를 가진다. 팔과 다리를 의식하지 않을 때도 그것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몸의 위치와 움직임을 감지하는 고유 수용 감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어긋난 고유 수용 감각을 가진다. 다시 말해, ‘잘못된 지도’를 가진다.(p106) <로라>


그 외의 작품들은 감각을 주요 모티브로 잡았다고 했다. 그래서이지 이 소설집의 ‘마리의 춤’은 시각, ‘로라’는 촉각과 자기 수용 감각, ‘숨그림자’는 후각, ‘인지 공간’은 인간의 사고체계가 뇌 바깥에 있는 경우, ‘캐빈 방정식’은 시간 감각을 다루고 있다.


숨그림자 사람들은 호흡으로 의미를 읽는다. 공기 중에 단 여덟 계의 입자만 섞여 있어도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 (중략) 분자들은 공기 중으로 의미를 실어 나른다. (p133-134) <숨그림자>


이런 인물들을 묘사하며 작가는 동정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고고히 하늘 위에 떠 있는 창조자처럼 그저 바라볼 뿐이다. <방금 떠난 세계>에서 감정을 느끼고 교류하는 사람들은 그녀가 창조한 인물들뿐이다. <최후의 라이오니>의 셀과 화자가 그랬고, <로라>에서의 화자와 로라의 미묘한 감정싸움이 그랬다. <숨그림자>에서의 원형 인류 조안과 숨그림자인 단희의 우정 역시 마냥 부드럽지도 긍정적이지 않다. 7편의 세계에서는 갈등이 존재하고 잔잔한 슬픔이 존재한다. 다른 작가의 소설들처럼 독자들의 심장을 조일대로 조이고서 확 풀어버리는 카타르시스 대신, 작가는 각각의 소설들을 오래 음미하며 음미할수록 깊게 묻어나는 풍미를 우리에게 선물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SF를 처음 접하는 독자들에게는 낯설고 쉽지 않다.


이 소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김초엽 소설을 위한 의미 통역기가 필요하다. 아직 일반 언어를 사용하는 독자들에게 김초엽 의미 언어는 너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초엽의 <방금 떠나온 세계>를 여행하고 싶은 지구의 순례자들은 도전하고 권하고 싶다.


조명이 완전히 꺼졌을 때 나는 처음으로 어둠에 잠긴 격자 구조물을 마주 보고 있었다. 그것은 우리의 인지 공간이었다. 공동의 기억이었다. 한때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었다. 그리고 방금 내가 떠나온 세계이기도 했다. (중략)


저 밤하늘에는 별이 너무 많아서 우리의 인지 공간은 저 별들을 모두 담을 수 없다. 하지만 우리 각자가 저 별들을 나누어 담는다면 총체적인 우주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마침내 이 행성 바깥의 우주를 온전히 상상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언젠가 그곳을 향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p170) (인지 공간) 중에서


이 소설을 읽으면서 알 수 없는 단어들로 머릿속은 복잡할 것이다. 하지만 ‘저 밤하늘의 별들이 너무 많아서 별들을 마음속에, 한눈에 다 담아낼 수 없듯이’ 조금씩 나누어 담는다면 김초엽 소설의 우주를 온전히 상상하게 될 날이 올지도 모른다. 지금의 세계가 아닌 새로운 세계를 여행하고픈 지구의 순례자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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